근대거리부터 진포해양공원까지
금방이라도 비가 올듯한 날씨.
퇴사 후 엄마를 보기 위해 군산에 왔고 첫날밤을 설친 뒤 아침에 눈이 떠졌다. 다시 누워도 잠이 오지 않아 걷기로 했다. 이른 아침 나의 하루는 일찍 시작되었다.
익숙했던 북적이는 출퇴근길과 달리 이곳은 간간이 들려오는 자동차소리가 전부였다. 언제 비가 쏟아져도 이상하지 않은 날씨에 우산 없이 밖으로 나온 거라 급하게 일기예보를 확인했다. 점심쯤 비예보가 있어 오늘은 상대적으로 가까운 진포해양공원까지만 갔다 올 예정이다.
머리가 흩날릴 정도의 바람과 함께 날아온 바다의 짠내. 왼쪽 바닷가를 끼고 천천히 걸어간다. 몽롱한 정신을 맑게 해주는 갈매기 울음소리. 혼자서 걷고 있는 내 모습이 외로워 보였는지 위로해 주는 거 같았다.
군산 근대거리
박대로 유명한 군산 수산물센터를 지나 조금 걷다 보면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과거 군산세관이었던 호남관세박물관을 시작으로 근현대의 역사적 흔적을 보여주는 군산근대역사박물관까지 이어져있어 시간여행을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역사에 그다지 흥미가 있지 않지만 근현대사에는 관심이 있다. 터무니없는 먼 과거가 아닌 그 시대를 살아오신 분들이 아직도 내 주변에서 함께 숨 쉬고 있기에 조금 더 뚜렷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특히, 일제 잔재나 6.25 전쟁 흔적을 직접 가보면 이런 역사적 사건이 발생한 게 불과 100년도 안 됐다는 사실이 확실히 체감되었다. 또한, 머나먼 역사에 비해 그 현장에 실제 있었던 거 같은 생생함이 좀 더 느껴졌다. 그래서 국내여행을 다니면 이런 근현대적 유적지를 일부러 찾아가 보며 그 시대의 아픈 기억을 직접 보는 것을 좋아한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을 지나고부터는 본격적인 일제강점기의 흔적이 묻은 근대거리를 마주하게 된다. 과거 은행, 무역회사, 창고 등 다양한 건축물들이 빼곡히 자리 잡고 있었다.
'비록 아픈 역사지만 반복되지 않도록 이런 건축물을 보며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조용히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 당시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조금이라도 겪어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진포해양공원
근대거리는 길 건너 월명동 쪽으로 들어가면 동국사나 다양한 일본식 저택이 있지만 오늘은 그쪽으로 가지 않고 근대거리에서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진포해양공원이 나오는데 그쪽을 둘러보고 다시 돌아가려고 한다. 아침이지만 여유롭게 둘러보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공원으로 들어가기 전 잠시 바다를 구경했다. 바다는 썰물이라 강 하구같이 보였지만 그것보다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건 공원 쪽에 빼곡히 정박되어 있는 어선이었다. 사정은 있겠지만 어선으로 인해 뻥 뚫린 바다 풍경을 보기에는 제약이 많아서 살짝 답답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해양공원이라는 이름과 다르게 공원 안에는 각종 장비들이 전시되어 있다. 6.25 전쟁을 거쳐 90년대까지 우리나라의 안보를 책임진 장비들이 전시되어 있다. 과거 설계를 했었던 경험과 항공기를 좋아하는 내 입장에서는 각종 장비들을 꼼꼼히 보면서 어떤 식으로 설계되었고 어떻게 구동이 되는지 구석구석 관찰하였다. CAD 프로그램 하나 없던 저 시절 어떻게 저렇게 정밀한 장비들을 만들어서 실제 운용을 했는지 참으로 존경스러웠다. 군함은 갑판까지 올라가서 구경할 수 있도록 되어있지만 내부 공사로 인해 입장이 어려울 거 같아서 멀리서 바라만 보았다. 공원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생각보다 구경할 게 많아서 한 번쯤 와서 구경할만하다.
군산에는 곳곳에 옛 철길이 남아 있다. 대표적으로는 경암동 철길마을이지만 미처 제거하지 않은 철길들도 많이 보존되어 있는데 그것 나름대로 매력을 한층 올려준다. 어릴 적 인천에도 그런 사용하지 않는 철길들이 길 곳곳에 있었지만 군산보다 상대적으로 개발이 활발히 이루어져 그런 철길들은 어느 순간 사라졌다. 비록 기차가 달리지는 않지만 철길을 따라 쭉 바라보며 어릴 적 추억을 향해 혼자서 달려본다.
한두 방울씩 빗방울이 얼굴을 치고 튕겨져 나간다. 서둘러 돌아가야 할 시간이라고 하늘이 알려주는 거 같다. 내일은 좀 더 긴 여정을 위해 비가 안오길 속으로 간절히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