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를 배워가는 나트랑 한 달 살기 2

로컬 식당 도전기

by Walk홀릭


한 달 동안 머물러야 하는 나트랑에서 나는 돈을 펑펑 쓸 수 없었다. 그랬다간 한 달 동안 내 통장에 얼마가 빠져나갈지 모른다. 특히 먹는 걸 좋아하는 나로선 가장 먼저 식비를 줄이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단기여행 때는 시간이 더 귀했기 때문에 늘 관광객용 식당을 선택했다. 실패할 확률이 적고 한국인 입맛에 맞는 메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식당 선택의 폭이 좁아졌다. 짧은 여행기간 동안 도박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항상 궁금했다. 한국에서 먹는 한식과 해외에서 먹는 한식의 맛이 다르듯 같은 음식이지만 현지 사람들이 먹는 음식은 어떤 맛의 차이가 있을까? 핑계를 대며 외면했던 것을 이번 한 달 살기 동안에 마음껏 도전해 보기로 했다. 사실 아무 음식이나 곧 잘 먹지만 짧은 여행동안 검증된 곳을 위주로 가는 게 내 입장에선 즐겁게 여행하는 것이라 생각해서 의도적으로 피했지만 이번 기회에 많은 음식들을 즐기고 경험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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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트랑 시내를 벗어나 도착한 식당. 유난히 다른 곳들에 비해 조명이 밝고 식당 앞 그릴에서 땀 흘리며 고기를 굽지만 환한 미소를 띠며 접객을 하는 직원이 인상적이었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2층으로 올라가자 에어컨 없는 가게 안에선 베트남 사람들 사이에 웃음과 술잔이 오갔다. 시끌벅적한 자리에서 조금 떨어져 앉아 해산물 요리를 몇 가지 주문 후 간신히 더위만 벗어줄 선풍기 바람을 쐬며 기다리고 있었다. 조용한 길거리에 비해 활기찬 식당 내부에 나 또한 에너지를 얻었다.


음식이 나오는 속도는 빠른 편은 아니었다. 관광객 위주의 식당은 음식이 나오는 속도도 굉장히 빠른 편이라 음식의 템포와 대기 시간이 길지 않아 별감흥이 없었지만 처음 온 로컬식당은 생각보다 굉장히 느렸다. 불편함보다 '그 나라의 속도'에 맞춰가는 경험이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현지 문화를 배우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음식을 기다리면서 소소한 대화를 하는 베트남인들, 그저 기다림조차 즐기는 듯한 러시아 가족 등 각자만의 방식으로 그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보며 나 역시 잠시 사색에 잠기거나 같이 온 여자친구와 소소한 대화를 하면서 잠시나마 음식 생각에서 벗어났다. 며칠 지난 나트랑에서 성질 급한 내가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게 이런 부분이 아닐까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머리로 느끼기 전보다 몸이 먼저 여유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


KakaoTalk_20251206_145506976.jpg 치즈 가리비구이


KakaoTalk_20251206_145506976_01.jpg 맛조개 마늘 볶음

한 접시에 5천 원 정도의 저렴한 가격으로 관광객 식당과의 가격 차이는 상당했지만 맛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이곳에서 먹은 맛조개 마늘 볶음은 여기보다 맛있는 식당을 나트랑에서 보지 못했다. 가리비 치즈구이에서 모래가 살짝 씹히긴 했지만 맥주 안주로는 충분히 제격이었다. 3만 원도 안 되는 금액으로 맥주와 함께 만족스러운 로컬 식당 첫 도전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KakaoTalk_20251206_145506976_02.jpg 구아바와 노랑 망고


다음날 오전, 바다를 보기 위해 천천히 걸어가는 도중 길거리에서 풍기는 달달한 냄새에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향해보니 길거리에 작은 과일 가게가 있었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망고와 구아바를 주문했고 기대를 가득 품은 채 해변가 벤치에 앉아 서둘러 망고를 맛봤다. 20대 중반 처음 다낭에 갔을 때 먹었던 망고의 그 감동이 조금 재현되었다.


2018년 4월 첫 다낭 여행 때는 길거리에 굉장히 저렴하게 망고를 파는 상인들이 많았고 어느 곳에서 사든 망고가 굉장히 달고 맛있었다. 하지만 올해 4월에 다시 방문한 다낭은 길거리 상인들은 많이 사라지고 프리미엄화된 과일 가게들만 넘쳐나서 가격대비 감동은 조금 아쉬웠다. 반면 나트랑은 아직 길거리에서 합리적인 가격에 과일을 팔아 그때의 감동과 추억을 조금은 되살려주었다.


정신없이 망고를 흡입하니 1kg의 망고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먹는 동안 보지 못했던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가 이제야 눈앞에 펼쳐졌다. 다만 다양한 먹거리와 물건들을 들고 다니며 관광객들에게 호객을 하는 상인들 때문에 바다를 보며 사색에 잠길 틈이 없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수영을 하러 호텔로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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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251206_155149640.jpg 갈비 덮밥과 어묵 국수


호텔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며 더위를 피하고 갑작스레 떨어진 비를 잠시 피하고나니 구름 사이에서도 강렬했던 빛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비가 그친 뒤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왔다. 딱히 정해둔 메뉴는 없었기에 주변을 서성이기만 했는데 호텔 근처에 야외 테이블을 깔아 두고 갈비 덮밥을 팔고 있는 식당을 즉흥적으로 선택했다. 거부하기 힘든 갈비 냄새 때문에 다른 선택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한국돈 5천 원 정도의 갈비 덮밥과 어묵국수를 주문했고 음식은 거의 3분도 안 돼서 나왔다. 식어있는 갈비와 미지근한 국수. 별 감흥 없이 후딱 먹어치웠다. 아마도 현지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바쁜 하루 중 한 끼를 때우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5천 원도 비싼 편이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나름 즐겁게 먹었다.


로컬 식당을 도전한 건 수없이 왔다간 일본을 제외하고는 첫 도전이었다. 서비스, 음식 퀄리티 등 관광객 식당과 비교하면 미흡한 게 많지만 식당에서 느낄 수 있는 현지 문화와 새로운 음식들에 대한 경험은 관광객 식당에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물론 맛도 훌륭한 곳들도 많았다. 그래서 로컬 식당만 일부러 찾아가는 사람들도 있으니 말이다. 또한 음식 외적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보며 배운 여유도 값졌고 이런 부분이 나도 모르게 조금씩 여유를 채워가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한편으로 두려웠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원래대로 돌아가면 어쩌지...'


아직 나에겐 부족한 게 많아서 그런 게 아닐까? 조급해하지 말고 남은 기간 동안 조금씩 채워나가는 것에 집중하기로 다짐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