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를 배워가는 나트랑 한 달 살기 3

베트남 국경일 속 축제 즐기기

by Walk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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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트랑에 온 이후 며칠 동안 해변 광장에 무대를 세우는 광경을 자주 보았다. 일주일쯤 됐을 때 저녁 산책을 나갔다가 무대 테스트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유명한 가수가 오는 걸까?'


혼자 궁금해하던 사이 9월이 되었고 그날이 바로 9월 2일 베트남의 국경일임을 알게 되었다. 베트남에서 매우 중요한 기념일이라 3일가량 연휴가 이어지고 온 도시가 공연과 축제로 들썩인다고 했다. 다시금 생각해 보니 호텔과 펍, 상점 곳곳에 걸린 베트남 국기와 유니폼대신 베트남 국기가 새겨진 빨간 티셔츠를 입은 직원들. 그만큼 베트남 사람들이 국경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광복절 같은 느낌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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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국경일인 줄도 모르고 평소와 같이 저녁을 먹고 산책을 위해 해변으로 향했다. 휴가철이 지나 한산하던 시내가 평소보다 분주했고 사람들의 얼굴엔 웃음과 흥분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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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가가 보일 무렵, 무대에서는 웅장한 음향과 함께 공연이 시작되었고 무대 앞은 금세 관객으로 가득 찼다. 이 날만큼은 수많은 차들이 엉켜 정체를 빚었던 도로를 통제해서 이 작은 도시에서 공연을 보는 사람들, 거리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이벤트를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 활기를 만들어나갔다.


참 운이 좋았다. 항상 짧게 여행만 하다 보면 이런 경험을 하기 쉽지 않은데 한 달 살기를 처음 하게 되면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마침 할 것도 없겠다 사람들 속에 섞여 공연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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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보던 화려한 LED 무대와 정교한 장치 그 안에서 펼쳐지는 공연에 비하면 다소 소박했다. 하지만 이 날을 위해 땀 흘리며 연습하고 마침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공연을 한 모습에 옅은 미소와 박수로 그들에게 존중을 표했다.


조용히 공연을 감상하던 도중 문득 어릴 적 동네에서 열린 작은 축제가 생각났다.


서구 랑랑 축제_2004-10-10_42.JPG 출처 : https://archive.seo.incheon.kr/prog/archiveCate/photo/3/kor/sub01_03/view.do?cateNo=3&dataNo=2


내가 자란 인천의 작은 동네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생 시절까지 한 해에 한 번씩 작은 축제가 열렸다. 특별한 특산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관광객을 유치할만한 매력이 있는 것도 아닌 이곳에서 열린 축제는 무슨 취지인지는 잘 모르나 아마도 동네 사람들이 모여 작게나마 화합을 다지기 위한 축제가 아니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평소 걸어 다니던 거리들이 축제를 위해 통제하니 다른 풍경이 되었다. 익숙한 이곳에서 설렘을 느낄지는 꿈에도 몰랐다. 부모님과 거리를 거닐며 다양한 노점상의 간식과 기념품을 구경하고 동네사람들이 준비한 공연들도 보면서 환호했던 기억이 있었다.


가만 보니 이번 국경일 축제에서 그때와 묘하게 닮은 점이 있었다. 비록 무대도 장비도 완벽하진 않았지만 모두가 축제 그 자체를 즐기고 있었고 그것이 훗날 좋은 추억의 조각을 만들 것이란 점 말이다. 낯선 타국에서 왠지 모를 향수?를 느낀 것 같았다. 어쩌면 어린 시절의 그 소박한 즐거움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공연이 끝난 후 불꽃놀이를 하며 국경일 축제가 절정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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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는 불꽃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뒤돌아 무대 쪽을 보니 공연을 마친 사람들과 관계자, 지인들이 조용히 서로를 격려하고 있었다. 불꽃놀이 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아름다운 공연을 한 사람들에 대한 인사 시간을 가졌으면 어땠을까란 생각을 하며 마음속으로 다시 한번 존중을 표하고 다시 화려한 불꽃을 눈으로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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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기로 접어든 나트랑답게 갑작스레 비가 쏟아지며 축제는 급하게 마무리되었고 사람들은 재빨리 비를 피하려 자리를 벗어났다. 다행히 미리 사둔 우의가 있었기에 우의를 뒤집어쓰고 공연의 여운을 느끼고 들떴던 마음을 가라앉힐 겸 바로 앞 해변가를 천천히 걸었다. 걷다 보면 모래 밖으로 제법 보이는 작은 게 들과 습한 바닷바람을 쐬고 있는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강아지들. 그렇게 시끌벅적했던 공간은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해졌고 파도소리마저 차분해진 거 같았다.


한 달 살기 초반부터 예상 못한 다양한 이벤트들을 경험하니 어쩔 수 없는 약간의 지루함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같은 풍경도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에 따라 새로워 보일 수 있다는 걸 배웠다. 그 새로움으로 인해 좋은 추억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먼 베트남에서 느꼈다. 익숙한 일상 속에서 작은 변주를 찾아내는 것. 그건 반복되는 일상을 잠시나마 재미있게 만드는 소박한 방법이 아닐까.


무엇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나는 그런 태도가 곧 ‘여유’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지금에서야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