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를 배워가는 나트랑 한 달 살기 1

첫날부터 찾아온 위기

by Walk홀릭

(한 달 살기 시점 : 2025년 8월 말)


한산한 새벽의 깜란 공항을 나오니 코에 닿기도 전 피부가 먼저 습한 공기를 맞이했다. 휴가철이 한창일 때의 북적임은 사라지고 나트랑은 예상보다 훨씬 한적했다. 항공기 안에서 한숨도 못 자고 5시간을 비행하니 얼른 호텔로 들어가서 자고 싶었다. 그랩을 타고 밤길을 50분 달려 1박에 2만 원대의 저렴한 호텔에서 늦은 하루를 마무리했다.


새벽에만 해도 주변이 전부 어두웠고 심지어 체크인 카운터도 불을 꺼놓아 어두컴컴했던 나트랑의 첫인상이었지만 아침이 되자 거리는 금세 생기를 되찾았다. 아침 일찍 일정을 시작하는 여행객들의 기운 때문이 아닐까? 특히 내가 묵은 호텔은 여행자의 거리에 있어 호텔 주변에 러시아인들이 굉장히 많았다. 한국인이 많은 거리도 있지만 이곳이 오히려 여행온 기분이 더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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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지막이 조식을 먹고 시작한 나트랑에서 첫 일정은 간단했다. 트래블로그 카드로 미리 환전해둔 돈을 인출하고 나트랑 시내를 천천히 걸어보는 것. 나트랑은 다낭과 비슷하지만 도시 규모는 다낭보다 작기 때문에 걸어 다녀도 웬만한 시내는 전부 둘러볼 수 있었다. 지난 4월 다낭에서 같은 카드를 문제없이 썼던 터라 가벼운 마음으로 가장 가까운 ATM에 카드를 넣었다. 그런데 기계는 곧바로 오류를 띄우고 카드를 뱉어냈다. ‘아 이건 ATM 문제겠지’라며 다른 기기로 옮겼지만 같은 오류가 반복됐다. 불안이 서서히 올라왔다.


'어? 이러다 환전한 돈 전부 사용 못 하는 거 아니야?'

'이러면 비싼 수수료를 지불하고 일반 체크카드로 인출해야 하나? 만약 이것도 안되면 어쩌지?'


다섯 군데를 시도해도 결과는 같았다.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괜히 다른 은행 ATM도 찾아서 시도해보고 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천천히 걸어 다니며 시내를 둘러볼 생각이었지만 현금 인출 문제만 붙잡고 걷다 보니 어느새 두 시간이 지나 있었다. 이런 문제가 빈번한지 여러 번 검색을 해봤지만 생각보다 원인과 해결방법을 명확하게 설명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중 ATM에 현금이 없어서 오류가 날 수도 있다는 글을 보고 마지막으로 호텔에서 가장 가까운 VietinBank지점 앞 ATM에서 인출 시도를 해보았다. 다행히 원활하게 현금을 뽑을 수 있었다. 아마도 ATM에 현금이 채워지지 않아 생긴 문제였던 것 같다. 그 뒤로 한 달 동안 현금을 뽑을 일이 있으면 VietinBank지점 앞 ATM만 안전하게 사용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다낭만큼 큰 도시가 아니라서 이런 일처리가 조금 늦어진 게 아닐까란 안도의 한숨과 함께 생각해 봤다.


KakaoTalk_20251130_132601246_02.jpg 나트랑 담시장


문제가 해결되자 배가 고파졌다. 담시장 근처의 한 로컬 식당에서 넴느엉을 허겁지겁 먹고 담시장을 둘러 한 달 입을 티셔츠와 바지를 골랐다. 다낭에서의 흥정 경험으로 자신 있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예상보다 조금 비싼 가격에 샀음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하루를 통째로 써버린 피로와 문제 해결 뒤에 찾아온 안도감 때문이었을까?


2시간 넘게 현금 뽑겠다고 씨름을 해서인지 생각보다 하루가 굉장히 피곤했다. 담시장부터 호텔까지 천천히 걸어간 후 설레는 첫날을 일찍 마무리했다. 그래도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나트랑에서 지내야 하니 현금 인출 문제에 대해 두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단기 여행과 다르게 시간적 여유가 있었고 어쨌든 해결해서 다행이라 긍정적 감정과 만약 현금 인출을 못하게 되면 어떤 식으로 해결해야 할지 왜 한국돈도 가져오지 않았을까란 불안한 감정


침대에 누워 하루를 되짚어보니 처음 느꼈던 불안은 한 달이라는 시간 앞에서는 의외로 사소한 사건이었다. 단기 여행이라면 그 불안이 더 크게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넉넉하니 문제를 해결하고 다음을 준비할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그 여유는 불필요한 감정을 오래 붙잡지 않고 흘려보내는 태도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아닐까 싶다.


낯선 도시에서의 첫날은 우여곡절로 가득했지만 이렇게 한 장을 넘겼다. 나트랑 한 달 살기의 시작은 생각보다 다이나믹했지만 어쩌면 이 소란은 앞으로 배워갈 ‘여유’의 첫 수업이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