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 없이 휴식으로 가득 채우기
나의 행동에 책임을 지기 시작한 성인이 되고 나서 단 하루도 '그냥' 쉬어본 적이 없었던 거 같다. 항상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시간을 쪼개서 자기개발, 스펙 쌓기를 하고 주말에는 다양한 공부를 하며 시간을 채워갔다. 단순히 지금 내가 고생하고 열심히 살아야만 나이가 들어서 풍족하고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거란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믿음에 점차 금이 가고 있는 거 같다. 여유라는 단어 자체가 사치라고 생각하고 살아와서 그런 건지 다른 원인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점차 몸과 마음이 지쳐가고 있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살아가고 있었지만 이러다간 내가 꿈꾼 미래를 맞이하기 전에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이것이 일종의 무기력함인가 아니면 번아웃인가 정답을 찾으려는 생각조차도 그냥 귀찮았다. 그래서 휴가를 사용하여 가족들과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쉬는 여행을 계획했다. 정말 말 그대로 여유가 무엇인지 잠깐 느끼기 위한 여행인 셈이다.
주말 저녁에 도착한 공항은 활기찰 것만 같았지만 생각보다 한산하고 차분했다. 조용히 여행 기분을 내기에는 적절한 거 같았다. 밤비행기를 타며 여행 전 그간 쌓였던 스트레스와 많은 고민들을 먼저 정리하고 기분 좋은 여행을 하려고 했지만 되려 더 많은 생각들에 잠기게 되어 잠을 설쳤다. 아직은 내가 좋지 않은 감정들을 떨쳐내기는 부족했다.
새벽 늦게 도착한 다낭의 작고 낡은 숙소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숙소를 옮기기 전 예약해 둔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가볍게 신을만한 신발을 사기 위해 한시장에 갔다. 아침에 바라본 미케비치의 모습과 반대로 이곳은 정말 아침부터 활기가 넘쳤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시장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여 활력을 채워주는 거 같다. 시장과 그 근처 여행자 거리의 북적한 분위기도 정말 좋지만 이번만큼은 잠시 이곳에서 멀어지려고 한다. 오로지 바쁜 현대 생활을 잠시 벗어나 '여유'를 느껴보기 위해 이곳에 왔으니 말이다.
한국에 돌아가기 전까지 머물 호텔에 도착했다. 빠르게 짐을 풀고 저녁 먹기 전까지 루프탑에 위치한 수영장으로 갔다. 코앞에 있는 미케 비치도 좋지만 좀 더 편하고 제대로 쉬기 위해 이날만큼은 넓게 펼쳐진 해변가보단 작지만 편안한 수영장을 택했다. 뜨거운 다낭의 날씨를 피해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과 선베드에 누워 진정으로 여유를 느낄 줄 아는 사람들이 어울려 각자만의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그 속에서 조용히 물속으로 들어와 수영을 하며 수영장 바로 앞에 펼쳐진 해변가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쉬는 날 가만히 누워있지도 못하는 내가 한 시간 넘게 해변가를 바라보며 생각을 비우는 시간을 갖는 것이 이것이 진짜 여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일렁이는 물살에 다양한 각도로 반사되는 빛이 마치 플래시를 연상하는 거 같았다. 저 반짝이는 빛들이 마치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거 같았다. 직장 생활 속에서 나는 회사를 비춰주는 작은 조연에 불과했다. 회사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나 자신을 희생한다는 느낌이었다. 그 과정의 끝에는 약간의 보수와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성취감 그리고 수치화할 수 없는 스트레스였다. 그런 생활에서 벗어나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본 해변가에서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거 같은 반짝이는 바닷물을 보면서 나를 비추는 삶이 나에게는 정답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좀 더 나다운 삶을 늦기 전에 해보고 싶은 생각의 잔상이 남았던 거 같다. 작은 생각이란 물살이 한데 모여 나를 비추는 삶의 물살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이 날만큼은 나도 주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