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호이안 속으로...
한없이 시원한 에어컨 아래 계속 잠들고 싶은 날. 원하지 않았지만 아침 일찍 잠에서 깼다. 옵션으로 포함된 조식을 다양하게 맛보고 난 후 피트니스 센터에서 잠시 놓아두었던 운동을 하면서 아침을 보냈다. 여유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쫓기지 않는 자유로움이 아닐까. 평소 정신없이 출근하던 일상과 달리 오늘 아침만큼은 한 박자 느리게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누렸다.
오늘은 호이안에 가는 날이다. 다만, 빡빡한 일정이 아닌 충분하게 휴양을 즐긴 뒤 해가 떨어질 때쯤 출발할 예정이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관광이 아닌 '휴식'에 포커스를 맞췄기 때문이다. 또한 호이안은 낮에도 충분히 매력적인 도시지만 해가 지고 홍등이 비추는 모습이 될 때 진가를 발휘하기 때문에 늦게 출발하는 것도 있다.
호텔 근처, 작은 카페에 들렀다. 여행지의 카페나 바에서 긴 시간을 보내는 외국인 여행자들을 예전엔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한 곳이라도 더 보고 한 컷이라도 더 남기고 싶은 곳에서 그들은 왜 그렇게 느리게 시간을 보낼까... 이젠 알겠다. 숨 가쁜 일상을 떠난 이곳에서 나 역시 그 여유로움을 조금은 누려보니 말이다. 풀숲 너머 작은 테라스, 조용한 테이블 한 켠에 앉았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요즘 빠져 있는 소설책을 읽기 위해 태블릿을 바라본다. 햇살이 창가를 타고 살짝 새어 들어오는 자리에서 책을 읽지만 많은 생각들이 교차하여 잠시 태블릿을 내려놓고 창밖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간의 인생이 부정당하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지배했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하니 내가 살아온 인생이 내가 바라던 삶을 가져다주지 않았지만 그렇게 살기 위한 실행력을 가져다준 계기가 된 것은 분명했다. 그래서 부정적 생각을 버리는 노력과 함께 앞으로 진정한 내 인생을 살기 위한 다양한 생각들로 다시 머릿속을 채우니 상상만 해도 정말 설렘 가득했다. 좋은 기분만 남긴 채 다시 책을 천천히 읽어 나갔다.
밝은 빛이 점점 붉게 물들 즈음 호이안으로 출발했다. 그랩을 타고 미케비치를 따라서 50분쯤 달리다 보니 다낭과는 또 다른 고즈넉한 동네들이 점차 창밖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7년 전 다낭에 처음 왔을 때 봤던 호이안의 모습을 잊을 수 없어 가족들에게 같은 느낌을 전해주고 싶어 이번 여행의 유일한 관광 일정이었다.
다시 와본 호이안은 처음 봤을 때 느낌과 또 달랐다. 이래서 같은 여행지를 오랜 기간 텀을 두고 와보라고 하는지 알 거 같았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아 천천히 올드 타운 곳곳을 걸으면서 호이안 거리와 건물들을 천천히 둘러보며 호이안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를 느끼는데 집중했다. 과거의 경험과 다르게 밝은 빛이 비친 호이안의 모습 또한 상당히 매력적이고 어쩌면 진짜 호이안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고즈넉한 건물 안에서 팔고 있는 다양한 물품들과 음식들.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한데 모여 아름다운 호이안의 모습을 보며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뭔가 과거 이곳에서 다양한 나라 사람들이 무역을 하기 위해 모인 모습이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해본다.
느리게 올드 타운을 거닐다 보니 햇빛은 점차 사라지고 그 빈 곳을 홍등의 색으로 가득 채워 어둠을 밝혔다. 호이안을 유명하게 만든 것도 어쩌면 이 홍등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까 봤었던 풍경들이지만 마치 다른 장소에 온 것처럼 새로워 하염없이 쳐다보며 나만의 메모리인 추억에 저장했다.
호이안에 오면 꼭 한다는 소원배를 타고 소원 등을 강물에 띄우기. 요즘 간절하게 바라는 나의 삶이 확고하기 때문에 이번에 소원 등에 불을 붙이고 소원을 비는데 순간 몰입이 되었다. 정말로 이렇게 간절한 적이 있었나 싶었다. 물론 이벤트성 미신이지만 소원을 빈만큼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온전히 '나'이기에 소원이자 실행을 다짐하는 시간이 되었던 거 같았다.
오늘 나에게 호이안은 낮보다 밤이 더 빛난 날이었다. 내 마음속 작은 바람의 등불이 떠다니며 열정이라는 큰 불길을 만들어 지치지 않고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길 조용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