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달랏, 숲 속 작은 리조트에서 3일
달랏을 처음 다녀온 지 며칠 만에 다시 달랏으로 향하는 날이 왔다. 이동 시간이 길어 아침 일찍 리무진 밴에 올랐다. 자유여행으로 달랏을 오가는 사람들 대부분은 서양인이었고 영어가 짧은 나는 대화에 끼지 않고 이어폰을 꽂은 채 필름이 도는 것처럼 스쳐 가는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이동했다.
지난 투어 때 잠에 취해 몰랐었던 달랏 가는 길은 굉장히 몽환적이었다. 밑이 보이지 않을 만큼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는데 산중턱에 걸린 구름이 마치 쉬고 있는 듯 보였다. 그 장관은 여정 내내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다.
이번에 머물 숙소를 고르다 한 곳에 눈길이 멈췄다. 달랏 외곽 소나무 숲에 위치한 작은 리조트였다. 숲을 훼손하지 않고 공존하는 디자인, 빽빽한 소나무 사이로 자리한 건물들이 묘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고민 없이 예약을 마치고 달랏을 여행하기 전 이곳에서 먼저 머물며 숲의 분위기에 녹아들기로 했다.
다시 온 달랏의 공기는 여전히 콧속부터 시원하고 쾌적해서 장시간 이동한 몸과 마음의 피로를 풀어주었다. 도착하자마자 쏟아지는 스콜성 폭우를 피하고 리조트에서 즐길만한 술과 간식을 사기 위해 마트를 들린 후 체크인 시간에 맞춰 리조트로 향했다.
숲 속의 작은 마을에 온 것 같은 분위기와 들뜬 기분을 만족감으로 바꿀만한 친절한 직원들. 상쾌하고 이슬이 맺힐만한 적당한 습기가 벌써부터 기분을 좋게 했다. 높게 솟아오른 소나무들 사이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리조트를 바라보니 시작도 전에 3일이 짧다는 생각이 들어버릴 정도였다. 버기를 타고 2박 동안 묵을 숙소로 향했다. 객실 안내를 받으며 내부를 둘러보니 객실에 냉장고가 없어 공용 주방과 공용 냉장고를 이용해야 하는 불편은 있었지만 단점을 상쇄할 정도로 장점들이 훨씬 돋보였다.
침에 누워 울창한 소나무숲을 보기만 해도 좋았다. 하지만 고요하고 아름다운 풍경 속을 직접 피부로 느껴보고 싶어 바로 산책에 나섰다. 비가 막 내린 뒤라 약간 쌀쌀해서 얇은 겉옷을 입고 소나무 숲 사이사이에 있는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 다녔다. 객실이 많지 않아 사람이 북적이는 분위기가 아니라서 더욱 여유를 느끼기 좋았다. 걷다 보면 벤치에 사이좋게 앉아서 소나무 숲을 바라보는 노부부, 작은 나무 테이블 위에서 노트북 작업을 하는 젊은 베트남 사람들. 해변가에서 보던 여유와는 다른 조용한 여유가 각자에게 스며들어 있었다. 나 역시 길을 따라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 나만의 여유를 누리고 있었다.
걷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쳐갔다.
‘장소가 주는 여유가 이런 걸 말하는 걸까?’
특별히 무언가 하지 않아도 조급함이 없고 지루함이 없는 상태. 억지로 여유를 만들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평온함. 숲 속에 홀로 울리는 작은 새들의 소리마저 하나의 연주가 될 수 있는 이런 생각과 느낌을 앞만 보고 달려오던 시간에는 이런 것들을 알아차렸을까. 아니, 어쩌면 이걸 여유라 생각하지 못했을 거다. 조금씩 여유를 배우는 나에게 이런 시간과 깨달음이 조금이라고 이른 시간 얻을 수 있음에 마음속 깊이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리조트에는 객실 외에 레스토랑, 도서관, 놀이터, 자체 농장까지 있었다. 무엇 하나 숲과 이질적으로 튀지 않고 모두 자연에 어우러져 있었다.
천천히 리조트를 둘러본 후 객실로 들어가 짐을 풀고 약간의 휴식을 취하고 나니 어둠이 찾아왔다. 해가 지는 게 이렇게 아쉬운 적은 처음이었다. 어둠으로 뒤덮인 리조트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수많은 조명이 화려함 대신 차분함을 만들었다. 어둠 때문인지 더욱 고요함이 깊어진 숲길을 걸어 예약했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차분한 음악이 흐르는 길 위에서 자리를 안내할 직원이 마중 나와있었다. 예약정보를 확인 후 식사할 장소를 선택해 달라고 했다. 비가 왔던 터라 쌀쌀해진 날씨에 실내에서 식사하기로 했다. 레스토랑으로 들어가던 중 바라본 야외 테이블의 공간이 이곳의 분위기를 더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것 같아서 다음날에는 무조건 야외에서 먹기로 다짐했다.
레스토랑에 버섯샐러드와 파스타를 주문했다. 식당은 적막에 가깝게 조용해서 대화는 속삭이듯 나눴다. 식전빵을 즐기고 있을 무렵 나온 샐러드와 파스타. 새우 내장을 활용해 풍미를 더한 파스타도 맛있었지만 진짜 별미는 버섯 샐러드였다. 자체 농장에서 직접 기른 유기농 채소들을 가지고 만든 샐러드인데 채소가 억세지 않고 부드럽게 씹히면서 각각의 향이 고스란히 전달되어 순식간에 그릇을 비웠다.
행복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숙소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숲이 주는 배경 덕분에 그런 걸까? 앉아만 있어도 힐링이 되는 숲 속의 작은 리조트에서 하루가 끝이 났다. 우연히 찾은 이 리조트가 인생 리조트가 될 줄은 몰랐다. 하루가 빠르게 저물었지만 남은 이틀 동안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리라 기대하며 조용히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