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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인 Feb 25. 2024

차 빌려서 단풍 구경하고, 핼러윈 파티 경험하기

10월 28일

본 글은 브런치북 <떠돌이 직장인의 시카고 한달살기>의 연장선입니다. 브런치북이 30회까지만 연재할 수 있는지 몰랐네요. 아직 3-4회 정도의 분량이 남았는데, 묵묵히 완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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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에서 보내는 마지막 주말이다. 친구는 여행이 며칠 안 남은 날 위해 주말 일정을 최대한 비웠다. 중간고사다, 인턴 준비다 정신없이 바쁠 텐데 한국에서 한달살기 하러 온 친구까지 챙기느라 고생이 많다. 글로 쓰면서 새삼 고맙네. 가끔 내 브런치에 놀러 오는 친구야, 보고 있니! 


토요일은 현지인처럼 돌아다니며 바쁘게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낮엔 렌터카로 근교 투어를 하고, 저녁엔 핼러윈 파티를 여는 바(bar)들에 다녀오는 계획이었는데, 아침부터 두근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일상에서든 여행에서든 정적인 곳에서 사유하는 게 익숙하고, 해가 지면 집(여행 중엔 숙소)으로 돌아가는 라이프스타일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행이 생기면 여행 스타일은 그에 맞게 변한다. 예를 들면, 가족 여행에선 가이드로서 관광지와 맛집들을 최대한 방문하려 하고, 친구와의 여행에선 그 지역의 야경도 보고 사람 많은 곳들을 일부러 찾아가 놀기도 한다. 그런 여행들은 라면땅 사이의 별사탕처럼 특별하고 재밌는 기억으로 남는다. 


시카고에서 때때로 동행해 준 친구는 집보다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다. 같이 살 때도 얼굴 보는 시간이 길지 않았다. 나는 집에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반면, 친구는 친한 사람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게 큰 낙이랬다. 


그래서 둘이 여행하면 서로 다른 성향이 조화롭게 섞였다. 나는 친구를 따라 재즈바를 가고, 친구는 종이책을 챙겨 와 읽다 잠들었다. 15년 동안 이렇게 많은 경험을 함께 했는데도 안 싸웠으면 앞으로 50년도 문제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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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토요일 아침은 렌터카 픽업으로 시작했다. 다른 유학생들도 많이 이용한다는 'zipcars'를 통해 전날 예약해 뒀다. 우리나라 쏘카나 그린카처럼 집 근처에서 무인 픽업하면 된다. 


초록색 표지판을 찾아 가까이 가니, 무슨 풍파를 겪었는지 앞쪽이 여기저기 까진 회색 도요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은 괜찮은가 싶었는데 내비게이션이 작동이 안 됐다. 다행히 친구는 운전을 꽤 잘하는 편이라 그냥 휴대폰 지도 앱에 의존하겠단다. 



첫 번째 목적지는 시카고 대학 근처의 '하이드 파크(Hyde Park)', 그중에서도 미시간 호 쪽으로 불쑥 튀어나와 있는 '프로몬토리 포인트(Promontory Point)'였다. 원래의 계획은 공원에서 피크닉을 즐기는 거였다. 그래서 집에서 샌드위치도 싸왔다. 그런데 날씨가 안 도와줬다. 시카고의 별명은 '바람 부는 도시(Windy City)'라는데, 바람에 비까지 흩뿌리는 건 반칙이잖아!



그래도 넓디넓은 공원 한복판에서 단풍을 보려니 가슴이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가을은 쓸쓸해야 제맛이라는 둥, 이게 시카고라는 둥 헛소리를 하며 바람소리보다 더 크게 웃었다. 사람이 없어 우리가 대화를 멈추니 바람에 단풍잎들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게 눈으로도 귀로도 참 인상적이었다. 괜히 큰 몸동작으로 낙엽들을 밟아보니 버석버석한 소리가 났다. 



풍경이 익숙해지니 흥분이 좀 가라앉고, 대신 추위가 강하게 느껴졌다. 차로 대피해서 다음 목적지를 검색했다. 시카고에 와서 쇼핑은 거의 안 했는데, 여행 막바지에서야 기회가 왔다. 'Pleasant Prairie Premium Outlet'이라는, 일리노이주가 아닌 위스콘신주에 있는 아웃렛에 가기로 한 것. 시카고에 있는 아웃렛들에 비해 택스가 적고,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싸서 유명하단다. 


쭉 둘러보니 정말 스포츠 브랜드들만 가격이 저렴했다. 미국 아웃렛이니 폴로나 타미힐피거가 좀 저렴할 거라 생각했는데, 누구도 안 살 것 같은 제품만 할인 중이었다. 결국 운동복만 잔뜩 사고, 푸드코트에서 중식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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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렛에서 돌아와 차를 반납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이라이트는 이제 시작이었다. 저녁에 다운타운에 가, 미국의 핼러윈 파티 문화를 살짝 맛보기로 했다. 친구 덕에 혼자라면 상상도 못 했을 일들을 압축적으로 경험하는 하루다. 


저녁은 집에서 먹고 가는 게 좋겠다 싶어 우버 이츠로 '브리스킷(Brisket)'이란 고기 요리를 주문했다. 사과 코울슬로에 고기를 결대로 찢어 바비큐 소스를 찍어먹었다. 



밥도 먹었겠다, 해도 완전히 졌겠다, 이제 나가기만 하면 된다. 우리가 다운타운에서 경험할 핼러윈 이벤트는 저녁 8시부터 새벽 2시까지 시카고의 여러 바들을 돌아다니는 'Bar Crawling'이라는 파티였다. 이벤트 페이지에서 1인당 20달러로 입장권을 샀다. 링컨파크, 레이크뷰, 위커파크 중 장소 하나를 선택해 밤새 바를 옮겨 다니면 된다. 우리는 링컨파크로 갔다. 


시작점은 'Takito Street'라는 곳이었는데, 여기서 온라인 바우처를 실물 티켓과 음료 할인권으로 교환했다. 잃어버리지 말라고 이 종이들을 클립에 껴주는데, 무색하게도 중간에 잃어버렸다. 



누가 핼러윈 파티 아니랄까 봐 바엔 인형탈 쓴 사람, 길리슈트 입은 사람, 심지어는 입은 게 거의 없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코스튬이 아닌 평상복을 입고 있는 사람은 우리뿐인 것 같았다. 대화가 안 들릴 정도의 큰 소리로 음악을 듣고, 많은 사람들 사이에 서 있는 건 대학교 신입생 때 이후로 처음이다. 쿵쿵 소리에 심장이 물리적으로 울리는 듯한 느낌에 흥이 오르긴 했지만, 한 시간도 못 되어 급격히 피곤이 물려왔다. 


바에서 나와 한두 블럭을 걸으니 주택가가 나왔다. 핼러윈 테마의 소품들로 꾸민 가정집들을 구경하다 콜드스톤을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에 냉큼 들어가 민트초콜릿 아이스크림 한 스쿱을 주문했다. 술 마시다가 중간에 아이스크림 먹는 것도 대학생 때 생각이 나서 기분이 묘했다. 



잠깐 쉬었다가 'LP's T.A.P. House'라는 두 번째 바로 이동했다. 2층짜리 피자 전문 펍이었다. 2층으로 올라갔더니 다들 춤을 추고 있어 뒷걸음질 쳐 1층으로 돌아왔다. 춤은 자신 없다, 정말. 이건 대학교 때도 안 했던 거라 도전할 용기조차 없다. 


다행히 1층은 바나 일반 테이블에 앉아 스포츠 경기 보는 사람들과 술 마시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우리도 편한 마음으로 그 사이에 섞여 맥주를 한 잔씩 마셨다. 친구가 나 때문에 충분히 즐기지 못한 것 같아 미안했는데, 처음부터 이럴 거라 생각했단다. 그냥 특별한 이벤트를 같이 경험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거 아니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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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성인이 되어 친해진 사람 중 나처럼 술을 잘 못 하는 사람이 있냐고 물었다. 곰곰이 생각하더니 없다고 대답했다. 보통은 술자리에서 웃고 떠들고 친해지고 나면 그 이후엔 술 없이도 즐겁게 놀 수 있다는 거다. 

우린 고등학교 때 만났으니 이만큼 친해질 수 있었구나. 이렇게나 다른 사람 둘이 평행선을 그리며 사이좋게 나이 들어가는 게 참 신기하고 소중하다. 


결국 일요일로 넘어가기 전에 무사 귀가했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돌아다닌 하루인데 '무얼 했다' 보다 '친구랑 엄청 많이 웃었다'로 한 줄 요약할 수 있는 토요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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