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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인 Oct 11. 2019

고기를 실컷 먹고 싶다면 프라하로!

체코의 고기 요리를 소개합니다

돈가스보다 샐러드가 비싼 곳, 파릇파릇한 야채보다 육즙 가득한 고기가 흔한 곳, 그곳이 바로 프라하다. 우리나라에서 2만 원이 훌쩍 넘을 것 같은 음식을 만원대 초반에, 심지어 동네에서는 그 이하로 즐길 수 있다는 건 하루에 2만보씩 걷는 주머니 가벼운 여행자에게는 큰 행운이다. 



어느 한식당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비빔밥이나 불고기처럼, 웬만한 체코 음식점의 메뉴판 첫 페이지, 혹은 두 번째 페이지에서 만날 수 있는 고기 요리들을 소개해본다. 




스비치코바(Svícková)

소고기 등심에 크림소스와 라즈베리 콩포트 더하기


이름부터 생소한 스비치코바는 본 글에서 언급할 음식 중 비주얼도, 맛도 가장 특이했다. 숭덩숭덩 썰어놓은 고기와 빵, 그 위에 베이지색 소스. 불고기와 제육볶음의 민족에게는 생소한 색의 소스다. 레시피를 찾아보니 그레이비(고기를 익힐 때 나온 육즙에 밀가루 등을 넣어 만든 소스)에 채즙을 섞어 만든다고 한다.  


포트레페나 후사의 스비치코바


소스가 흥건한 고기는 한 입 크기로 잘라 생크림과 라즈베리(혹은 크랜베리) 잼을 조금씩 발라 먹으면 된다. 씹으면 씹을수록 다양한 맛이 느껴진다. 달고 짜고 느끼한데 그 정도가 강하지 않다. 


숙소 근처에 다양한 체코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체인점 '포트레페나 후사(Potrefena husa)'가 있었다. 도착 첫날 이곳에서 스비치코바를 주문했다. 먹는 법을 설명해주는 직원 앞에서 우리 셋의 동공은 얼마나 흔들렸던지! 본식과 디저트가 한 접시에 있는 것 같은 모습에 우리의 포크는 잠시 허공을 헤매었지만 먹다 보니 중독됐다. 


찐빵 같은 크레들리키가 인상적이었던 스비치코바(가장 위)


돈가스나 함박 스테이크에 밥을 곁들여 먹듯, 스비치코바에도 간이 센 고기와 함께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다. 식당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가장 흔한 건 식감이나 맛이 찐빵과 닮은 크레들리키(Knedlíky)다. 별 맛은 없지만 쫀득하고 담백하다. 소스에 푹 찍어 고기와 함께 입에 넣으면 각자 다른 방식으로 부드러운 재료들이 입안에서 조화롭게 섞인다.  




굴라쉬(Goulash)

진한 고기 스튜에 찐빵 곁들여 먹기


스비치코바의 친척쯤 되는 요리가 있으니, 바로 굴라쉬다. 헝가리의 전통 음식이지만 체코 등 주변 국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각종 야채나 고기와 함께 끓이는 우리나라식 카레와 튀김 등의 토핑을 건더기 없이 묽은 카레에 추가하는 일본식 카레가 다르듯 같은 굴라쉬라도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다.


헝가리식 굴라쉬는 보통 수프 그릇에 서빙된다. 비슷한 크기로 깍둑 썰기한 고기와 감자가 들어 있다. 체코 버전 굴라쉬는 농도가 더 짙다. 수프보다는 소스에 가깝다. 따라서 우묵한 그릇이 아닌 평평한 접시에 담겨 나온다. 농도와 그릇, 스비치코바와 닮은 첫 번째 포인트다.  


또 다른 공통점은 눈에 보이는 재료가 고기와 빵뿐이라는 것이다. 스비치코바처럼 소고기를 주로 쓰지만 돼지고기로도 요리하는 곳도 있다. 장조림처럼 결대로 찢어지는 식감이 매력 있다. 빵은 크레들리키일 때도, 호밀빵일 때도 있다.


로코비치 팰러스 카페의 굴라쉬와 맥주


굴라쉬를 맛있게 먹은 곳은 프라하 성 근처의 '로코비치 팰러스 카페(Lobkowicz Palace Cafe)'다. 양파, 마늘, 파프리카 등의 야채와 고기를 뭉근히 끓여 낸 탓에 소스가 진득하고 깊은 맛이 난다. 짙은 갈색을 띠고 있어 짜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맥주나 빵으로 상쇄할 수 있을 정도의 짭짤함이었다. 



참고로, 이곳 뷰는 최고다. 테라스에 앉아 여유롭게 프라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꼴레뇨(Koleno)

낯선 돼지 요리에서 익숙한 족발의 향기가 난다


한국엔 족발이, 독일엔 학센이 있다면 체코엔 꼴레뇨가 있다. 모두 돼지의 다리가 주재료다. 조리 방식에 차이가 있지만 셋 다 두툼한 고기가 커다란 뼈를 감싸고 있는 덩어리 형태다. (썰기 전의 통 족발을 상상해주세요.) 여행 전 '프라하 음식'을 검색해 사진을 훑어보며 가장 위압적인 비주얼을 자랑한다 생각했던 음식이다. 


꼴레뇨를 처음 맛본 건 프라하의 근교 도시 체스키크롬로프에서다. 주먹 두 개를 모은 것보다 큰 크기에 한 번 놀라고, 썰리지 않는 단단한 껍데기에 두 번 놀랐다. 간장에 푹푹 삶아 내는 족발과 달리 꼴레뇨는 오븐에 굽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겉 다르고 속 다른 식감이다. 


체스키크롬로프에서 먹은 꼴레뇨


"그래도 칼은 들어가야지...(헛웃음)"

망치처럼 칼로 껍데기를 '깨' 먹은 첫 꼴레뇨의 기억은 강렬했다. 포크로 건드리기만 해도 뼈에서 분리되는 안쪽 고기는 맛있었기 때문에 일주일 후 프라하의 '우플레쿠(U Fleku)'라는 식당에서 두 번째 시도를 했다.


우플레쿠의 꼴레뇨, 소시지, (빈약한) 샐러드


이곳 꼴레뇨는 딱딱하기는커녕 칼이 필요 없을 정도로 부드러웠다. 결대로 길게 찢어지는 고기는 톡 쏘는 겨자 소스와도, 짜고 시큼한 양배추와도 잘 어울렸다. 

 

우플레쿠의 흑맥주


현지인도, 관광객도 항상 많은 곳이라 좋게 말하면 활기차고, 나쁘게 말하면 소란스러운 편이다. 그렇지만 흑맥주와 함께 음식을 흡입하다 보면 어느새 나도 식당 내 소음에 한몫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타르타르(Tartare)

빵에 올려 먹는 육회의 맛


마지막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요리다. 타르타르는 생 소고기를 다져 뭉쳐 놓은, 우리나라의 육회와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참기름 대신 허브향이 가득하다는 것. 


워낙 고기가 저렴하고 질이 좋은 프라하라 평소 날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도 타르타르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이왕 먹는 김에 정육식당을 골랐다. 구글 평점이 무려 4.7인 '칸티나(Kantyna)'라는 곳. 들어가자마자 고기 진열대를 마주하게 되는데, 메뉴와 고기 양을 정할 수 있다. 안쪽에서는 으깬 감자나 튀김 같은 사이드 디쉬를 주문할 수 있다. 


칸티나의 타르타르 


이 날의 몸 상태는 편도선이 잔뜩 부어 쇳소리만 작게 낼 수 있는 지옥의 컨디션이었다. 입맛이 없어 어쩌나 싶었는데 타르타르를 한 입 먹는 순간 생각이 바뀌었다. 짜거나 느끼한 맛이 아닌 산뜻한 향을 품은 생고기는 씹을수록 고소했다. 바삭하게 구운 빵에 마늘 한 쪽을 문지른 뒤 고기를 조금 올려 먹으면 식감이 배가 된다. 


칸티나의 반반 맥주


많이 마시지는 못했지만(엄청 후회하는 중) 이곳 '반반 맥주'도 추천한다. 위는 흑맥주, 아래는 라거다. 한 잔에 두 가지, 아니 섞어 마시면 세 가지까지 맛을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음료다. 




여행 2주 차까지는 신나게 고기 요리를 먹고 다녔다. 가격이 저렴하니 돈을 버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신나게 단백질과 지방을 섭취했다. 열흘쯤 지나니 야채가 그리웠다. 소스에 푹 절여진 야채 말고 파릇파릇하고 알록달록한 신선한 야채들이. 


프라하 물가가 마냥 싸지 않음을 깨달은 것도 그즈음이다. 한입거리 샐러드가 7천 원, 채식 식당에 갔다 하면 1만 5천 원. 이후 2주간 눈물 나는 '고기 나라에서 야채 찾기 모험'은 계속됐다. 


그렇지만 괜찮아요. 고기와 밀가루와 맥주를 실컷 먹을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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