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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서 돌아보는 프라하 3주

터키항공의 기내식은 역시나였다...

by 이재인

프라하에서의 3주는 여느 여행처럼 즐거웠지만 마지막 며칠의 몸상태는 심각하게 좋지 않았다. 평소라면 눈물 나게 아쉬웠을 공항 가는 길이 오히려 간절했던 건 그 이유다. 바츨라프 하벨 공항으로 가는 트램 안에서 나는 마스크 낀 얼굴을 머플러에 깊게 묻고 눈까지 꾹 감아버렸다.


사진1.jpg 공항 가는 길에 본 프라하 시내


공항에 도착해 체크인하고 짐을 부치려는데 갑자기 캐리어 손잡이가 말썽이었다. 한 뼘 정도 비죽 나온 채 아무리 당기고 밀어도 움직이지 않았다. 크지도 않은 캐리어를 '오버사이즈 수하물 코너'에 맡겼다. 입을 열어도 쇳소리밖에 나오지 않을 때라 이 과정은 모두 P의 목소리를 빌려 진행했다.


프라하에 올 때와 마찬가지로 터키항공을 이용했다. 비행 스케줄은 아래와 같았다.

- 9월 27일 14:40 인천 출발 [TK1772편]

- 이스탄불 경유

- 9월 28일 20:45 이스탄불 출발 [TK0088편]

- 9월 28일 12:55 인천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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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비행기의 좌석은 3-3 구조였다. P와 나는 가운데를 비워 두고 양 옆을 예약했다. 헛된 희망이었다. 중간 자리에 키가 큰 여성 분이 앉았다. 그는 이륙하자마자 신발과 양말을 차례로 벗고, 한쪽 다리를 다른 쪽 위에 올렸다. 두 시간 반 정도의 짧은 비행이지만 견딜 자신이 없어 승무원에게 양해를 구해 비어 있는 앞 줄로 자리를 옮겼다.


기내식이 나왔다. 이국적인 향이 코를 찔렀다. 고기에서는 향신료 맛이 강하게 났고 같은 양념을 콩 조림에도 쓴 건지 영 손이 안 갔다. 흰 소스에 절인 피클과 새큼한 라즈베리 요거트까지 어느 하나 무난한 게 없었다. 공항 빵집에서 사 온 빵이 남아 있어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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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내식 정리가 끝나자 비행기도 착륙 준비를 했다. 이스탄불은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공항 스타벅스에 잠깐 앉아 있다가 환승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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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비행기의 좌석은 운 좋게도 갤리 바로 뒷줄을 배정받았다. 한 시간 동안 다리에게 자유를 줄 수 있다는 게 너무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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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기내식의 메인은 닭고기였다. 메뉴판에는 '카페 드 파리 소스에 양념된 닭'이라 쓰여 있었다. 소스에서는 버터와 토마토 맛이 났다. 구운 호박, 가지, 고추 등이 곁들여져 있었다. 초코 무스가 제일 맛있는 식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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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고 스크린으로 영화를 보려는데 눈이 뻑뻑하고 머리가 울렸다. 감기 기운이 심해 이어폰을 빼고 안대를 썼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프라하에서의 3주를 돌아보기로 했다.


KakaoTalk_20200114_210416982.png 마이 아파...



프라하는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도시였다.

첫 일주일은 정신없는 곳이라 생각했다. 대표 랜드마크인 프라하성과 비투스 성당, '세계적인 야경 명소'라는 명성을 얻게 해 준 까렐교, 그리고 크고 작은 성당과 기념품샵이 즐비한 올드타운까지. 프라하를 '2박 3일이면 충분한 관광 도시'라 말하는 사람들은 아마 유명 관광 포인트가 밀집된 1구에만 머물러서 그런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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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주는 문화생활로 가득했다. 미술관, 오페라, 그리고 곳곳의 전시와 영화들. 'National Theater'에서 15000원 내고 오페라를 본 날은 정말 잊을 수 없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추운 날씨에도 코트를 입고 구두를 신은 노부부들이었다.


사진8.jpg National Theater의 오페라 극장


마지막 주는 숙소를 옮겨 7구에서 보냈다. 아침저녁에만 길거리에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이었다. 차분하고 여유로웠다. 집에서 일하다가 심심하면 동네 산책을 했다. 아침엔 근처 식당에서 오픈 샌드위치를 사 먹고, 오후엔 집 앞 카페에서 죽치고 있는 평화로운 일상이 반복됐다. 어설픈 디지털 노마드의 최후는 감기 몸살이었지만, 그래도 7구에서의 일주일은 만족스러웠다.


사진9.jpg 아침 8시에 줄 서서 산 오픈 샌드위치


한 도시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프라하는 그런 곳이었다.
다양한 매력이 겹겹이 쌓여 있는 곳.


여기까지 생각하고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땐 아침 기내식이 나오고 있었다. 치즈를 많이 넣어 부드럽고 느끼한 오믈렛 옆에는 시금치 패스트리가 있었다. 요거트처럼 묽은 라이스 푸딩과 샐러드를 곁들여 먹으며 다시 한번 생각했다. 터키항공 기내식은 맛있는 편이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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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창 밖으로 익숙한 풍경이 보였다. 다시 나의 도시에 두 발을 붙일 때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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