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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인 Jan 10. 2020

당신이 모르는 프라하

구석진 프라하를 찾아서

프라하는 유독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도시다. 여행의 방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무척 다른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해질녘 파리의 에펠탑과 센강을 보며 우수에 젖거나 베네치아에서 곤돌라 위 뱃사공의 노래를 듣고 감탄해본 경험이 있다면 프라하 여행이 ‘호’에 가까워질 것이라 생각한다. 



프라하는 이역만리 동아시아 사람들의 머릿속 ‘유럽의 풍경’이라는 환상을 잘 재현하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지천에 깔린 오래된 성당들, 저마다의 역사를 가진 식당들, 으스스한 목각인형과 달콤한 굴뚝빵 같은 것들을 구경하고 맛보다보면 동유럽의 이국적인 분위기에 잔뜩 취하게 된다.



하지만 ‘로컬’이라는 단어에 두근거림을 느끼고, ‘그건 막상 여기 사람들은 별로 안 좋아한대’라는 말을 들으면 김이 빠지고, 3~4일씩 머물다 가는 사람들 말고 진득하게 사는 사람들은 어디에 가고 무엇을 먹으며 사는지가 궁금한 사람들은 프라하의 주요 관광지만으로는 부족함이 느껴질 수 있다. 



까렐교나 프라하성, 구시가지가 프라하의 경복궁과 명동 같은 것이라면, 이곳의 합정이나 망원은 어딘지가 궁금한 사람들. 그러니까 중심에서 너무 멀지는 않되 관광객으로 붐비지 않고, 주민들이 낮의 일정을 끝내고 놀러올 것만 같은 그런 지역이 궁금한 사람들. 그런 취향의 여행자를 위해 홀리쇼비체를 소개한다.


쇼비체 
Holešovice


홀레쇼비체는 구시가지 광장에서 트램으로 약 20여분, 블타바 강을 건너 북쪽에 위치한 지역이다. 야경 명소라 불리는 레트나 공원을 가로지르니 녹지의 상쾌함을 느끼고 싶다면 도심에서 40여분을 산책하듯 걸어서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프라하의 유명 관광지는 한곳에 모여있는 편이라, 이렇게 조금만 벗어나도 다른 도시인 듯 놀라울 정도로 한적해진다.


벨레트르즈니 궁전
Veletržní palác



홀리쇼비체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들은 주로 미술관이다. 특히 1925년 무역박람회를 위해 건축되었다가 약 70년 뒤 내셔널 갤러리로 재탄생한 벨레트르즈니 궁전이 볼만하다. 피카소, 르누아르, 고갱 등 현대미술에 정통하지 않아도 익숙한 이름들의 작품이 걸려있다. 뿐만 아니라 알폰스 무하, 토옌, 에밀 필라 등 저명한 체코 작가들의 작품도 넘칠만큼 보유해 체코 미술의 흐름을 의식하며 관람할 수 있다. 



미술관 1층에 위치한 카페 제드나는 햇빛 쏟아지는 통창과 탁 트인 실내 공간으로 굳이 미술관에 방문하지 않는 손님들도 들르는 인기 있는 장소다. 콘센트가 있는 자리가 많아 랩탑이나 태블릿을 들고와 작업하는 사람들도 많다.


▲ DOX 센터
DOX Centre for Contemporary Art



좀 더 컨템포러리한 동시대 작가들에게 관심이 많다면 DOX 센터로 향하면 된다. 세계 곳곳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가 그렇듯 20세기 초 지어진 낡은 공장을 재건축해 만든 공간이다. 그림, 조각, 건축에서 디자인, 영화, 비디오, 뉴미디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전시가 열리고, 전시뿐만 아니라 컨퍼런스나 워크샵 등도 주최한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냉전 시대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는 체코 일러스트레이터인 피터 시스의 개인전과 컴퓨터와 인터넷 세계를 다룬 프로젝트 <데이터 메이즈>, 메탈 문화를 주제로 도발적인 작품들을 한데 모은 <아트-브루트-올>이 진행중이었다. 타이틀에서 읽을 수 있듯 사회적 이슈나 시대정신을 반항적인 시선으로 담는 전시가 주로 열린다.



무엇보다 뮤지엄숍에 멋진 기념품들이 많다. 나는 귀여운 체크리스트가 있는 DOX 공식 에코백을 샀다(지갑, 핸드폰과 함께 위험한 아이디어도 챙기라는 저 문구가 무척 DOX답다).


| 독특한 쇼핑 스팟



여행을 할 때 빈티지숍을 빼먹지 않고 들르는 편이다. 구글맵을 살피다 유독 빈티지숍이 밀집된 지역을 찾으면 ‘이곳이 필시 힙한 구역이로고’하며 기억해두는데, 뉴욕의 소호나 코펜하겐의 홀멘, 암스테르담의 도크랜드 같이 홀리쇼비체도 그런 지역이다. 


▲ Thrift Store



세련된 셀렉 빈티지숍의 느낌은 아니고, 다양한 종류의 빈티지 제품을 양으로 쏟아부은 느낌의 가게다. 가격이 저렴하고 옷뿐만 아니라 그릇이나 장난감 등 소품도 진열되어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 Recycle with love



중고 의류를 독특한 스타일로 재탄생시켜 판매하는 빈티지숍. 디자인이 무척 감각적이고 트렌디한데다 한 점밖에 없다는 희귀성 때문에 한 번 들어가면 사지 않고 나오기 쉽지 않다. 이 가게가 위치한 거리가 전부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을 가진 가게들로 즐비하기 때문에 함께 살펴보기 좋다. 나는 근처에 있는 독립출판서점 page five, 바이닐과 신발을 함께 판매하는 garage store, 타투샵 겸 바버샵 johnny the king 등이 재미있었다.


▲ DARK concept store


까만 옷을 좋아하는 사람(본인)에게 무척 반가운, 펑크나 테크노를 컨셉으로 한 의류를 판매하는 편집숍이다.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다크웨어 무드의 옷과 악세사리들이 모여있다. 근처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붐비는 핫도그집 mr.hotdog와 체코 전통 오픈 샌드위치 흘레비츠키를 판매하는 chlebicky letna, 유명한 크레페 레스토랑 u slepe kocicky도 있으니 출출하면 요기하며 다닐 수도 있다. 


| 숨쉬고 움직이는 프라하


관광지만 돌아다니다 보면 프라하가 무척 오래되고 낡은 도시인 것처럼 느껴진다. 왜냐하면 그게 반절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체코인들이 역사를 기억하고 전통을 소중히 하는 만큼 프라하 곳곳에서는 여전히 중세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재건축이 난무하는 홀레쇼비체만이 프라하에서 아주 의외인, 개성있게 변모하는 중인 단 하나의 지역인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조금 오래 머물다 보면 홀레쇼비체에서 느낄 수 있는 역동적인 기운이 사실은 프라하 전체를 감싸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이 기운을 감지하고 싶다면 CAMP에 방문하자. 프라하의 구석구석에서 어떤 건축 프로젝트가 진행중인지, 그래서 미래의 프라하는 어떤 모습이 될지 등 도시계획과 건축에 대해 데이터를 통해 무척 자세하고 직관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홀리쇼비체와 camp에 방문하고 나면 스스로의 눈에 보이는 프라하가 무척 다채로워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동화같은, 전통적인, 이야기를 간직한 프라하도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변모하는, 실험적인, 앞으로 나아가는 프라하도 듬뿍 느껴보자. 도시의 입체적인 면모를 발견하는 것만큼 놀랍고 즐거운 여행의 묘미가 또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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