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알려주는 글쓰기의 낭만

베르나르 베르베르 에세이, <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 리뷰

by 이재인

- 제목: 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

- 지은이: 베르나르 베르베르

- 출판사: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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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내고 싶다.

늦어도 좋으니 작가가 되고 싶다.

작년부터 이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대학생 때 잡지사에서 인턴 기자로 일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글쓰기를 놓은 적이 없다. 본업은 마케터지만 때론 객원 기자로, 때론 프리랜서 에디터로 남의 글을 고치기도, 내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취미 삼아 아무렇게나 적어놓은 메모까지 합하면 대체 얼마만큼의 텍스트가 날 지나갔을까.


쓰는 행위 자체가 즐거워 그동안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는데, 작년부터 '꿈'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마케팅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이걸 몇십 년 더 할 만큼 난 마케팅에 진심일까? 모든 순간이 그럴 순 없지만, 마케터로 살아온 시간은 대체로 즐거웠다. 커리어적으로 다음 단계를 고민해야 할 시기인데, 한 우물 파듯 시니어 마케터로의 진화를 위해 더 노력해야 할까.


아니면, 웅덩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파온 글쓰기라는 분야에 몸을 던져봐야 할까.


하고 싶은 대로 뭐든 하는 편이지만, 사실 난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 '안전주의자'다. 된다 안 된다의 기로에서는 '된다'가 조금이라도 더 우세해야 움직인다. 그러니까, 온갖 자기 계발서와 에세이에서 과감한 도전의 가치를 설파해도 그걸 직접 실행에 옮기는 건 다른 얘기다.


무엇보다, 글쓰기에 내가 별로 재능이 없을 수도 있잖아. 그 불안함을 이겨내는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겠지만, 잘 될 거라는 확신보단 무모한 객기가 아닌가 싶은 걱정이 앞서는 요즘이다.


생각의 늪으로 빠져들다 보면 끝이 없기에, 그냥 뭐라도 쓰고 있기로 했다. 주로 책이나 여행에 대한 글이고, 블로그를 시작한 뒤론 간식과 시시콜콜한 일상까지 습관적으로 기록했다. 글을 쓰면서도 이게 취미인지,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연습하는 과정인지 헷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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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사두고 안 읽고 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에세이가 갑자기 눈에 들어온 건 제목 때문이었다. <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 라니, 다채로운 주제로 매일같이 글을 쓰는 사람이 받을만한 질문이잖아. 쓱 훑어봐도 온통 글 쓰는 이야기로 가득했다.


500페이지에 가까운 이 책은 일곱 살 때부터 이야기꾼이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30권이 넘는 소설을 발표하기까지 경험하고 깨달은 것들에 대한 내용이다. 매년 자신에게 신체적·정신적으로 영향을 미친 사건들을 늘어놓는데, 에세이가 이토록 스펙터클할 수가 있나. 책상에 앉아 글 쓰는 직업이라고 삶 자체도 정적일 거라 예상한다면 오산이다.


아홉 살엔 척추 문제로 신체 일부가 마비될 뻔했고, 열네 살엔 해변에 놀러 갔다 총 맞아 죽을 뻔했다. 이십 대 초반엔 아프리카에 희귀 개미종을 취재하러 갔다가 옷 안으로 기어오르며 깨무는 개미 떼에 죽음을 당할 뻔했다. 작가는 현재 60대인데, 인생의 삼분의 일 지점에 이미 나로선 평생 가도 경험하지 못할 일들을 겪었다.


그런데 이 책이 평범한 일상 에세이가 아닌 이유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살인을 당할 뻔하나 신체가 불구가 될 뻔하나 모든 에피소드들이 글쓰기의 소재가 된다는 거다. 옮긴이의 말에 이런 문장이 있다.

"어떻게 한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 오롯이 자신이 쓰고자 하는 글을 중심으로 펼쳐질 수 있을까. 꺾일 법한 위기들 속에서도 이야기꾼의 길을 포기하지 않는다." (p. 475)

몇십 번의 퇴고 끝에 <개미>가 세상에 나온 이후,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매년 한 작품씩 발표하겠노라 스스로와 약속했다. 30년 넘게 그 약속을 지키고 있으니, 무서울 정도로 글쓰기에 몰입한 사람이다.


그가 소개한 자신의 일상은 아래와 같다.

- 7시: 기상 후 스트레칭

- 7시 15분: 명상

- 7시 30분: 아침 식사

- 7시 45분: 기사 및 뉴스 훑어보기

- 8시 ~ 12시 30분: 장편소설 쓰기

- 12시 45분 ~ 13시: 산책

- 13시 ~ 15시: 점심 식사

- 15시 ~ 18시: 소설 외의 예술 프로젝트 작업

- 18시 ~ 19시: 단편소설 쓰기

- 19시 ~ 23시 30분: 영화나 드라마 시청


매일 다섯 시간 이상 책상에서 글을 쓰는 삶이라니. 그에겐 따로 주말 루틴이 없으니 거의 일반 회사원만큼이나 앉아 있는 시간이 긴, 작가로 출퇴근하는 규칙적인 일상이다. 평생을 바쳤지만 아직도 그는 글쓰기를 열정적으로 사랑한다.

"지금 몸과 마음의 문제를 겪고 있다면 당장 글을 써보라고 강력히 권하고 싶다. 글을 쓰는 순간 당신을 짓누르던 중압감이 사라지는 게 느껴질 것이다." (p. 223)

그에게 글쓰기란 몸과 마음의 치유다. 좋은 걸 나누고 싶은 마음은 알겠다만... 누가 작가님처럼 몇십 년을 쓸 수 있겠냐고요...


<개미>, <뇌>, <신>, <파피용> 등으로 성공한 후에도 그는 더 나은 글을 쓰고자 매 순간 고뇌했다. 공들인 작품이 언론과 대중 모두에게 외면받으면 좌절하되, 절대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겸손하게 '작가의 본분은 글쓰기'라는 본질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존경스럽다.


이 책의 묘미는 작가의 대표작들이 어떤 작업 과정을 거쳤는지 세세히 알 수 있다는 점이다. 드라마나 영화의 비하인드 영상이 작품과는 또 다른 재미를 주는 것처럼, 작품의 소재를 떠올리는 것부터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홍보하는 순간까지, 책 이면의 요모조모를 알게 되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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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책은 작가 지망생들에게만 추천하고 싶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데에 거침이 없는 작가는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들을 많이 했고, 각 에피소드가 마치 단편 소설을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하다.


그가 삶을 대하는 낙관적인 태도도 배우고 싶다. 책의 말미에 그는 다시 태어나도 똑같은 선택을 할만큼 본인의 삶에 만족한다고 썼다. 그런데 딱 한 가지 바꾸고 싶은 게 있다는데...

"다시 할 수만 있다면 삶의 순간순간들을 더 음미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 것이다." (p. 472)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 당연한 걸 당연하지 않게 바라보는 눈. 머리론 알겠는데 수련(?)이 부족한지 실천은 아직이네요.


마지막으로,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뒀음에도 새로운 학문이나 초현실적인 현상 혹은 종교들을 항상 열린 마음으로 궁금해한다는 것도 놀라웠다. 나이가 들면서 어느 분야의 전문가가 되면, 나에 대한 확신으로 다른 사람의 목소리엔 잘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경우를 많이 봤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정반대다. 늘 호기심이 많고, 낯섦을 즐긴다. 그래서 무한한 상상의 세계에서 비롯된 소설들을 쓰나 싶다. 사후세계, 천사, 환생, 전생체험 등도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작가의 모습이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캐주얼하게 하나 덧붙이자면, 작가가 2년에 한 번씩은 온다는 한국을 너무 좋아하고 있어 더 마음이 갔다. <개미>에 관심을 보인, 프랑스가 아닌 첫 나라라 더 각별할지도.

"전쟁과 권위주의적 통치 체제에서 벗어나 비로소 평화와 자유, 민주주의를 누리게 된 창의적 사고의 소유자들이 살고 있었다." (p. 286)

실제보다 한국을 더 좋게 보고 있는 것 같은데... 오히려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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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매개로 좋아하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인생을 쭉 톺아봤다. 일곱 살 때부터 매년 이야기할만한 에피소드가 한두 개씩 있다는 건 매 순간을 정성껏 살아냈다는 의미 아닐까. 난 연말에 고작 1년 결산글을 올릴까 했다가 매달 무얼 했는지 소상히 쓸 자신이 없어 못했는데 말이다.


유명인의 글을 읽고 나면 두 가지의 기분으로 나뉜다. 나와 너무나 다른 사람의 삶이라 허탈해질 때가 있고, 그럼에도 위로가 되고 힘이 날 때도 있다. 상황이 좋지 않은 사람을 보고 '그래도 나 정도면 괜찮지' 식의 상대적인 자기 위로는 싫다. 행복하고 성공한 사람을 보고 '나도 할 수 있는 데까진 노력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여러모로 건강하다.


"외부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누구나 출생 배경과 무관하게 성공할 수 있다. 시련은 우리를 진화시킬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p. 246)

주변을 탓하지 않고 오롯이 나의 가능성에 집중하는 삶. 그 끝이 내가 꿈꾸던 만큼이 아니더라도 매일에 감사하며 성실히 살아보자.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꿈에 조금씩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는 삶, 그 과정이 힘듦보다 낭만으로 느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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