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린에서 만난 서른의 얼굴들

그리고 삶의 방식들

by 노마드젼

더블린에서의 삶은 단순히 어학연수만이 아니었다.

집에서, 학교에서, 교회에서—나는 매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의 삶은 내 것과 달랐고, 그 다름은 내 일상을 더 풍성하게 만들었다.


하우스에서 만난 사람들


내가 살던 집은 오래된 2층 하우스였다.


1층에 살던 에트나는 마흔에 가까운 나이였지만, 나이를 가려버릴 만큼의 미모로 늘 주목받던 친구였다. 아담이라는 이름을 가진 20대, 30대, 40대 남자들과 차례로 데이트를 하던 그녀를 보며, ‘그 이름에 특별한 끌림이라도 있는 걸까?’ 하고 혼자 웃곤 했다.


에트나는 F워드를 입에 달고 살았다. 영국이나 아일랜드 사람들은 욕을 아주 자연스럽게, 마치 대화의 양념처럼 쓰곤 했다. 무례하게 들리지는 않았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캐나다에서 욕이 거의 쓰이지 않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지금은 아들을 키우는 엄마가 된 에트나. 아빠 없이 아이를 키운다고 했을 때, 나는 순간 걱정부터 앞섰지만 유럽에서는 생각보다 흔한 모습이었다. 아주 보편적이라 할 순 없어도,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또 다른 룸메이트 룻파는 방글라데시 출신으로, 마트 매니저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폴란드 여성과 복잡한 관계에 얽혀 있었는데, 우리는 모두 그 관계가 건강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빠져버린 마음을 누가 말릴 수 있을까.


그리고 또 다른 방글라데시 아저씨는 가족을 위해 밤낮으로 일했다. 집에 머무르는 시간조차 없었고, 대화를 나눌 기회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멀리 방글라데시에 있는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며, 그것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자유분방한 선택을 하는 사람, 관계에 휘말린 사람, 가족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사람. 각기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그들과 함께 지내며, 나는 보수적인 나 자신을 비추어 보곤 했다. 그렇게 살 순 없었지만, 관찰자로서 그들의 삶을 곁에서 지켜보는 일은 충분히 즐거웠다.


학교에서 만난 사람들


더블린의 학원 생활은 단순했다. 영어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다들 비슷하게 어설픈 영어로 대화했고, 그 서툶 속에서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별한 인연은 ‘퇴사자 무리’였다. 대기업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1년 휴직을 하고 온 K, 그의 아내인 H는 대학원을 마치고 왔고, 방송국 디자이너 일을 접고 온 Y, 그리고 나. 모두 나이 차도 크지 않았고, 각자 비슷한 이유로 잠시 일상을 멈추고 더블린에 와 있었다.


우리는 금세 무리가 되었다. 낮에는 공부하고, 저녁에는 술을 마시며 수다를 떨고, 주말이면 여행을 떠났다. 기네스 펍을 도장 깨듯 다니기도 했고, 일주일간 아이슬란드를 여행하기도 했다. 술을 잘 못 마시는 나였지만, 이 시기만큼은 대학 이후 가장 많이 술을 마셨다. 친구들의 기억 속에서는 ‘안 마시는 사람’으로 남아 있겠지만 말이다.


의욕도 있고, 돈도 있고, 시간도 있던 그 시절. 퇴사자 무리와 함께한 1년은, 마치 ‘젊은 은퇴자’처럼 모든 것을 최대한 즐길 수 있었던 시기였다.


교회에서 만난 사람들


코로나 이전, 나는 어디에 있든 일요일이면 늘 교회에 갔다. 하지만 원래 교회에서 사람을 사귀는 편은 아니었다. 나는 100% 신앙인이지만, 교회 공동체를 무조건 좋아하지는 않는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착한 사람’이라는 기대가 종종 나를 실망시키곤 했으니까.


그런데 더블린에서는 어쩌다 보니 교회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밥을 몇 번 함께 먹고, 그룹에 속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그들은 학원 친구들과는 또 다른 배경과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한 번은 내 파리 여행 계획을 나눈 적이 있다.

“바스티유의 날 불꽃놀이를 보러 갈 거야.”
“나도 보고 싶은데?”
“나도 파리 안 가봤는데…”


이렇게 이야기가 흘러가더니, 결국 모두 따로따로 비행기를 타고 파리에 모이게 되었다. 어떤 친구는 2박 3일, 어떤 친구는 일주일. 비행기 값이 5~10만 원밖에 안 되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유럽살이의 매력은 이런 데 있었다. 가까운 나라로 훌쩍 떠날 수 있는 자유로움, 그리고 그 길에 함께할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



더블린에서 배운 것


집에서, 학교에서, 교회에서.

나는 더블린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나와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살아갔고, 그 다름 속에서 나는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유롭게 흔들리는 유럽의 서른, 책임감으로 무겁게 살아가는 누군가의 서른, 그리고 한량처럼 즐겨버린 나의 서른.


그 모든 방식은 틀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차이를 마주하는 순간순간이, 내 더블린 생활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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