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생활의 시작, 그리고 4일만의 갈취 사건

갈취 사건, 빠른 각성의 시작

by 노마드젼
더블린에서의 시작

아시아에 있을 땐

늘 스스로를 저녁형 인간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더블린에 오자,

아침 7-8시면 눈이 저절로 떠졌고,

밤 11-12시면 자연스럽게 잠이 왔다.
몸이 스스로 맞춰가는 새로운 리듬.


어쩌면 내가 저녁형이었던 게 아니라,

단지 태어날 때, 위치 선정이 잘못되었던 것뿐일지도.


아일랜드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단순했다.

집을 구하고, 비자를 신청하고, 학교를 다니는 것.


집 구하기

더블린은 리피강을 기준으로 나뉜다.

한쪽은 홀수 구역, 다른 한쪽은 짝수 구역.
사람들은 짝수 쪽이 더 안전하다고 말했다.

다행히 학교도, 집도 모두 짝수 쪽에 있었다.


리피강을 기준으로 나뉘는 구역


임시 거처에서 2주를 보내고,

새로운 집으로 옮겼다.


학교에서 걸어서 30분,

200년 된 2층 하우스.

이곳에서 200년은 그리 오래된 집도 아니라고 했다.


운도 좋았다.

10년 가까이 살던 사람들이 집세를 그대로 유지한 덕분에, 시세보다 저렴했다. 단돈 400유로에 싱글룸 입성!


하우스메이트는 나 포함 4 명.

아일랜드 여자 에트나,

방글라데시 남자 룻파와 그의 친구,

그리고 나.


모두 30세 이상이었고,

각자 방을 쓰며 화장실과 주방만 공유했다.


3개월 계획이 6개월로 (비자신청)

원래는 3개월만 머물 생각이었다.

비자 신청은 귀찮으니까.


하지만 6개월 수업을 등록하면 같은 기간의 방학을 주고, 그동안 여행도 하고 일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바꿨다. 게다가 유럽을 여행하는 동안 유럽의 학생 신분증을 가지고 있는 것은 굉장한 편리함을 주었다.


아일랜드 어학연수의 장점은 분명했다.

학생비자로도 일을 할 수 있고

학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하며

아일랜드 선생님들이 성실했고

6개월 수업에 6개월 방학까지 제공된다는 것 (후일 6개월 수업 + 2개월 방학으로 바뀌었다)

머물 이유가 충분했다.


학교는 즐거웠다


아일랜드에는 한국인이 많지 않았지만, 반에는 늘 한두 명쯤은 있었다. 그중 한 명은 한국인이랑 친해지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냥 그러라고 했다.


외국어 공부를 위해 한국인을 멀리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나는 그런 태도를 좋아하지 않는다. 언어는 결국 사람과 사람을 잇는 도구니까. 단절을 선택하는 건 어딘가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선생님들은 각기 개성이 뚜렷했다.
거구에 오렌지빛 곱슬머리를 가진 선생님은 ‘아일랜드 그 자체’ 같았다. 열정적으로 수업을 이끄는 모습이 좋아서, 그 수업은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나도 적극적으로 참여했기에, 선생님도 나를 좋아했던 것 같다.


반대로, 잘생긴 덕분에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던 선생님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수업은 어딘가 성의가 부족해 보였다. 이상하게도, 그 수업은 자꾸만 빠지게 되었다.


나는 독하게 공부하지 않았다.
그저 즐겁게, 하루하루를 충실히 보냈다.


더블린 4일째, 경찰서에 가다

도착한 지 4일째 되던 날,

비자 신청을 위해 시티센터로 향했다.

길을 몰라 핸드폰을 꺼내 구글맵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손에서 무언가 홱 하고 사라졌다.


순간 벙쪘다.
한 백인 남자가 자전거를 타고

내 핸드폰을 낚아채 간 것이다.



뒤에 있던 남자가 도와주려 했고,

지나가던 아일랜드 아저씨도 놀라서 멈춰섰다.


하지만 도와주는 척하던 그 남자가

사실은 같은 일행일지도 모른다며,

아저씨는 조심하라고 했다.

그리고 직접 경찰에 신고까지 해주었다.


경찰을 기다리는 동안,

아저씨는 믿기지 않는 듯 말했다.
“내 눈앞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나한테 미안하다고도 했다.

뭐 아저씨가 미안할 일은 아닌데

여튼 위로가 되었다.


그러면서 영어가 부족한 나 대신,

자신이 본 모든 상황을 경찰에게 설명해주었다.
나는 그저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기만 하면 되었다.


오자마자 4일 만에 벌어진 일.

중국 유학 시절에도 하루에 세 번 소매치기를 당한 적이 있을 만큼 허술한 내가, 이번 일을 겪고 나서는 어디를 가든 긴장하게 되었다. 덕분에 이후로는 한 번도 소매치기를 당하지 않았다. 빠른 각성이 오히려 도움이 된 셈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때 내 폰은 이미 야쿠르트를 쏟아 망가진 덕분에 새로바꾼 20만 원짜리 샤오미였다. 게다가 도난 보험이 있어 전부 보상받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경찰 레포트를 받은 덕에, 집을 구하기 전에 은행 계좌까지 열 수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이런 거를 받았다. 아일랜드에서 경찰을 가르다(Garda)라고 한다.


시작부터 다이내믹했던 유럽 생활.

그렇게 더블린에서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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