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 16코스

놀멍 쉬멍, 식물과 동물과 새로운 인연과 소통합니다.

by 노마드키미

눈을 떠나 마자 창문 너머로 푸르름이 넘실대는 바다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 제주의 아침이다.

누구도 예상하기 힘든 제주의 날씨 이므로, 일단 날씨가 좋다면 어디로든 발길을 옮기는 것이 그 화창한 제주의 완벽한 날씨에 대한 예의라 생각한다.


아침에 눈을 뜨니, 날씨가 너무나 화창하고 넘실대는 파도마저 나를 설레게 한다.

제주의 친구는 오늘 날씨가 좋으니 빨리 서두르라고 나를 재촉한다.

숙소에서 가깝고 그나마 거리가 짧은 올레길 16코스(15.8Km)를 걸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하루에 한 코스씩 하면 좋겠지만, 올레 몇 코스를 걸으면서 느낀 건 하루에 한 코스씩 걷는 건 결코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고 그렇게 무리하며 걷고 싶지 않았다.


아침 10시에 고내포구에 도착하여 올레 16코스를 시작하는 지점에서 스탬프를 찍는다.

올레꾼들 없이 조용하던 다른 코스와는 달리 이른 아침이지만 16코스 시작점에서는 여러 명의 올레꾼들이 스탬프를 찍는걸 보아 고독한 나만의 올레길이 될 거 같지는 않다.


나의 올레길 걷기의 낭만은 멋들어진 장소에서 막걸리 한잔( or 맥주 한 모금)이다.

그런데 편의점을 놓쳐서 안타깝게 16코스는 목이 마른 상태에서 완주하여야 하였다.


지도상으로 본 올레 16코스는 해안도로도 지나고 오름도 하나 오르고 하여 편의점을 찾기가 쉬울 거라고 예상하였다. 고내포구에서 시작하여 구엄리 돌염전까지 해안도로를 걸으면서 보아온 편의점도 여러 개 되었다. 돌염전에서 해안도로는 끝이 났고 산길로 접어든다. 돌염전 끝나는 지점에 마지막으로 있던 그 편의점에서 간식거리를 샀었어야 했다. 당연히 그다음 코스인 수산봉에 가기 전 편의점이 있을 거라 생각했으나 돌염전 이후로 올레 16코스 끝나는 지점까지 편의점, 마트가 없었다. (항파두리 휴게소도 있는데 항상 문을 여는 게 아닌 듯하다.)


그날그날 몸의 컨디션과 나의 기분에 따라 올레길이 길게 느껴지기도, 짧게 느껴지기도 한다

올레 16코스는 나 홀로 걸었지만 몸과 마음의 컨디션이 아주 좋아서 그런지 그 거리가 엄청 짧게 느껴졌다.


올레길을 걸으며 생겨난 새로운 취미는 고사리 찾는 것,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예상치 못한 동물친구들을 마주하는 것, 경치가 좋은 곳에서 막걸리 한잔 하는 것, 새로운 올레꾼을 만나는 것 정도가 되겠다.

함께하는 올레도 좋고, 혼자 하는 나 홀로 올레도 좋다.


올레 16에서는 숨겨진 고사리 덤불을 발견하여 그 고사리를 따라가느라 걷는 시간이 엄청 지채 되었다. 잘 익은 고사리를 꺾을 때 줄기가 "톡톡톡" 부러지는 그 손맛을 잊을 수가 없다. (고사리를 얻고 다리에 풀독도 함께 얻었다.) 그리고 수산봉 정상에서 갑자기 만난 귀여운 아이(사슴인지 고라니인지 알 수가 없다.)는 나를 보고 한참이나 피하지 않는다.



9.5km 정도 되는 지점에서 뒤에서 나 홀로 올레를 하고 계신 분이 나타났다. 늘 그렇듯 가볍게 목인사를 하고 수고하라는 말을 남긴다. 그런데 앞에서 갑자기 독사가 나타나는 바람에 그분도 멈췄고 나도 멈췄고 발걸음이 같아지며 자연스레 이야기를 시작한다. 올레꾼들이 길 위에서 처음 인사처럼 나누는 이야기는 올레 몇 코스를 하였나?/며칠을 하고 있나? 그렇게 시작하여 어디서 왔나?로 질문이 넘어가며 대화가 이어진다. 확실히 처음 만나는 장소가 어디냐에 따라 그 대화의 내용과 질이 달라지고 그리고 사람의 부류도 많이 다르다.

일반적인 장소에서 만나는 사람들보다는 이렇게 쉽지 않은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부류가 나와는 더 닮은 구석이 많고 추구하는 인생의 방향도 비슷함을 느낀다. 무엇이든 자연과 가까이 소통하는 것은 좋은 것이다.



15.8 km 완주 스탬프 50m 전쯤, 시골마을에서 간신히 문이 열린 치킨집이 있었고 드디어 시원한 생맥주로 짜릿하게 목을 축일 수 있게 되었다. 5시간이 넘는 길을 걸은 후에 마시는 생맥주와 갓 튀겨낸 치킨은 맛이 없을래야 없을 수 없는 환상적인 조화이다.

생전 만난 적 없는 누군가와 우연히 길 위에서 만나 아무 스스럼없이 생맥주의 그 짜릿함을 함께 느끼며 인생을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아름다운 올레에서 만났기 때문에 가능한 게 아닐까 싶다.




대자연이 주는 푸르름과 새로운 생명체들은 아무 대가 없이 나를 너무나 충만하게 만들어 준다.

감사하게도..




날짜: 2020년 5월 14일
총 거리: 15.8km (5-6시간)
코스:
고내포구 - 남 두연대 - 구엄리 돌염전 - 장수물 - 항파두리 코스모스 정자 - 청화 마을 - 광령1리 사무소
코스의 장점: 해안도로와 작은 오름이 함께 있어 너무나 걷기 좋았던 곳.
코스의 단점: 돌염전 이후로 편의점과 식당을 찾기가 힘들다는 것.
(항파두리 휴게소도 있는데 항상 문을 여는 게 아닌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