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05
Jeddah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아바야를 입지 않고 외출하는 것에 대해 한번 써 볼까 합니다.
# 아바야 -
이슬람 국가의 여성들이 입는 전통 복식의 한 종류로, 얼굴과 손발을 제외한 전신을 가리는 복장이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오랫동안 여성들이 아바야를 입어야 했고 온몸을 다른 남성의 눈에 안 보이게 칭칭 감아야 했는데 젊은 왕세자의 혁신적인 개혁으로 이제는 외국인은 아바야를 입지 않아도 된다고 몇 년 전 발표를 했다. 그리고 여자가 운전하는 것도 허용이 되었다. 그러나 오랜 관습이 하루아침에 변하지는 않는 법이다.
사우디에 입국한 지 몇 주 안된 작년 10월의 일이었다. 머물고 있던 호텔에서 조금 떨어진 마트(Panda - 우리나라로 치자면 이마트 정도)에 살 것이 있어서 걸어 다녀왔다. 한국에서 평범하게 입던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이었다. 그 짧은 거리를 걸어가는 동안 지나가던 차들이 빵빵 거리기도 하고, 직접 차를 세워 어디까지 가냐고 묻기도 했고, 같이 식사를 하지 않겠냐고도 했다. 아바야를 입지 않아서 더 그런지, 순간 옷을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벌거벗은 느낌이 들었다. 어딘가 빨리 몸을 피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같이 일하는 모로코 친구가 말하길, 여자가 아바야를 입지 않고 다니는 건,
“나는 쉬운 여자다. 너랑 함께 go out 할 준비가 되어 있다.”라는 싸인으로 남자들이 받아들인다고 했다.
남자들의 무지막지한 저런 접근이 유쾌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곳, 제다에서는 Corniche로 산책을 주로 간다. 차로를 지나가면 차 안에 남자들이 100에 80-90은 아바야 없이 걷고 있는 나를 쳐다본다거나 "빵빵" 거리며 어디까지 가냐고 묻거나, 아니면 끝까지 따라와서 전화번호를 달라고 한다. 그날 아침은 하도 빵빵 거려서, 결국에는 마지막 드라이버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고 됐다!라는 불쾌한 표시를 드러냈다. 이런 이야기를 모로코 친구에게 하니, 혹시 CCTV가 어디에 있었냐는 거 아니냐며 놀랬다. 앞으로는 그런 일이 있어도 그렇게 대처하지 말라는 거다.
사우디 여성이 쓴 책 <위민 투 드라이브>, 책의 저자는 이렇게 표현했다.
처음으로 아바야를 벗고 남자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환경에서 근무할 때, 그녀는 근무하면서 처음 얼마 동안은 잠시 스치는 남자들과도 쉽게 사랑에 빠졌다라고 했다. 전적으로 이해가 됐다. 가족 외에는 남자와는 말도 썩으면 안 되고, 같은 공간에 있어도 안되고, 머리카락을 비롯하여 신체를 보여서도 안된다. 그러니 새로운 이성과 나누는 짧은 대화만으로도 쉽게 호감이 생길 수 있을 거 같다.
다른 나라에서는 정상인 것들이 이 나라에서는 왜 이리 비정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지 생각해보았다. 오래된 이슬람법 때문에 그런지 모르겠지만 남/녀를 너무나 심하게 분리시켜 놓는다. 너무 심하게 분리시켜 두니까 서로에 대한 욕망이 더 차 오르는 거 같다. 원래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법이니까...
남/녀의 분리는 여러 곳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지내고 있는 호텔에서도 남자와 여자들이 운동할 수 있는 Gym을 따로 분리시켜 두고, 식당이나 페스트 푸드점에서도 Family section이 따로 있거나 남자가 들어갈 수 있는 입구, 여자가 들어갈 수 있는 입구가 따로 되어 있다. (요즘은 많이 변하고 있지만, 아직도 심심찮게 여자와 남자를 구분하는 Section을 많이 볼 수 있다.)
이슬람국 생활 한지 고작 7개월 된 내가 호텔 리셉셔니스트에게 묻는 질문이 참 이슬람국스러워 혼자서 실소를 터뜨린다. “ 여기 수영장은 남자, 여자 다 같이 사용할 수 있는 건가요?” 정상적이지 않은 질문이, 정상이 되는 이곳이 이슬람국이다. 몇 번의 확인을 거친 뒤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었고, 수영을 하면서도 괜히 남자들이 오면 나도 모르게 몸을 가렸다 ;;;
이런 이야기를 지인한테 해 주니, 그녀가 질문했다.
“그럼 남자 여자는 어디서 눈이 맞나요? ㅜ”
그렇다. 남녀가 눈이 맞을 곳이 마땅히 없다.
그러다 보니, 지나가는 여자한테 미친 듯이 추근덕 거리고 따라오거나 전화번호를 묻는 게 아닐까 싶다.
모든 사람들의 태도, 습관, 사고 등등은 하루아침에 짠! 나타나는 게 아니다. 그들을 감싸고 있는 모든 환경들이 한 사람 한 사람을 이루고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한국식의 사고, 태도는 이 아랍국의 사람들이 볼 때는 정상이 아니다. 알면 알수록, 살면 살아갈수록 모든 것에 정답이 없는 거 같다.
그리고 마음의 또 저 한편에서는, 이 보수적인 사우디가 혁신적인 개혁으로 변화를 추구하고 있으니 나 같은 사람들이 더더욱 아바야를 입지 않고 다님으로써 이곳 남자들이 아바야를 입지 않은 여자를 봐도 아무렇지 않게 지나칠 수 있는 날이 곧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