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에도 용기가 필요하지만, 멈춤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지나간 나의 시간들을 돌이켜 보면 내 주위의 사람들은 나를 항상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칭했다. 모두들 자유를 꿈꾸지만 불안정한 자유보다는 현실에 타협하며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삶을 택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내 멋데로" 살아가는 내 삶을 어쩌면 부러워했는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 졸업 후 성적에 맞춰 대학교를 가고, 대학 졸업 후 전공을 살려 회사를 다니며 돈을 조금씩 모아,
괜찮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토끼 같은 자식을 낳아 키우는 것이 한때는 나와 친했던 나의 친구들이 택한 안정적인 삶이다.
자유롭다기보다는 남들과는 조금 다른 "내 방식의 삶"을 택한 후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내 주위에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없기 때문에 외롭다는 거다.
한때는 지구 끝까지 함께 갈 것만 같은 나의 그녀들도 언젠가부터 다른 세상 사람들처럼 느껴지더라.
몸서리치게 갑갑한 사회구조를 뛰쳐나오다시피 하여 아무런 계획도 없이 새로운 세계에 온몸으로 부딪혔다.
역시 난 사무실에 앉아서 편안하게 컴퓨터 칠 때보다는, 뜨거운 햇볕 아래서 땀에 절어서 바나나를 하나 더 딸 때가 행복하더라는 것이 소중한 나에 대한 발견이었다.
이름만 들어도 두근두근한 "크루즈"에서의 삶 역시
내가 자유를 갈망하고 선택하였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너무나 파란만장한 소중한 자산이다.
자유롭게 내가 원하는 삶을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
난 외로웠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누구보다 강했고, 남들의 시선 따위야 가볍게 무시할 수 있는 내공이 필요했고, 당장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삶에 대해 용감하게 맞서나 갈 용기가 필요했다.
수많은 나라를 다니고,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항상 새롭고 흥미진진하고 자극적인 것에 이끌려 몇 년을 미친 듯이 돌아다녔고, 이러한 삶이 남들에게는 부러워할 만한 독특한 삶이지만 나에게는 평범한 일상이 되었다. 떠돌이 집시처럼 자유롭게 살기 위해 용기가 필요했지만 이러한 삶을 잠시 멈추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슬금슬금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너무나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크루즈의 생활이지만, 첫 번째 계약 종료 때와는 달리 세 번째 계약이 끝나갈 즈음에는 다시 재계약을 하고 싶은 마음 반, 평범하게 남들처럼 한 곳에 머무르고 싶은 마음 반이었다.
과연 나는,
아직까지 지구 상에 가보지 못한 수많은 새로운 나라를 (향후 몇 년간) 포기할 수 있을까?
매일매일 눈 뜨면 새로운 도시,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이러한 매력적인 직업을 그만둘 수 있을까?
너무나 고요하고 잔잔한 한국의 일상적인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마약처럼 끊기 힘들고 너무나 매력적이지만 이 생활이 몇 년째 계속되다 보니
달콤한 캔디처럼 먹을 땐 행복하지만 다 먹고 나서는 허무하고 마음속은 공허하더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맹렬하게 앞만 보고 뛰어왔는데, 이제 한 템포 살짝 쉬며 숨 고르기를 해야 하는 시점인가?
어쩌면 남들에게는 그냥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지만,
나에게는 이러한 일상적이고 안정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도 큰 용기가 필요하다.
내 인생에 또 다른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