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뉴스 ooo입니다.
결국 다시 한인 기자로 돌아왔다.
나의 신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곳도, 지금 내 위치에서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것도 그땐 이 일이 답이었다. 무엇보다도, 기자는 내 적성과 완벽히 맞는 일이었다. 매일 똑같은 루틴(리포트 한두꼭지를 완성하는 일)이 반복되지만, 매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이야기를 파고드는 일. 그게 기자라는 직업의 매력이었다.
2016년, KBS America에서 방송기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한인기자, 특히 방송기자는 인원이 적어 ‘일당백’ 역할을 해내야 한다. 바꿔 말하면, 사건 사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분야를 ‘마음만 먹으면’ 취재할 수 있다. 나에게 이건 상당한 메리트였다. 무엇보다 카메라 앞에서 마이크를 잡는다는 것. 그게 참, 짜릿했다. 내가 관종이었나 싶을 정도로.
첫 입봉은 3.1절 행사 취재. LA는 미주 독립운동의 중심지였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활동한 도시, 대한인국민회가 설립된 곳. 매년 3.1절이 되면, 대한인국민회를 비롯해 여러 한인단체들이 합동으로 기념식을 연다. LA총영사가 참여해 대통령 경축사를 대독하고, 3.1 여성동지회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한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막내아들 고 랄프 안 선생을 비롯해 200여명의 한인들이 참석하는 대규모 행사다.
기사 제목: ‘3.1절, 범동포 화합의 장’
스탠딩: “LA에서 처음으로 한인 단체가 연합해 개최된 이번 삼일절 행사는 기념식을 넘어, 2세들에게 역사를 알리는 장이 됐습니다.
한국에서는 흔한 기념행사일지 몰라도, 이곳에서는 한인 2세들의 정체성과 뿌리를 찾을 수 있는 중요한 역사 현장이 된다. 만약 기자가 아니었다면, 이 모든 걸 몰랐겠지. 이 일이 아니었다면, LA가 미주 독립운동의 중심지인 것도 몰랐을 것이고,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막내아들을 알고 지낼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한인타운에서 한인 기자를 한다는 것은 분명 장점이 있다. 미국 주류사회의 이슈들을 직접 커버할 수 있고, ‘한인’이라는 아이덴티티를 찾고 알리는 의미있는 일도 할 수 있다. 뉴스를 시청하는 연령대는 주로 이민 1세 어르신들. 그분들에게는 향수를 달래주는 고국과의 연결고리가 된다.
방송기자로 일하는 내내 틈틈이 내가 관심 있는 분야도 파기 시작했다. 야심찼던 나의 꿈, ‘할리우드에서 일하기’를 이루지 못한 나는 기자로서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주로 취재하며 허기를 채웠다. 할리우드에서 성공한 한인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부터 시작했다.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Troll’ 개봉을 앞둔 2016년 7월, 애니메이션 레이아웃 팀장으로 참여한 전용덕 감독을 만났다. 그는 한국의 유명 광고 기획사에서 일하다, 한 친구의 한마디에 인생이 바뀌었다.
“어느날 친구가 공부하러 미국에 간다더라구요. 생각이 많아졌어요. 일은 재밌었지만, 대기업에서 근무하다보니 15년 후의 미래가 훤히 보이더라구요. 다른 일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뉴욕으로 건너 온 그는 ‘컴퓨터 아트’를 전공한 후, 2001년 드림웍스가 제작한 TV시리즈 ‘파더 오브 프라이드’ 레이아웃팀에 취직이 되며 본격적인 애니메이터의 길을 걷게 된다. 이후 입사 2년 만에 팀장이 되며 드림웍스에서 인정을 받았다. 쿵푸팬더, 슈렉4.. 모두 그의 손을 거쳐간 작품들이다. 감독님은 취재 당시였던 2016년 아카데미 회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내 리포트의 앵커멘트는 다음과 같았다.
“백인들의 잔치라는 오명에 아시안 비하 논란까지 있었던 오스카 아카데미 협회가 최근 여성과 비백인 영화인들을 대거 회원으로 영입하며 변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배우 이병헌, 박찬욱 감독을 비롯한 한국 영화인들은 물론 할리우드에서 활약하는 한인 영화인들도 이번에 회원으로 포함됐는데요, 아카데미 회원으로 위촉된 드림웍스의 전용덕 촬영감독에게 할리우드의 변화와 한인 영화인들의 위상, 향후 한국 영화의 진출 가능성까지 들어봤습니다. ooo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지금 읽어보니 참 거창하다. 할리우드 영화인이 되지 못한 내 자신의 사심이 들어간 취재여서 그랬을까. 궁금한 것이 유독 많았던 취재였다. 나는 여전히 할리우드에서 일하는 꿈을 완전히 놓지 못했으니까. 그가 말했던 한 마디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
“저는 제 위치에서,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업계에 진출하려는 한인들을 돕고 싶어요.”
자신이 할 수 있는 자리에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것. 그게 바로, 내가 늘 이루고 싶었던 꿈이기도 했다.
‘두고보세요. 언젠가는 저도 내 위치에서 남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될거예요.’
기자로서 누린 특권도 많았다. 할리우드 시사회 초대, 유명 배우들과의 1:1 인터뷰, LA 아트쇼, 오토쇼 등 주요 행사 취재. 한국과 연관된 모든 행사에는 빠짐없이 불려갔다. 현대-기아 신차 시승회라든지, 모 한국 대기업 만두공장 오픈 행사도 취재했다. LA 다저스 류현진 선수와의 인터뷰라든지, LA 최초 한인 시의원 데이빗 류 시의원을 인터뷰한 것도 기억에 남는 일이다. 기자 신분으로 궁금한 것을 취재하고, 여러 행사의 비하인드씬을 볼 수 있는 재미는 분명 있다. 일이 아니라 개인적인 경험으로 갔다면 더 즐길 수 있었겠지만, ‘기자’라는 신분 덕분에 비하인드 씬을 볼 수 있는 재미도 분명 있었다.
방송국 인력이 모자란 탓에, 혹은 덕분에 앵커 대타로 뉴스 진행을 맡은 적도 많았다. 어릴 적 꿈이었던 ‘아나운서’의 꿈을 반쯤 이룬 셈이었다.
‘예상대로 흘러가는 인생은 재미 없잖아. 순간순간을 즐기면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네!
나는 여전히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물 흐르듯 흘러가고 있었다.
역류만 피하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