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는 다문화 도시다.
LA는 다문화 도시다.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며, 각자의 커뮤니티를 형성했다.
코리아타운, 차이나타운, 리틀 도쿄, 필리피노 타운 – 각 커뮤니티는 그 나라의 정체성을 그대로 담고 있다. ‘아프리칸 아메리칸의 달’, ‘아태계의 달’처럼 이곳에서는 다문화는 기념하는 행사가 끊이지 않는다.
표면적으로 보면, LA는 전 세계가 공존하는 이상적인 도시처럼 보인다. 정말 모순처럼 되풀이되는 이슈는 아이러니하게도 ‘인종차별’이다. 내가 살아본 미국은 기본적으로 백인 우월주의가 깔려 있는 곳이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흑인들의 노예제도만 봐도 그렇다.
흑인 노예제는 1776년 독립 선언 당시에도 13개 식민지에서 합법이었다. 남부에서는 노예 가격이 뛰었고, 수탈과 인권 말살, 지독한 차별이 이어졌다. 이후, 1860년 11월에 노예제를 반대하는 에이브라함 링컨이 미국 대통령이 당선되자, 이에 반발한 남부의 주들이 연방에서 탈퇴했고, 다음해 4월에 남북 전쟁이 일어났다. 링컨 대통령은 전쟁 중에 노예 해방 선언을 발표하며, 노예들을 해방시켰고, 북부의 승리로 전쟁이 마무리 된 후, 1865년 미국 수정 헌법 제 13조에서 전국의 노예 제도를 금지하게 된다. 이렇게 아픈 역사를 가진 흑인들은, 오늘날에도 ‘인종차별’이라는 단어에 누구보다 예민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LA의 역사를 하나 들춰보자. 1992년, 경찰 4명이 흑인 한 명을 과잉 진압한 사건이 발생했다. 하지만 법원은 경찰 4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분노한 흑인들은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였고, 그 시위는 곧 폭동으로 번졌다. 당시 장기간의 불황 속에 사회경제적으로 소외되고, 공권력 남용에 노출된 LA 흑인 커뮤니티의 억눌린 불만이 터져나온 것이다.
그 분노는 고스란히 한인타운으로 향했다. 사우스 LA에 위치한 흑인 동네에서 백인들이 사는 지역으로 가려면 한인타운을 지나쳐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찰과 주방위군은 한인타운을 보호하지 않았다. 오히려 베버리힐스 같은 백인 부촌을 보호하기 위해 한인타운을 방호벽 바깥으로 밀어냈다. 당시 한인 커뮤니티의 파워가 얼마나 약했는지 보여주는 단상이다.흑인들은 한인타운 지역으로 몰려왔다. 한인 상점들을 불태웠고, 약탈했다. 한인 사회 피해액만 4억 달러, 2천여 곳 이상의 상점이 불탔다. 한인 1세대들이 피땀 흘려 일군 아메리칸 드림은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었다.
그날, 경찰은 한인타운에 없었다.
한인들은 스스로를 지켜야 했다.
폭동 당시, 한인들은 직접 총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훗날 이들은 ‘루프탑 코리안’이라 불리며 영웅처럼 회자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영웅담’이 아니었다. 이는 한인 사회가 미국에서 얼마나 힘이 없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이 폭동은 한인 사회를 바꿔 놓았다. 한인들은 다시는 이런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 더 높은 교육 수준, 더 강한 경제력, 더 단단한 커뮤니티를 만들기 시작했다. 폭동 속에서 한인사회는 분명 희생자였지만, 한편으로는 이민사회의 현주소를 성찰하고, 다민족 사회 속에서 ‘공존’의 지혜가 필요함을 일깨워준 사건이기도 했다.
이로부터 30년 이상이 지났지만, 여전히 비슷한 사건은 계속되고 있다. 한참 ‘Black Lives Matter(BLM)’ 캠페인이 일어났을 때를 기억한다. 2020년 흑인 조지 플루이드가 경찰 무릎에 목이 눌린 채 숨을 헐떡이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공개되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과잉진압에 분노하며 1992년과 똑같은 상황이 발생한다. 시위는 역시나 폭동으로 번졌다. 경찰차는 불타고, 상점은 약탈당했고, 도시 전체가 무법천지가 되었다. 누군가는 분노했고, 누군가는 그 틈을 타 상점을 털며 이익을 챙겼다.
조지 플루이드의 죽음에 대한 경찰의 책임은 물어야 한다. 하지만, 이 사건이 폭동을 정당화할 순 없다.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은 폭력이 아닌 공존을 향해야 한다. 시위는 시위에서 그쳐야 한다. 여기서 더 나아간다면, 서로에 대한 편견과 적대심만 생길 뿐이다.
인종차별에서 비롯되는 ‘증오범죄’ 또한, 사라지지 않는 사회적 이슈이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시절,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슬로건을 앞세운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대놓고 인종차별을 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는 어땠나. 코로나가 중국발이라는 소문이 급속도로 터지면서 아시안 증오범죄는 120% 증가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연설에서 직접 ‘China Virus’로 언급할 정도이니 전형적인 백인 보수 사상이 어떤지는 말을 안해도 짐작할 수 있다.
냉정하게 말해, 이 나라에서 인종차별과 증오범죄는 평생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더 나은 미래를 꿈꾼다면 결국 공존을 위한 지혜를 찾아야 한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명언도 있지 않은가.
‘어둠은 어둠을 몰아낼 수 없다. 오직 빛만이 그럴 수 있다. 증오는 증오를 몰아낼 수 없다. 오직 사랑만이 그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