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없는 삶, 견딜 수 있을까?

보통 미국에 인턴으로 오면 J1 비자를 받는다.

보통 미국에 인턴으로 오면 J1 비자를 받는다. 이 비자로 최대 18개월까지 일할 수 있다.


그 이후에도 미국에 남고 싶다면, 보통 H1B라는 취업 비자를 신청해야 한다. 문제는, H1B는 추첨제라는 것. 즉, 내가 아무리 잘나도 운이 없으면 끝이라는 뜻이다. 이 추첨제의 확률에 기대 이민변호사를 고용하고, 이민 신청비를 지불해야 한다. 만약, 추첨에서 떨어지더라도, 이 돈을 돌려받을 수는 없다. 게다가 취업 비자를 받으려면 회사에서 스폰을 해줘야 하는데, 한인 회사들은 이를 꺼리거나, 오히려 악용해 직원들을 신분으로 묶어두기도 한다.


남의 나라에서 일하며 살아간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현실이 이러니, 대부분 J1 비자로 온 인턴들은 인턴이 끝나면 남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한국행을 택하거나, 비자 유예 기간 동안 스폰을 해주는 회사를 찾아야한다. 이 또한 운이 따라야 한다. 미국에 온지 18개월이 되어갈 무렵, 국장님이 나를 불렀다.


“H1B 취업비자 스폰해줄테니 정식으로 남아보지 않겠나?”


솔깃했다. 하지만, ‘나만’ 스폰을 해주겠다고 하셨다. 가뜩이나 ‘여우’라는 말까지 들으며 눈치를 봐야 했던 상황에서, 이 소식이 퍼지면 또 어떤 말이 나올까. 지금이었다면? 남 생각하지 않고 바로 질렀을 거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러지 못했다. 무엇보다, 내가 왜 미국에 오려고 했는지를 생각해보았다. 영화 마케터라는 목표가 있었는데, 지금까지 그 꿈을 위한 첫걸음조차 떼지 않았다. 초심으로 돌아가자.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감사하지만, 전 여기서 그만하겠습니다.”


지긋지긋한 이곳이여, 안녕!


그렇게 인턴 생활을 잘 마무리하고, Los Angeles Film School에서 2년동안 공부해보기로 했다. 굳이 대학원을 가고 싶진 않았다. 실무에 필요한 지식 정도만 쌓고 싶었다. 마침 Arts and Entertainment Management 라는 학사 과정이 있었다. 제작 보다는 홍보에 관심이 있었던 터라, 잘됐다 싶었다.


학교를 다니기 위해선 F1 학생비자를 신청해야 했다. 이 비자는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거나 어학연수를 할 때 반드시 발급받아야 하는 것으로, 공부 이외에 일을 한다거나 영리활동을 하면 바로 불법으로 간주돼 추방될 수 있다. 즉, 공부만 해야 하는 신분. 이 사실이 나중에 얼마나 힘들게 다가올지는, 그땐 몰랐다.


거의 7년 만에 다시 학생이 되려니, 설렘과 걱정이 교차했다. 학창시절에도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늘 벼락치기를 했기 때문에 지금 머릿 속에 남는 게 별로 없달까. 그런 내가 스스로 공부하겠다고 이곳에 오다니. 그것도 영어로..?


새로운 시작. 다짐했던 것과 달리, 학교 건물 앞에 서니 괜히 주눅이 들었다. 출입문을 지나자마나 벽면에 큼직한 문구가 보였다.


‘이곳은 필름, 뮤직, 애니메이션 필름 제작을 위주로 하고 있는 미디어 아트 대학입니다. 1990년에 하버드 대학 출신의 설립자가 영화 산업의 리더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한 것으로 영화인의 실무 능력과 대학인으로서의 교양 모두를 탑재한 인재상을 목표로 교육하고 있습니다…..’


‘좋아, 나도 그 인재가 될 수 있게 도와줘.’


첫 수업은 Entertainment and music business career development 였다. 교실을 둘러보니, 인종과 연령대가 다양했다. 러시아 금발 미녀, 똘똘하게 생긴 필리핀 여학생, 군복을 입은 흑인 여성. 다들 개성이 강했고, 목표가 확실해 보였다. 수업은 당연히 영어로 진행됐다. 말은 잘 못해도, 듣기 실력은 나쁘지 않았기에 그냥 듣기평가한다고 생각하며 버텼다.


미국의 수업 분위기는 나의 대학 시절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경험담을 공유했다. 한 흑인 아저씨는 자신이 음반 회사에서 일했던 이야기를 들려줬고, 앞서 언급한 러시아 모델 친구는 셀러브리티 매니지먼트 회사를 차리는 게 목표라고 했다. 다들 목표가 확실했다.


처음 6개월은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프리젠테이션 수업이 많았는데, 덕분에 영어 실력도 좋아졌고, 점점 자신감도 붙었다.


하지만… 오후 2시. 수업이 끝나고 나면, 하루가 남아 있었다. 그 이후의 시간을 공부만 하면서 보내기엔 아까웠다. 다들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버는데 나만 왠지 잉여인간이 된 느낌이었다. 삶이 너무 단조롭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아르바이트를 할 수도 없었다. 학생 신분으로 조금의 수입이라도 생기면 추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전적인 문제도 무시할 수 없었다. 인턴으로 모아둔 돈을 아껴 썼지만, 2년을 버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서른이 다 되어, 한국에 있는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야 하는 현실이라니…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자존감이 낮은 편이 아닌데, 괜히 낯선 땅에서 기가 죽기 시작했다. 경력이 갑자기 단절되어서 오는 금단현상이었을까. 공부와 일을 병행할 수 없는 현실에 답답하고 무력감마저 들었다. 하고 싶던 공부를 하는 건 분명 신나는 일이었지만, 일에 대한 갈증은 점점 심해져갔다. 그럴 때면 열심히 긍정회로를 돌렸다.


‘그래, 이 시기는 삼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야.’


‘2년만 지나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


마음속으로 그렇게 되뇌며, 최대한 괜찮은 척했다. 그렇게 길고 긴 터널 같았던 2년이 지나고, 드디어 미국 사회로 나갈 시간이 되었다.


앞으로 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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