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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조 Jun 13. 2022

당근마켓에서 피아니스트와 피아노 거래해 보셨어요?

#내향인의 주택생활

중고거래 좋아하세요?

얼마 전 그랜드 피아노로 아이의 피아노를 바꾸면서 쓰던 업라이트를 당근마켓에 내놓았어요.

업라이트 피아노가 나의 애정과는 상관없이 중고거래에서는 좋은 금액을 받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요.

하지만 업라이트에 사일런트(피아노 소리가 밖으로 나오지 않게 하는 기계) 장착이라 혹시 찾는 분이 있지 않을까?

거래가 안되면 업자에게 넘기지 하는 마음으로 당근에 올렸답니다.

어라! 올린 후 몇 시간 뒤에 채팅 알림이 왔어요.

다음날이 마침 토요일이라 거래 약속을 잡았어요.

저는 시간에 민감한 편이고 그날 아이 피아노 레슨도 동행하기로 했던지라

약속 시간 5분 전쯤에 시간 확인 채팅을 보냈습니다.

'가고 있다 곧 도착한다'라는 뜻의 메시지를 받고 나서

젊은 남녀 두 분이 집으로 들어오셨어요.


저는 피아노가 있는 방음방으로 안내했고 여자분이 건반을 쳐보셨어요.

좀 뭔가 예사롭지 않은 터치였어요.

제가 "어머 전공하셨나 봐요? ㅎㅎㅎ"

저는 따뜻한 거래 분위기를 위해 스몰토크를 시도했습니다.

그 여자분은 고개만 '끄덕' 하셨어요.

그쪽도 거래의 우위를 위해 방어자세를 취하시죠.

굴하지 않고 저도 

"저희 아이도 피아노 전공하고 있고 00학교를 다녀요. 그래서 피아노 관리 상태가 아주 좋아요~~ㅎㅎㅎ"

부드러운 분위기를 위해 좀 사적인 정보로 어필했습니다.

갑자기 여자분이 드디어 표정의 변화를 보이셨어요.

"저도 그 학교 나가는데..."

성함을 말씀하셨는데 제가 성함을 들어 알고 있는 선생님이셨어요.

레슨 스튜디오에 학생들을 위해 스페어로 하나 더 두시려는 목적이셨어요.

남자분도 반갑게 인사를 하셨어요.

두 분은 피아니스트시고 여자분은 큰 선생님이고 남자분은 교수님이셨어요.


아아... 상황은 반전되었습니다.

저는 정중히 인사를 드리고 거래의 우위고 뭐고 바빠졌어요.

일단 피아노를 확인하시고 가셨고

그분들이 가시자마자

저는 조율사분 불러 피아노 내부 다시 체크하고

사일런트 기사님 연락해서 사일런트 이동 후 리셋 방법 확인하고

헤드폰 새 거 보내달라 하고 정말 혼비백산이었어요.

'뭐 내가 실수한 거 없나?(있지)

우리 집 청소상태는?(엉망이지)

그냥 업자에게 넘기는 게 나았나?(이제 와서 흑)'

다행히(?) 거래를 원하셔서

피아노를 보내기로 했습니다.

피아노 보내는데 배송 스케줄이 원활하지 않아 한바탕 난리가 또 있었어요.

'아니 그 바쁘신 분들을 기다리게 하다니...'

다행히 그 피아노 배송기사님을 교수님도 번호를 저장해 두는 업계 에이스 배송기사님이라

잘 처리가 되었어요.


당근마켓 거래 유의사항이 하나 추가되었습니다.

뜻밖에 우연히 누구를 만나게 될지 모릅니다.

차은우가 거래에 나올 수도 있어요. 하하


복 많은 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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