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한국에 다녀왔다. 회사를 그만두고 세계일주를 하기 위해서 2년간 여행을 했던 시기를 제외하곤 가장 오래 떠나 있었던 시기인 것 같다. 내가 있는 이곳 필리핀은 최절정의 더위가 조금씩 식어가는 시기였고 한국은 더위가 시작하는 시기였다. 흙먼지가 당연한 촌구석에서 시멘트로 가득 찬 도시로의 여행이었다. 예전에는 집으로 가는 비행기였지만, 지금은 집에서 떠나는 비행기에 탑승을 했다. 기분이 뭔가 이상했다.
서울에 있는 집과 짐은 모두 정리했던 터라 부모님이 계시는 곳으로 갔다. 서울 등지에서 20여 년을 살았지만 거처가 없으니 오래 산 지역도 낯설었다. 부모님이 계신 곳도 사실 고향이지만 어색하다. 부모님이 계신 전주는 초등학교 6학년과 중, 고등학교 약 7년만 거주했다. 그전에는 익산이라는 도시에서 살았고, 맹모삼천지교처럼 부모님은 아들의 교육을 위해서 전라북도에서 가장 큰 도시인 전주로 이사를 했던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상경을 했다. 수원에 있는 대학에서 수학을 하고 서울로 취업을 해서 20대 중후반 이후엔 쭉 서울에 살았다. 성북구, 강동구, 강남구를 거쳤다. 살아온 궤적을 보니 지방에서 중심으로 향했던 것 같다.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상경을 하여 대학에 입학한 사람들의 삶이 대부분 이렇지 않을까 싶다. 어느 순간부터 나에겐 타향살이가 삶의 기본이 되었다. 고향이라는 공간은 형이상학적으로만 존재하고, 부모님이 살고 계신 곳이 고향이 되었다. 고향이라는 곳은 추억이 있고 그 추억을 떠올리게 해주는 친구들과 지인들 장소등이 있어야 할 것 같 같은데, 나의 대부분의 친구들은 서울에 있었고 추억의 장소들은 모두 변해버려서 남아 있는 곳이 거의 없다.
고향이 있어야 타향살이가 될 것인데, 고향이 없으니 타향살이라고도 할 수 없다. 내가 지금 사는 곳이 우리 집이고 또한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유목민 같은 삶을 살아간다. 디지털 노마드라는 직업처럼 생계형 노마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 정착한 지 1년 여가 됐지만 상당히 익숙해진 듯 하지만 타향을 넘어선 타국살이가 만만치는 않다. 언어, 문화, 음식 등을 이해해야 하고 적응도 해야 한다. 노마드의 삶은 새로운 것을 접하고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그래서 계속 이렇게 떠돌이 생활을 하는 것 같다. 이제는 슬슬 한 곳에 정착할 시기가 다가오지 않나 싶지만 아직 해보고 싶은 것도 가보고 싶은 곳도 너무 많아서 당분간 이런 노마드 인생을 더 살아야 하지 않나 싶다.
아이러니하지만 노마드처럼 이곳저곳 정착을 할 수 있는 이유도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는 고향이라는 공간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항상 반겨주는 부모님이 계신 그곳이 나의 마음 한편에는 “고향”이기 때문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