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필요성
흔하진 않지만 가끔 당일 예약이 들어오긴 한다. 장기 여행객이 다른 지역에서 넘어와서 당일 날 숙소를 찾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 당일 예약한 손님은 일찍 체크인을 하지 않기 때문에 저녁시간까지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 예약한 손님도 역시 저녁을 준비할 때쯤 도착했다. 밖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났고 남자 손님 한 분이 내려서 여기가 XX이 맞냐고 묻는다.
순간 예약한 손님이 아닌가 생각했다. 아무런 짐도 없이 달랑 가슴에 멘 손바닥 만한 가방만 메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오늘 예약한 손님이 맞냐고 물었더니 맞다고 한다. 우선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고 여권을 확인했다. 아무런 짐이 없어서 혹시 근방에 거주하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한다. 그리곤 앉아서 잠시 얘기를 나누었다.
근처의 중국인 다이빙샵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는데 백팩커스(도미토리)에서 장기 숙박 중이라고 한다. 오늘은 혼자서 푹 쉬고 싶어서 예약을 했다고 한다.
내가 장기 여행 중일 때가 생각났다. 혼자 여행 중이던 나도 항상 거의 도미토리를 이용했다. 백팩커스, 게스트하우스 등으로 불리는 도미토리 형태의 숙박시설은 가격이 저렴할 뿐만 아니라 여행자들이 모여서 정보도 나누고 친구도 만들 수 있는 많은 장점이 있는 숙소이다. 먼저 온 여행자에게 현지 맛집이나 여행정보 등을 얻을 수 있으며 다음 여행지가 같으면 길동무도 하고 저녁에는 술도 한잔 나누면서 다양한 국가와 문화를 간접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공간이기도 했다. (사실 나도 그러한 공간을 임대하는 숙박업을 하고 싶었는데 현재까지는 그렇지 못한 점이 아쉽다.) 우리나라에서도 제주도에서 변형된 형태의 파티 게하가 성행했던 적이 있다. 지금은 부작용들 때문에 퇴색이 된 듯 하지만 일반적인 게스트 하우스는 숙박이라는 공간을 숙박만이 아닌 문화와 정보 교류의 장으로서 기능하게 하는 좋은 형태의 숙박업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만사가 그렇지만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문화와 배경이 서로 다른 여러 사람들이 이용하기 때문에 크고 작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곤 한다. 코 고는 사람, 밤늦게까지 떠드는 사람, 통화를 크게 하는 사람, 술 주정 하는 사람등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가끔은 피곤하기도 하다.
그래서 나도 가끔은 혼자만의 시간을 위해서 게스트 하우스의 1인실이나 에어비앤비, 저렴한 호텔등을 며칠간 이용하기도 했다. 혼자서 여행을 하지만 “혼자만의 공간”이 전혀 없으면 장기 여행이 더 힘들었기 때문이다.
혼자만의 “공간” 또는 현재에서 단절된 “공간”은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공간”이다. 육아에 지친 부부, 가족의 삶의 무게를 짊어진 부모님, 회사에 지친 직장인들, 학업에 시달리는 학생, 권태기의 연인들 모두 이러한 공간들이 필요하다. 이는 빨간색과 초록색, 검은색과 노란색의 보색효과처럼 더욱 뚜렷하고 선명한 삶을 사는데 필요조건이다. 직장인들이 여행을 오는 이유 역시 그러한 공간을 찾아오는 것이며, 장기 여행에서 지친 여행객이 혼자만의 공간을 찾는 이유도 그러한 이유이다.
그러한 공간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