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달리고 있는 것일까?
*구질구질한 변명
지난 일은 늘 아련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아련하다는 것은 망각의 일종인지도 모른다. 불과 1주일 전의 일이지만 어찌 이토록 먼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 있을까? 올해 목표는 한 달에 하나의 대회에 참여하는 것이다. 6월에 참여한 대회는 6월 9일 홍성에서 열린 O2 대회였고 7월 대회가 장흥에서 열린 '정남진 장흥 전국 철인3종 대회'였다. 날짜는 14일. 6월 대회와 7월 대회 사이에 한 달이 조금 넘는 기간이 있었고, 그 사이 체중 감량과 웨이트는 물론이고 조금 과한 훈련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늘 실행은 계획을 따라가지 못하는 법.
더욱이 대회 1주일을 남기고 3일 동안 밤을 새는 일이 벌어졌다. 3일 동안 수면한 시간은 5시간 이하였다. 첫날은 완전히 날밤을 샜고, 둘째 날은 30분씩 몇 번 수면을 취했다. 셋 째 날은 너무 졸려서 2시간 정도를 잤다. 대회는 코앞이고 효율성이 떨어지는 일은 끝나지 않았다. 대회는커녕 며칠 동안 잠만 자야 할 것 같았다. 심각하게 대회 불참도 고민했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장흥대회를 염두에 두고 영암 취재를 잡아 두었다. 마감 때문에 대회 전에 취재를 해야 했다. 대회가 끝나면 곧바로 서울로 돌아와서 원고를 써야 마감을 지킬 수 있었다. 그러니 대회에 나가지 않아도 영암까지는 가야 하는 상황.
결국 대회 직전이었던 금요일에 영암으로 출발했다. 이날도 잠을 한숨도 자지 못하고 새벽 운전을 시작했다. 3일 동안 밤을 새우며 쌓였던 피로를 기껏 2~3일 휴식하며 회복하는 듯했지만 다시 밤을 새우면서 피곤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게으름 탓은 아니었다. 분명 어쩔 수 없는 일들이었다. 그래서 스케줄에 대한 자책은 크게 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금요일 취재는 제대로 끝나지 않았다. 더욱이 월출산 종주도 해야 했다.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결국 토요일 월출산 종주를 시작했다. 새벽 6시에 천황사 입구에 도착했지만 비가 내리고 있었다. 산행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결국 대회를 포기하고 일요일 월출산 종주를 하기로 했다. 대회를 포기하니까 조금 여유도 생기고 마음도 가벼워졌다. 일종의 홀가분한 마음 같은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주차장에서 쪽잠을 자며 대기를 하고 있었다. 1시간에 한 번씩 잠에서 깨어 날씨를 확인했다. 9시가 넘으면서 비는 그쳤지만 안개가 가득했다. 정상에 올라가 봐야 사진을 찍을 수 없을 것이 뻔했다. 10시 넘어서자 안개가 걷히는 듯했다. 이제 어쩔 것인가?
일단 출발하기로 했다. 아침을 굶었으니 근처 식당에서 밥부터 먹었다. 그리고 종주를 시작했다. 천황사에서 시작해서 도갑사까지, 그리고 등반로에서 1km 정도 벗어난 마애여래좌상까지. 꼬박 7시간이 소모되었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취재는 마친 셈이었다. 남은 것은 구림마을. 그건 일요일 대회를 마치고 서둘러서 영암으로 돌아오면 일몰 전에 취재가 가능할 것 같았다. 이제 장흥으로 출발하면 선수 설명회는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대회 포기는 새까맣게 잊고 장흥으로 차를 몰았다.
대회 설명회는 무사히 들었지만 대회장 근처에서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식당은 있었으나 하나같이 영업을 마쳤다거나, 재료가 떨어져서 식사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월출산 종주를 마치고 서둘러서 장흥으로 오는 바람에 밥을 먹지 못했다. 식사라고는 종주 시작 전에 먹은 한 끼가 전부였다. 물론 보급식으로 준비한 떡을 먹기는 했다. 그래도 배가 고팠다. 더욱이 대회 전날이니 든든하게 먹어두어야 했다. 결국 차를 몰고 장흥 읍내까지 나와야 했다. 장흥 읍내도 여러 식당이 주문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식당에 손님은 있었으나 영업은 종료. 몇몇 곳을 전전하다가 정말 맛있는 뼈해장국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대회 당일 -수영
새벽 4시 20분에 알람이 울렸다. 잠도 부족했지만 더욱 문제는 하체였다. 전날 월출산 종주로 젖산이 쌓여서 하체가 뻐근했다. 이래서 무슨 대회를 뛴단 말인가. 아주 잠시 대회를 포기하고 잠이나 실컷 잘까, 고민을 했다. 하지만 회복 훈련이라는 생각하기로 했다. 월출산 종주로 쌓인 젖산을 철인3종 경기에서 풀어보자는 생각. 그것도 하프 코스. 황당했지만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편했다. 그리고 이틀 연속 빡센 훈련을 한다고 생각하면 못할 것도 없었다. 나의 목표는 아이언맨이니까 그전의 모든 대회는 훈련으로 여겨도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대회장 인근 횟집에서 죽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전날 전화로 예약을 한 횟집이었다. 주최 측에서 알려준 횟집이었다. 사실 죽의 질은 형편없었다. 재료가 부족했던 것이 분명했다. 손님은 많고 재료는 부족하고. 사실 대회 끝나고 먹었던 식사도 형편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메뉴는 단 한 가지만 가능하다고 했다. 바지락비빔밥.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질이 문제였다. 바지락 속살이 하나도 없었다. 오로지 야채뿐이었다. 속살은 아마 서너 점? 그리고 지나치게 매웠다. 그래, 손님이 넘쳐나니 재료가 부족했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어쩌면 식사가 가능한 것만으로 고마워해야 할 상황이긴 했다.
아침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 짐을 챙겼다. 모든 짐을 차에 실어 두고 걸어서 대회장으로 갔다. 수영 출발은 대략 6시 40분. 상금을 목표로 출전하는 오픈 선수들이 6시 30분쯤 먼저 출발했다. 다음은 하프. 롤링스타트가 아닌 동시 출발. 방파제에서 바다로 내려가는 길목이 좁아서 선수들 입수하는 시간만도 10분이 넘게 걸렸다. 결국 비교적 앞에서 출발하기 위해 선두에 있었던 나는 거의 10분 동안 입영을 해야 했다. 로프는 발로도 닿지 않을 정도로 가라앉아 있었다. 수많은 선수들이 이미 로프를 잡고 있었기 때문에.
아직 입수하지 않은 선수들은 입영에 자신이 없어 출발 신호가 울리면 입수할 선수들이 분명했지만 출발 신호는 좀처럼 울리지 않았다. 먼저 입수한 선수들은 출발 전부터 지나치게 힘을 낭비하는 셈이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결국 출발 예정 시간을 5분이나 넘긴 후 신호가 울렸다. 예상대로 초반 몸싸움은 심했다. 로프에 지나치게 가까이 가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멀리 떨어지지도 않는 위치를 찾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로프에 일정한 간격으로 매달린 노란 부표를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선수들의 수모도 노란색이었고, 선수들이 일으키는 물보라 때문에 사람 얼굴보다 작은 부표는 보이지도 않았다.
수영 코스는 ㄷ자 모양이었다. 2km, 1회전. 몸싸움은 심했지만 다행히 다른 선수의 발이나 손에 얼굴을 맞지는 않았다. 몸싸움은 첫 번째 턴을 한 후부터 수그러들었다. 이때부터는 로프를 보면서 수영을 시작했다. 선수들도 어느 정도 정열이 되어서 로프 인근이 어느 정도는 한가해진 덕분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턴. 이제부터는 직진만 하면 되었다. 어느 순간에는 너무 한가해서 혹시 코스를 이탈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기도 했다. 로프를 보고 있었기에 전방 주시를 할 필요가 없었는데, 갑자기 불안해서 전방을 확인했다. 다행이었다. 나보다 몇 미터 앞에서 서너 명의 선수들이 수영을 하고 있었다.
이번 대회에서 처음으로 민소매 슈트를 입었다. 대회를 앞두고 중국 알리에서 직구한 단돈 5만 원짜리 슈트였다. 하체 부분도 반바지였다. 팔돌림이 자유로운 것은 물론이고 벗을 때도 매우 빠르게 벗을 수 있는 슈트였다. 하지만 수영장에서 테스트만 했을 뿐, 오픈워터는 시착을 해볼 시간이 없었다. 아침에 긴팔 슈트와 민소매 슈트를 두고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민소매 슈트를 선택했다. 지금 입지 않을 거면 굳이 구입할 이유도 없는 슈트였으니까. 그리고 매우 잘한 선택이었다. 수영장에서는 턴을 하면서 물이 들어와 에어포켓이 형성되었지만 턴을 할 일이 없는 오픈워터에서는 물이 들어오지도 않았다. 자연스럽게 내부가 젖는 이상은 아니었다.
여유롭게 수영을 하던 것이 일순간 아수라장이 되었다. 영문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얀색 수모들이 밀어닥친 것이다. 올림픽코스 선수들. 하프보다 늦게 출발했고, 500m 정도 코스가 짧은 덕에 중간에 턴을 해서 하프 코스 선수들과 합류를 한 것이다. 이때부터 치열한 몸싸움은 다시 시작되었다. 늘 소극적인 수영을 하다가 이번 대회에서는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오른쪽 선수가 무섭다고 피하지도 않았고 약간의 틈을 비집고 들어오려는 선수에게 자리를 양보하지도 않았다. 수영을 하며 여러 선수에게 추월을 당했지만 또 적지 않은 선수를 추월하기도 했다. 이번 대회의 소득이었다. 다른 선수들을 파악하며 수영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 이전에는 도대체 누가 나를 추월하지는 지, 혹은 내가 누구를 추월하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을 정도였다.
*사이클
수영에서 나오면서 정신이 없어서 시계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이번 대회는 바꿈터 시간이 체크되지 않는 구조였다. 체크포인트를 지났다면 본능적으로 버튼을 눌렀을 것인데, 체크포인트가 없으니 그대로 지나친 것이다. 체크 포인트가 줄어든 것은 아마도 비용 때문이었을 것이다. 바꿈터에 들어서면서 많은 사이클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내 옆 선수도 슈트를 벗고 있었던 것을 보면 수영도 비슷하게 나온 듯했다. 바꿈터 물품 정리 때 지나치게 자기 자리를 확보해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선수였다. 다행히 또 다른 옆 선수가 애매하게 중간에 끼어 있던 나를 위해 자리 일부를 양보해줬다. 그 선수는 아직 수영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바꿈터에서 사이클을 끌고 나갈 때까지도 그 선수는 들어오지 않은 상태였다. 바꿈터를 나가면서 시계의 버튼을 눌렀다. 추후 확인한 수영(스테이지 1)의 공식 기록은 40:21. 바꿈터를 나갈 때 체크포인트가 있었으니 바꿈터를 포함한 기록이었을 것이다.
사이클은 초반 장제도를 들어갔다 나온 후 포인트 2와 3을 2회전 하는 코스였다. 전날 월출산 종주 때문에 묵직했던 하체가 수영을 통해서 풀린 느낌이었다. 시속 32~35km를 유지하며 달렸다. 첫 회전을 마치고 평속을 확인해 보니 31km. 나쁘지 않았다. 90km를 마칠 때까지 평속 30km만 유지하면 대만족이었다.
드레프팅에 대해서 그렇게 자정 노력이 있었지만 이번 대회에서도 여러 선수들이 드레프팅을 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보기 싫은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드레프팅은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많은 선수들이 속도가 비슷한 선수가 몰리면 방법이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분명히 핑계다. 물론 나도 어느 순간 드레프팅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작년 남해 대회 이후 드레프팅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상태다. 분명한 규칙 위반이고 비겁한 짓이다.
특히 한 선수 뒤에 바짝 따라가는 경우는 매우 의도적인 드레프팅이 확실하다. 속도가 비슷하다면 살짝만 우측이나 좌측으로 비켜도 되는 일이다. 이 경우 역시 드레프팅 존에 들어가는 것은 맞지만 심판들은 안다. 그가 드레프팅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드레프팅 존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여러 선수가 몰려 있는 경우는 죄책감이 덜하긴 하지만 그 역시 의도적인 드레프팅이다.
어느 순간, 나에게도 드레프팅 그룹이 몰려들었다. 거의 십여 명이 모여 있는 드레프팅 그룹이었다. 그곳에서 빠져나오려면 속도를 높이거나 줄여야 했다. 약간의 시간을 갖고 그들이 조금 더 빨리 추월하기를 바랐지만 그들은 좀처럼 빠져나가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속도를 높여 드레프팅 존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혼자서 타는 나는 곧 그들에게 잡힐 수밖에 없었다. 추월을 위해 순간 속도를 여러 번 높인 나만 체력 소모가 늘어나는 상황이었다. 짜증이 밀려왔다. 드레프팅 좀 하지 말자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 또한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그렇게 드레프팅 그룹에 잡히고, 빠져나오기를 몇 번. 다행히 오토바이를 탄 심판이 접근하면서 드레프팅 그룹은 와해되었다. 여전히 아무런 죄책감 없이 드레프팅을 하는 선수들. 도대체 철인3종 경기는 왜 나오는 것일까?
비교적 선전하던 사이클은 2회전에 돌입하면서 급속도로 속도가 떨어졌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1회전에서 시속 40km까지 나오던 구간에서도 30km를 유지하기 힘들었다. 망했다고 생각했다. 이때부터 다른 선수들에게 끊임없이 추월당했다.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괴로웠다. 아마도 60km 지점이었을 것이다. 마지막 반환점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을 때였다. 언덕을 만났고 발은 무거웠다. 이때부터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다시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그리도 다시 하나, 둘, 셋…. 숫자 하나에 페달링 한 번. 그렇게 숫자를 세며 페달링을 하니 조금 나아진 것도 같았다.
그렇게 언덕을 오르다가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달리고 있는 것일까? 가장 어려운 질문이었다. 주로는 한산해졌고, 앞 선수는 보이지도 않았다. 이따금 누군가 나를 추월할 뿐이었다. 다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그렇게 열 개의 숫자가 다시 백 개가 될 무렵 그 언덕을 모두 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왜 달리고 있냐는 질문에는 답을 할 수 없었다.
마지막 턴을 했다. 이제 골인 지점을 향해서 달리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턴을 하며 보았던 반대편 선수들이 하나둘 나를 추월하기 시작했다. 나를 추월한 선수들은 곧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내 앞에도 선수들이 없었지만 내 뒤에도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보다 더 힘든 선수도 있었다. 내가 턴을 한 이후에도 여러 선수들이 마지막 턴 지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70km 지점에서 다시 한 번 위기가 찾아왔다. 다시 나타난 언덕. 아, 괴로웠다.
그래도 죽으란 법은 없었다. 달리고 달려도 줄어들지 않던 코스가 조금씩 줄어서 골인 지점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삼거리에서 골인지점을 향해 우회전을 하면서 보았던 풍경. 아주 긴 직선 주로였고 삼거리는 조금 높은 곳이었다. 때문에 직선 주로를 달리고 있는 아득한 선수 몇을 볼 수 있었다. 그 긴 주로에 선수는 달랑 두세 명이었다. 점처럼 작은 선수들. 에어로바를 잡은 탓에 잔뜩 웅크린 자세. 어쩌면 우리 모두는 외로운 사람들인지도 몰랐다. 아무도 지켜봐 주지 않는 외로운 질주.
*달리기
바꿈터에 들어서면서 다시 한 번 놀랐다. 물론 예상은 하고 있었다. 수영에서 나왔을 때 대부분의 자전거들이 거치되어 있었던 것처럼 골인 후에도 대부분의 자전거들이 거치되어 있었다. 즉, 사이클에서 수없이 추월을 당했다는 의미였다. 물론 올림픽코스 선수들이 있었으니 당연히 많은 선수들이 나보다 먼저 사이클을 마치긴 했겠지만 그래도 참담한 결과였다. 사이클(스테이지 2) 공식 기록은 3:02:16. 그래도 선전했다.
사실 사이클 마지막 회전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기 때문에 런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런 상태에서 21km를 뛰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부상도 아닌데 무슨 포기? 일단 달려 보자. 기록 욕심만 버리면 될 일이었다. 달리기를 출발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너 참 독하다. 내가 생각해도 너 참 독하다. 지금 21km 뛰겠다는 것이냐? 이렇게 말하면 자화자찬 같지만 내가 생각해도 대단한 의지였다. 대회 준비를 제대로 못한 것은 둘째 치고 대회 전날 월출산 종주까지 해놓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리기 주로로 뛰쳐나간 것은 내가 봐도 대단한 의지였다. 그것만으로도 자신을 칭찬해 주고 싶었다.
신기했다. 의외로 몸이 조금 가벼웠다. 사실, 비로소 사이클에서 내릴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땅을 밟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더 바랄 것이 뭐가 있겠는가. 이제는 힘들면 걸어도 되지 않는가. 마음이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의외로 발도 가벼웠다. 물론 가볍다는 것은 오로지 내 기준이다. 그래봐야 5분 30~40초 대. 그래도 매우 만족스러웠다.
달리기 코스는 3회전이었다. 편도 대략 3.5km를 의미했다. 늘 1회전 코스를 선호하는 편이었지만 이번 대회에서 처음으로 3회전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덜 지루했기 때문이다. 3.5km는 그래도 달릴만했고, 턴을 해서 돌아오는 3.5km도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다. 문제는 더위였다. 신발을 젖지 않게 하기 위해 매우 애썼지만 1회전을 마치면서 포기했다. 더 이상 신발 젖는 것을 피해 가면서 물을 뿌리는 것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보급소를 만날 때마다 물을 뒤집어 섰다.
그리고 초반과 달리 속도도 줄었다. 다행히 누군가 내 옆을 추월했고 그와 보조를 맞추기 시작했다. 달리기에서 비슷한 속도, 혹은 내가 지치기 전의 속도와 비슷한 선수를 만나는 것은 행운이나 다름없었다. 그와 보조를 맞추니 다행히 속도가 되살아났다. 시계가 없었는지 현재 속도를 물었다. 시계를 확인해 보니 6:30초 주였다. 다행히 속도가 되살아났다고는 하지만 속도가 뚝 떨어진 것은 분명했다. 그 선수는 마지막 3회전, 나는 1회전을 더 해야 했다. 그 선수와는 보급소에서 헤어졌다. 난 뭔가를 먹지 않으면 달릴 수 없었고, 물도 뒤집어써야 했다. 그 선수는 물 한 잔 마시고 곧바로 출발했다.
턴 지점은 골인 지점과 동일했다. 나는 마지막 3회전을 위해서 달리고 있었지만 여러 선수들이 턴 지점이 아니라 곧바로 골인 지점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맥이 빠지는 일이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턴을 하면서 콜라를 두 잔이나 마시고 얼음을 경기복 속에 집어넣었다. 6시간 이내 골인은 진즉에 포기했다. 그럼에도 보급소가 아니면 그래도 여전히 뛰고 있는 자신이 대견했다.
마지막 턴을 했고, 사이클 주로에서 그랬던 것처럼 달리기 주로도 한가해졌다. 많은 선수들이 골인을 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선수들 발에서는 질퍽 질퍽 소리가 들렸다. 모두들 물을 뒤집어쓴 탓이었다. 그리고 보았던 하나의 발자국. 물을 잔뜩 뒤집어쓴 선수의 발자국이었다. 한가한 주로를 뛰어간 젖은 발자국은 길었고 혼자였다. 우리는 왜 이렇게 외로운 길을 가려고 하는 것일까. 그 발자국이 그토록 애틋할 수가 없었다. 나를 앞서 간 발자국이지만 어쩌면 나의 발자국이기도 했다. 도대체 그 끝에 무엇이 있길래 우리는 달리고 있는 것일까.
그렇게 골인 지점은 점점 다가왔다. 골인 지점이 보이기 시작했고, 2회전을 했을 때처럼 다시 턴을 하지 않고 곧바로 골인 지점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나의 달리기(스테이지 3) 기록은 2:30:44. 전체 기록은 06:13:22.290. 많이 아쉬운 기록이었지만 선전했다. 그 어느 때보다 뿌듯했다. 내가 골인할 때 마지막 3회전을 출발하는 선수가 있었지만 그들보다 내가 낫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우리 모두는 열심히 뛴 선수들이 아닌가. 그래도 이제 이렇게 힘든 경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남은 이야기
이번 대회 경품 중에 아이언맨 상하이 70.3 출전권이 있었다. 기록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완주자 중에서 추첨을 통해서 5명을 선발하는 경품이었다. 참가비와 항공비, 숙박비, 현지 교통비까지 모두 지원해주는 대박 경품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한 가지 있었다. 대회를 신청할 때부터 이상하게 이 경품은 내 것이라고 생각했다. 경품 당첨을 바라는 희망이 아니었다. 당연히 내가 갈 것 같은 느낌.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경품 추첨은 시상식 직후 예정되어 있었다. 시상식은 오후 3시. 대회가 끝나고 수돗물로 대충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식당에서 점심까지 챙겨 먹었다. 난 아직 영암 구림마을 취재가 남아 있었고 시간은 촉박했다. 추첨이 끝나면 곧바로 영암으로 달려가야 했다. 경기를 마친 선수들이 모두들 돌아간 듯했지만 시상식을 앞두고 다시 모여들기 시작했다. 다들 경품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상이 있었고 드디어 추첨이 시작되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나는 왜 아무런 요동이 없었던 것일까. 왜 내가 뽑힐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던 것일까. 현장에 없으면 경품은 지급되지 않았다. 첫 번째 선수는 현장에 없었다. 바로 다시 추첨이 시작되었다. 곧바로 당첨자가 뛰어나왔다. 그렇게 두 번째, 세 번째 당첨자가 바로바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네 번째 당첨자가 호명되었다. 여전히 나는 아니었다. 네 번째 당첨자까지 현장에서 나오자 다들 아쉬운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제 남은 것은 달랑 한 장. 확률이 줄어든 것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진행자가 마지막 번호를 뽑았다. 596번, 박동식. 마지막 순간까지 요동이 없었던 나의 번호와 이름이 불렸다. 당첨될 것이라고 예상(?)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기뻤다. 대회는 10월 20일. 일정은 10월 18일~21일. 나도 드디어 해외 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그것도 공짜다. 슬롯으로 가면 대회 참가비는 물론이고 모든 경비도 개인 부담이지만 나는 돈 한 푼(?) 내지 않고 해외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물론 월드 챔피언십은 아니다. 그래도 이 같은 행운이 어디 있겠는가. 돈으로 치자면 100만 원 가치는 되는 경품이다. 아이언맨 대회 끝나고 한 달 후다. 편한 마음으로 다녀올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