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인들이 입는 슈트 대부분은 긴소매 전신 슈트다. 가격은 천차만별. 내가 사용하는 것은 STM에서 만드는 'MAX'. STM 사이트 안내에 따르면 입문용으로 표기되어 있다. 최상급인 '파랩 골드'는 가격이 무려 72만원. 파랩 골드의 경우 '입지 않은 것 같이 자유롭다'는 카피가 눈길을 끈다. 나는 입어보지 않았으니 그 느낌을 알 수가 없다. 15년 전 처음 입문했을 때도 이미 수년을 사용해서 여기저기 헤진 중고 슈트를 구입했었다. 뭐, 다 돈 때문이다.^^;;
MAX가 입문용지만 15년 전의 그 너덜너덜한 슈트보다 매우 쌍팍해서 좋기만 했다. 15년 전 그 슈트는 전혀 아깝지가 않아서 직접 다리 밑단도 가위로 싹둑 잘라버리기도 했다. 애초부터 서양인 체형에 맞는 슈트인데다가 나는 유독 다리가 짧기 때문에 도저히 그대로는 입을 수 없는 슈트였다. 처음에는 접에서 입었다. 혹시나 되팔지도 모르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그렇게 낡은 슈트를 누가 산다고.
그때의 슈트에 비하면 매우 우수한(?) 지금의 슈트도 사실 중고로 구매한 것이다. 마음에는 들었는데, 팔이 부자연스러웠다. 당연했다. 슈트의 기술 중에 매우 중요한 것이 자유로운 팔동작이지만 입문용 슈트에 고급 기술과 재료를 사용하지는 않을 테니까. 무엇보다 수영장 기록보다 늘 좋지 않은 대회 기록이 혹시나 슈트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민소매 슈트에 대한 욕망이 쉬지 않고 밀려왔다. 최상급 긴소매 슈트를 입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일이었지만 72만원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살라면 못 살 것도 없겠지만 슈트에 72만원을 투자하는 건 나 졍제력에서는 엄청 오바.
그래서 알리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저렴하고 괜찮은 슈트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물론 알리 제품의 가장 큰 단점은 검증이 어렵다는 점이다. 물론 알리에서 가성비 탁월한 제품을 여러 번 구입했기에 중국 제품에 대한 신뢰도는 높은 편이다. 그럼에도 낮선 제품은 후기가 풍부하지 않고 알려진 브랜드도 아니기 때문에 제품 선택에서 망설여지는 것은 당연하다. 어렵지 않게 여러 슈트를 찾았고 사진과 제품 설명으로 최대한 제품 상태를 파악했다. 그리고 단돈 48달러짜리 슈트를 구매했다.
슈트는 예상을 뒤엎고 매우 빨리 도착했다. 하지만 부피가 너무 작아서 당황했다. 이렇게 얇은 포장에 슈트가 들어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비닐을 뜯어보니 슈트는 매우 얇았다. 제품 안내 그대로 2mm. 소매와 허벅지 밑이 없어서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구조도 아니었다. 팔동작과 발차기 등을 고려해 세밀한 기술이 필요한 긴소매 슈트와는 분명 다를 것이다.
슈트가 도착한 날 아주 짧게 150m 수영을 했었다. 자유 수영 막바지에 탈의실에 가서 얼른 챙겨 입고 내려왔던 것. 예상했던 것처럼 입고 벗기 매우 편했다. 가장 중요한 장점으로 예상했던 자유로운 팔동작도 좋았다. 하지만 겨드랑이로 물이 들어와 에어포켓 같은 것이 형성되었다. 물만 차는 것이 아니라 공기도 함께 들어와서 꼭 단점으로만 여겨지지는 않았다. 저항이 생길 것 같기도 했지만 반면 부력이 생기는 느낌도 있었다.
짧은 테스트 후 KTS에 경험자 의견을 물었었다. 겨드랑이로 물이 들어오는 것이 정상인지 궁금했기에. 답변은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물이 들어오는 것도 당연하고 단점이 많다는 것. 봄, 가을에 춥고, 노출 부위가 많아서 해파리에 쏘일 수 있고, 로프에 걸려서 아플 때도 있다는 의견이었다.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물이 들오는 것에 대해서는 당연하다는 의견과 사이즈가 커서 그렇다는 의견으로 갈렸다. 하지만 몸에 정확하게 맞는 슈트라고 해도 겨드랑이로 물이 들어오는 것을 완전히 방지하기는 힘들 것 같았다. 구조적으로 가능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부분은 경험이 없으니 아무 것도 단정할 수 없는 일이다. 민소매 슈트도 사이즈가 잘 맞으면 물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의견은 분명 경험자의 말일 테니 그 말이 맞을 확률이 높기는 했다.
정작 궁금했던 부분에 대해서 정확한 답은 얻지 못한 채, 오늘 제대로 테스트해 보기로 했다. 1km를 하려고 했는데 중간에 회전수를 잊었다. 예상보다 충분히 돌고 확인. 허걱!!! 결론을 말하자면 대성공. 1150m 수영 결과 100m 1:58초(스트라바는 57초). 수영장 장거리 최고 기록이었다. 혹시 긴소매 슈트를 입고 테스트를 했다면 더 기록이 단축되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까지 테스트하고 싶지는 않다. 수영장에서 슈트를 입고 수영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더워도 너무 덥기 때문이다.
내가 구매한 슈트는 달랑 48달러. 단돈 5만원. 노출 부위가 많아서 해파리 공격에 취약하다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 부분만 해결된다면 여름 철인3종 경기는 민소매 슈트를 입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