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블루드림스
환절기 탓인지 컨디션이 떨어져 동네 의원에 들렀다. 같은 날 나는 두 군데 를 들렀다. 왜였을까? 첫 번째 의원을 들르고 나서는 없던 병도 생길 것 같은 불쾌함 때문이었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우중충했다. 환자는 보이지 않는 걸 보니 내가 첫 환자인 것 같았다. 접수를 하며 나는 구체적으로 임파선이 붓고, 목이 좀 칼칼하며, 혹시나 싶어 이틀 전에 코로나 검사도 받아 '음성'판정이라고 간호사 분께 이야기했다. 돌아온 답변은?
"그건 모르는 거죠, 키트로 검사한 게 100% 확실하진 않죠. 그리고 저희는 코로나 때문에 의사 선생님이 마스크를 내리고 검사하지 않으세요."
참고로 여긴 이비인후과였다. 기본적인 진찰은 마스크를 벗지 못하더라도 귀를 통해서 혹은 목의 붓기 정도는 손으로 만져서 가늠할 수 있다. 보건 방침에 따라 마스크를 벗지 않고 진료볼 수 있다고 이해하려 했다. 그런데 이 뭔지 모를 말투에서 나오는 가르치려는 태도는 뭐랄까? 환자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느낌?
의사 진료 자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단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모니터만 보면서, 내 증상은 듣지 않아도 보지 않아도 알겠다는 듯 무심하게 처방전을 입력하고 있었다. 내가 말하는 증상을 별로 듣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처방전을 들고 나서려는 찰나, 간호사는 내가 목안에 통증이 아니라, 임파선염 때문에 턱 밑과 귀 뒤 쪽이 아프다고 했음에도, "식사하시고 30분 이후에 눕지 마시고요, 야식도 하지 마세요. 위에 가스가 차서 역류하면 목이 아파요. 맵고 짠 것도 피하세요."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내 얘기를 안 들었던 거구나.
나는 생각했다. '목이 마르신 거보니, 물을 드셔야 하겠네요. 와 같은 너무나 당연한 얘기 아닌가? 이럴 거면 나는 왜 멀리 여기까지 와서 내 돈을 내고 상담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가야 하는 거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나는 처방전을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으휴.. 이러니 환자가 없지.. ' 아니나 다를까 나오는 길에 검색해 보니 온라인 평점은 거의 바닥을 치고 있었다.
최고의 심리치료사를 본 그룹과 다정한 교수를 본 그룹 사이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다. 연구 팀은 학생들의 긍정적인 변화가 "온정적인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치유의 힘" 덕분이라고 했다.
핵심은 따듯함이었다. 연결이었다. 내게 신경 써주는 사람과 의미를 찾고 이야기를 구성해 나가는 과정이 중요했던 것이다. - 블루드림스
곧장 근처 다른 의원으로 향했다. 올해 두어 번 방문한 적이 있던 곳이다. 일단 접수부터 친절하게 해 주신다. 증상과 발열, 혈압 확인 후 의사 선생님을 만난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오늘은 어디가 안 좋으세요? 지난번에 어디가 안 좋으셨는데 또 같은 곳이네요. 마스크는 규정상 벗을 수 없으니, 손으로 목을 좀 만져볼게요. 많이 부으셨구나, 이 정도면 통증이 많으셨겠는데요? 저도 이렇게 안 좋으면 이렇답니다. "
다른 의원에서 받은 처방도 보여드리고, 이전에 알레르기 여부, 과거에 동일한 증상과 그 밖의 증상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불과 몇 분 동안의 대화뿐이지만, 나의 질병에 대해서 들으시면 기존 처방을 수정해 주셨다. 항생제 처방을 받으며 나는 약간의 거부감을 드려냈는데, 이전까지는 항생제 처방을 받으면 장에 부담이 생기며 큰 효과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기존에 어떤 항생제 처방을 받았는지 물어보셨고, 본인 역시 기존 사용하던 항생제는 잘 받지 않았다면서, 기존과 다른 항생제 처방을 해 주셨다. 벌써 증상이 완화되는 기분이다.
지금의 우리도 모든 사실이 밝혀진 가운데 치료를 한다고 할 수 없다. 그렇듯 선배들의 시대도 모든 것에 무지한 시대라고 보기는 어렵다. 끝없는 혼돈 속에 여러 의심스러운 치료법을 서보다가 간간이 홈런을 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진리다. 메틸렌블루가 항정신병제로 홈런을 치고도 사라진 이유는 효과가 없거나 야만적이어서가 아니다. 영국 정신 약리학자 데이비드 힐리는 이렇게 이유를 설명했다. "새로운 약이 특허를 얻었고 제약회사 입장에서 효과가 있다 한들 한물간 약을 팔 이유가 없다. " 메틸렌블루의 사정도 똑같았다. "메틸렌블루가 아닌 수단으로 돈을 더 많이 벌 치료법이나 이익 단체와 경쟁하고 있었다." 메틸렌 블루는 1970년대 조울증 치료제로 다시 등장했다. 효과가 아주 좋았지만, 결국에는 치료 효과보다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의 관심사가 우선이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동일한 항생제를 처방 받아 먹었는데, 아마도 내성 때문인지 성인이 되고부터는 이전만큼 효과가 없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어릴 적에 불필요하게 많은 항생제 처방을 받았던 것 같다. 왜 하필 같은 종류의 항생제였을까? 아마도 가장 대표적인 항생제를 받다 보니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과연? 대표 항생제가 나에게 가장 적합한 것이었을까? 아마도 많이 팔려야 하는 이유가 있는 약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초기의 항우울제]
모든 정신과 약이 그렇다. 약물과 뇌의 박잡한 화학물질에 관해 확신할 수 있는 사실은 하나뿐이다. 우리는 약이 작용하는 방법과 이유를 과거에도 몰랐고 현재까지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프로작]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는 약의 본질을 드러내기보다 감추는 용어다. 세로토닌에만 특정한 양을 만들 방법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세로토닌이라는 화학물질은 인간의 뇌 전체에 넓은 그물을 던지기 때문이다. 세로토닌은 다른 신경전달 체계와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체내 어디에나 있다. 제일 많이 발견되는 곳은 내장이다. ~ 세로토닌을 직접 겨냥하는 약을 만들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의사 선생님을 만나고 아래층 약국에 들렀다. 처방전을 접수하고 약을 기다리는 동안 책을 폈다. 그리고 약사 선생님이 나왔을 때, 책을 잠시 선생님과 나 사이에 있는 선반에 올려두고 약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항생제는 오래 복용할 경우 부담이 될 수 있는데, 일주일이나 복용할 정도로 아프시냐며 걱정을 해주신다.
나의 경우 항생제를 오래 먹게 되면 장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일단 화장실을 자주 가게 되고, 장기적으로 면역력이 더 떨어지게 되더라. 그래서 좀처럼 항생제 처방은 안 받으려고 한 이유다. 특정한 질병을 잡으려고 약은 복용 하지만, 약이란 게 특정한 질병에만 적용되리란 건 불가능하다.
이전까지는 처방을 받고 약을 먹으며, 약에 대한 설명과 부작용에 대해서 그다지 생각해 보지 않았다. 어떤 약이건 부작용이 있을 것인데, 지금까지 내 몸에 어떤 작용과 부작용을 남길지 생각해 보지 않은 내 자신이 어리석었다. 정신과 약뿐만 아니라, 모든 약이 특정 질병만 겨냥하는 것은 불가능할 텐데,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소라진]
핵심은 과거를 보는 시각이다. 우리는 정신의학의 역사를 오로지 진보만 거듭한 과정으로 보는 경향이 잇다. 새로운 치료법이 발견될 때마다 전보다 발전했고 소라진을 합성하며 어둠의 시대를 뒤로 승리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메틸렌블루가 증명하듯 현실은 그렇지 않다. 메틸렌블루는 소라진보다 50년 먼저 나온 완벽한 항정신병제였지만 바르비투르산에 승기가 넘어가면서 일시적으로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신세가 됐다.
[리튬]
중독 공포가 리튬 역사의 암흑기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두 가지 면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첫째, 연구자들은 리튬 중독을 피하기 위해 혈액 수치를 더 정확히 측정하는 수단을 개발했다. 둘째, 리튬의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더 많은 의사와 연구자가 리튬에 대해 알고 리튬에 주목했다.
설명을 들으며, 약사 선생님은 내가 탁자에 올려둔 책의 제목을 보시곤 관심을 가지셨다.
"이 책은 어떤 내용인가요? 혹시 제가 목차만 봐도 되나요?"
"약사님이 읽으시면 상당히 도움이 되실 것 같네요" (어느새 나는 책을 추천하고 있었다.)
나는 흔쾌히 정신 의약에 대한 책이라는 설명과 함께 목차를 보여드렸다. '약'이라는 공통된 주제가 있어서 그런지 보통 때와 다르게 약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했다. (보통 때는 두세 마디 '삼일 치 처방이고요. 식후 30분 맞춰 드세요.' 정도랄까?). 바이오틱스 (프로, 락토, 포스트) 영양제 등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셨다.
돌아오는 길에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의사/약사 선생님과 이렇게 오래 대화해 본 적이 있던가?' 약에 대한 약간의 관심이 나의 태도를 바꾼 것 같다.
내가 나의 상태에 대해 적극적으로 설명하면, 처방의 질도 바꿀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좋은 의사/약사를 만나는 게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