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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청서 Apr 07. 2023

[치아파스#4] 소외, 가난, 그리고 저항

경제학자의 시각에서

치아파스로 갈 때는 "로드 블락"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지역 주민들이 도로를 가로막고 통행세를 거두는 거다. 사실 우리가 치아파스 로드트립을 계획할 때 가장 변수가 많은 부분이 이 점이었다. 마야 유적지로 유명한 팔렌케에서 산크리스토발로 가는 메인 고속도로가 있는데, 여기에서 로드 블락이 생기면 옴짝달싹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통행세를 거두고 무사히 보내줄 수도 있고, 아니면 아무도 못 지나가게 막고서 시위를 벌일 수도 있다고 했다. 우리가 팔렌케 리조트에서 출발할 때 로비에서는 도로 상황이 양호하다고 했다. 하지만 팔렌케에서 두 시간가량 떨어진 곳이었나, 로드 블락을 만나게 되었다.

치아파스의 로드 블락 - 도로를 가로막고 통행세를 거두었다

지역 로컬 버스나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트럭들은 통행세를 내지 않고 다시 길을 되돌아가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버스랑 트럭에서 내려 반대편으로 걸어간 뒤, 반대편에서 다시 교통편을 구해서 가고 있었다. 아이도 노인도, 옥수수나 가구를 머리에 이고 지고 가는 사람들도 로드 블락 앞에서는 모두 속수무책이었다. 멈춰버린 차들에서 로컬들이 하나둘씩 나와서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는다. 듣자 하니 통행세는 50페소라고 한다. 미화로 2.5달러쯤 되는 돈인데, 다행히 우리가 현금으로 가지고 있는 돈으로 충분했다. 로드 블락을 예상하고 잔돈도 일부러 챙겨 왔다. 긴 행렬을 지나 드디어 우리 차례가 왔는데, 우리에게는 통행세로 100페소를 요구했다. 아마도 외국인 값이겠지. 군말하지 않고 100페소를 얼른 주었다. 짝꿍이 왜 로드 블락을 하냐고 (용감하게) 물어봤는데, 귀찮다는 듯이 그냥 이거나 읽어보라며 종이쪽지를 주었다.


치아파스 로드 블락에서 통행세를 내고 받은 메니페스토

아주 짧게 요약하자면 정부가 예정되었던 도로의 공사를 중단했는데, 도로 공사를 다시 시작하기를 요구하는 차원에서 이렇게 로드 블락을 하는 것이다. 항의는 정부에 하는 건데, 막상 통행세를 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로컬로 보였다. 이 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돈은 정부가 아니라 이 지역 주민들이 감당해야 하는 대가인데,라는 생각에 씁쓸했다.


산크리스토발에는 벽화들이 많다. 산크리스에서 처음 맞는 아침 우리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워킹투어 그룹에 합류했는데, 서너 시간 정도로 산크리스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이곳에 관련된 이야기를 듣는 프로그램이다. 거기서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자파티스타 (Zapatista)". 이 브런치 포스트 커버의 벽화도 자파티스타를 그린 것이다. 보는 시각에 따라, 반란군이라고도 또 독립군이라고도 불릴 수 있는 치아파스 지역의 무장 세력이다. 나는 사실 치아파스 여행을 준비하기 전까지는 잘 몰랐다. 하지만 우리가 치아파스에 간다고 했을 때, "아, 그 자파티스타 있는 곳"이라며 우루과이 출신의 동료 교수가 기억했다.


대부분 마야 원주민으로 이루어진 자파티스타 군은 1994년 1월 1일, 북미 자유 무역 협정 (당시의 NAFTA)에 반대하는 성명을 내고 산 크리스를 포함한 치아파스의 도시들을 점령했다. 정부군의 반격으로 자파티스타는 보름이 채 되지 않아 정글의 베이스로 후퇴했고, 이 와중에 1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영어로 된 위키 페이지에 참고 자료가 많습니다.) 무장 점력의 기간은 짧았지만 자파티스타는 국제적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치아파스 곳곳에서 그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다.

자파티스타는 치아파스 저항 문화의 상징이다.


우리가 경험한 로드 블락은 이러한 치아파스 저항의 연장선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이곳에서 멕시코 중앙 정부는 치아파스를 대변하고 공익을 위하는 기관이라기보다 여전히 맞서 싸워야 할 대상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한다. 이는 멕시코의 식민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지역 원주민들에 대한 착취와 억압의 역사가 지속되어 온 점 또한 현재의 저항 문화의 밑거름이 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같은 박사과정에서 알고 지내던 멕시코 친구가 얼마 전 세미나를 하러 들렀다. 세미나 전 날 짝꿍과 멕시코 친구와 맥주 한 잔을 하러 같이 가서, 우리는 자연스레 치아파스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멕시코 시티 출신의 이 친구는 치아파스를 한 번도 가 보지 않았다고 한다. 치아파스에서의 멋진 경험을 이야기하다가, 경제학자 세 명이 모였으니 치아파스의 경제적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피할 수 없는 순서이다.

멕시코 시티는 한국이랑 비슷하고 치아파스는 아프리카 나라들이랑 비슷한 수준

이라고 멕시코 시티 출신의 거시 경제학자 친구는 말했다. 멕시코 한 나라 안에서 이 정도의 지역 격차가 난다는 것이다. 나와 짝꿍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것 같다. 치아파스는 선진국 클럽인 OECD 국가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다른 세상 같았다.


브런치 글을 쓰다가 궁금해서 내가 직접 OECD 데이터 뒤져서 계산해 봤다. 직업병이다. 숫자로 확인하고 싶었다. 치아파스는 얼마나 가난할까. 2019년을 기준으로 봤을 때 치아파스의 1인당 총생산(GDP)은 미화 3,344달러다. 이건 대한민국 1인당 총생산인 미화 31,973달러의 10% 정도다. 멕시코 전체의 1인당 총생산에 비해서도 1/3밖에 안 된다. 제일 부유한 지역인 멕시코 시티에 비하면 1/6 정도이다. 이 정도면 2019년 치아파스는 나라로 쳤을 때 모로코나 북부 아프리카 및 중동 국가들(석유국 제외)과 경제적 수준이 비슷하다 (월드 뱅크에서 찾아봤다). 친구 말이 맞았다. 어마어마한 지역 격차다. 교육 수준, 산업 구조, 공공시설, 금융 발달 정도 등에서 오는 격차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생존의 기본을 위협하는 절대적 빈곤 역시 이 지역에서는 큰 문제다.


치아파스에 가면 꼭 가게 되는 곳이 고대 마야 유적지이다. 마야인의 후손들이 사는 곳이고, 정글이 우거져있고, 고산지대와 바다가 모두 있는 이 지역에는 흩어져 있는 마을마다 다른 토착 언어들로 소통한다. 최근에는 이러한 고유문화를 보존하고 되살리려는 노력들이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최근의 이야기이다. 원주민들과 토착 언어들이 주류 사회에서 지금껏 대접받지는 못했다. 자파티스타가 평화롭고 융합된 사회에서 나오지는 않는다. 사실 아침을 먹으려고 들어간 과테말라 국경의 한 식당에서 TV를 틀어놔서 멕시코 아침 드라마를 보는데, 멕시코시티 배경의 그 드라마는 이곳과는 같은 나라라고 믿기 어려웠다. 치아파스는 멕시코의 주류가 아닌 변두리였다. 소외받고 가난한 이 지역에서 그들의 목소리가 전해지도록 선택한 방향은 저항이었지 않았나 생각한다.


치아파스의 저항 정신이 이해는 가면서도, 내가 도로변에서 본 수많은 아이들이 왜 학교를 가지 않고 나에게 길거리에서 망고를 팔러 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로드트립 내내 짝꿍과 토론을 이어갔다. 왜 100km 전방에 ATM이 하나밖에 없는지, 어째서 그 흔한 맥도널드도 1000km의 로드트립 내내 눈을 씻고 봐도 없는지. 당연히 쉬이 풀릴 일이 아니지만, 계속해서 곱씹게 되는 치아파스의 경제적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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