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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청서 Jul 16. 2024

[노르웨이 차박 일주일 2] 올레순드 모닥불 축제

긴 여름의 낮과 같은 밤을 불태우는 거대 모닥불

마치 우리는 처음부터 다 계획이 있었던 마냥, 도시가 한눈에 바라보는 전망대에 올라 거대 모닥불이 세차게 불타는 축제에 함께했다.


우리가 북쪽으로 달려서 도착한 곳은 대서양 연안의 항구도시, 올레순드 (Ålesund).

피요르드와 대서양 연안의 도시들에는 시도 때도 없이 비가 내린다. 간질거리는 가랑비 말고, 굵은 장대비가 예고도 없이 쏟아지다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하늘이 말갛게 개기도 한다.


스위스친구를 만났던 조그만 캠핑장에서 출발해 로엔에서 가벼이 등산도 하고, 하루 종일 달려 우리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올레순드에 도착했다.

차박 여행 내내 우리의 캠핑장 탐색 가이드가 되어준 park4night 앱에서 찾아낸, 도시에서도 가깝고 시설이 괜찮아 추천한다는 캠핑카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아뿔싸.. 자리가 없다.. 드넓은 캠핑장이 한 자리도 남기지 않고 다 찼다. 그나마 우리 차는 조그맣기에, 비슷한 크기의 차들이 널찍하게 주차되어 있는 사이에 양해를 구하고 끼여서 정말 마지막의 마지막 자리를 차지했다.


우리는 그저 휴가 시즌이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는 도심에 있는 피자와 파스타 가게 Cinque minuti에 들렀다. 베르겐에서 한국 및 미국 기준으로는 가격이 착하지만은 않은 이탈리안 식당에 들어갔다 두 시간 가까이 걸리는 느린 서비스에 짝꿍이 열받아 음식을 다 먹자마자 나왔던 안타까운 경험이 있었는데, 여기는 로컬 맥주에다 노르웨이치고는 착한 가격의 맛난 피자까지 먹을 수 있어 우리는 모두 흐뭇하게 식당을 나올 수 있었다.


피자를 먹고 있을 때, 관광객인듯한 매우 키가 큰 한 남자가 식당에 일하는 분께 "불꽃놀이랑 보려면 어디로 가는 게 좋아요? 항구 남쪽으로 가는 게 좋으려나요?"라고 묻는데, 뭐 토요일이니까 무슨 파티가 있나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비는 오고 엄마는 몸이 영 개운치 않다고 하니, 그래도 가까이에 있는 전망대는 올라갔다가 차로 돌아가자고 부모님을 설득해서 식당에서 한 10분가량 떨어진 전망대 입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400개가 넘는 계단을 오르면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올레순드의 전망대.

올레순드 전망대 중간에 있는 포토존

대서양을 바라보며 점점이 이어진 색색의 도시를 담느라 다들 바쁘게 사진을 찍으며 전망대를 올라가는데, 뭔가가 수상하다. 저 멀리 뭔가가 세차게 불타고 있다. 게다가 온갖 요트들이 불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게 아닌가. 불이 났나, 하기에는 다들 불구경을 하고 있는 것 같고. 밭에서 뭐를 태우나, 하기에는 불길이 너무 거세다.

거대 모닥불과 요트들의 불구경 축제

아아, 오늘이 6월 22일, 하지가 막 지난 토요일이다. 그러고 보니 오는 길의 한 조그만 도시에도 주차장에 웬 나무 장작을 이렇게 쌓아놨나, 옆에 결혼식을 하고 있는데 결혼식 행사로 여기는 거대한 모닥불을 지피나, 했는데 노르웨이에서는 이렇게 곳곳에서 하지를 기념해 모닥불을 지피나 보다. 특히나 올레순드의 모닥불은 꽤나 유명한 축제 Slinningsbålet (Slinning bonfire)라고 한다!


이 축제 있는 거 다 알고 왔지,라고 당당히 말하고 싶지만 사실은 정말 얻어걸렸다. 찾아보니 2016년에는 47.7미터의 장작을 쌓아서 세계에서 가장 큰 인조 모닥불로 기네스 기록에 (잠시나마) 남기도 했다고 한다. 아 그래서 주차장이 그렇게 붐비고 식당 옆테이블의 키 큰 사내도 이 축제에 대해 묻는 거였구나! 우리는 불꽃놀이는 아쉽게 놓쳤지만 활활 불타고 있는 모닥불을 명당에서 감상하는 행운을 맞이하게 되었다 - 그리고 내려가는 길에 키 큰 관광객도 보았다. 옆테이블 대화를 아주 귀담아듣지는 않았지만 우리도 결국 같은 곳에서 여름의 끝과 짧아지는 낮의 시작을 알리는 모닥불을 온 도시와 함께 즐기게 되었다.


노르웨이 차박 여행 내내 우리는 시간감각을 잃었다.

해가 11시 반정도에 지는데, 완전히 어두워지는 건 새벽 한 시가 넘어서이다.

밤 열 시 정도가 되어도 한국 느낌으로는 대여섯 시 정도다 보니, 시간을 확인하지 않고 돌아다니다 자정이 다 되어서야 차로 돌아오기 일쑤였다.

한 여름의 긴 낮도, 이제 이 모닥불을 끝으로 점점 짧아져서, 겨울엔 해가 뜰락 말락 하다가 져버린다고 하는데. 커다란 모닥불을 지펴 온 도시의 사람들이 먹고 마시며 일 년 중 가장 긴 낮을 축하할 만도 하다.


겨울의 올레순드도 다시 와 보고 싶다. 올레순드의 한 상점에는 신발에 있는 스파이크를 떼고 들어와 달라는 문구가 아직도 붙어 있던데. 오로라가 펼쳐지는 기나긴 밤은 어떤 모습일까. 하지에 올레순드를 방문했으니, 다음에 올 때는 동지에 와야 하나 - 다시 길어지는 해를 축하하는 축제도 있지 않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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