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 시간을 썩 즐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건 기억난다: 피요르드는 U자곡으로, 빙하로 깎여 만들어졌어요. 한국에는 없는 지형이에요.
매 여행마다, 이건 꼭 하고 말겠어! 혹은 이번 여행은 000 여행이다! 같은 테마나 목표가 하나씩은 있는데, 이번 노르웨이 여행은 연어 실컷 먹고 피요르드 보러 가자! 뭐 그즈음이었던 것 같다. 별것 아니지만 진심이었다.
그래서 피요르드를 일주일 동안 세 가지 방법으로 즐기고 왔다.
걸어서, 기차를 타고, 그리고 유람선을 타고.
1. 걸어서 - 트롤퉁가, 로엔
트롤퉁가는 요즘 한국에서도 많이 알려진 듯하다. 우리가 트롤퉁가에 도착하자 익숙한 한국말이 들려 둘러보았더니 단체 관광을 오신 듯했다.
그대로 번역하면 '트롤의 혀'. 왕복 20km의 만만하지만은 않은 등산길이지만 그 끝에는 비현실적인 풍광이 마법처럼 펼쳐진다. 나는 사실 얼마 전 노르웨이 친구와 연인 사이인 한 이탈리아 친구가 올린 인스타에서 트롤퉁가를 처음 알게 되었다. 세상에 이런 데가 있나, 싶어서 노르웨이에 가면 나도 꼭 가봐야겠다 새겨두고 있었던 곳이다.
처음 2~3킬로 정도는 오르막길이 계속되는데 그다음부터는 경사가 그리 심하지 않다.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들에서 60-70대의 장년층, 강아지까지 별별 무리의 등산객들을 다 보았으니, 아주 불가능한 등산길은 아니다. 그래도 6월 중순인데도 눈이 쌓여 있고, 중간중간 예고 없이 세찬 비가 내릴 수도 있으니 비옷과 방수가 되는 등산화는 필수일 것 같다. 내가 20km의 등산길을 여행 계획 초반부터 노래했기에, 부모님은 아예 등산용 스틱까지 풀세트로 장만해서 오셨다. 진흙길과 눈밭을 지나갈 때 스틱이 특히나 유용했는데, 나와 짝꿍은 스틱 없이도 무사히 다녀올 수 있었다.
트롤의 혀, 트롤퉁가 Trolltunga - 내가 찍은 사진이지만 AI가 만든 것 마냥 비현실적이다
만약에 차를 몰고 간다면, P2에 주차하고 P2에서 P3까지 가는 셔틀을 타고 가는 방법을 권하고 싶다. 우리는 캠핑카여서 혹시나 몰라 P1에 주차를 하고 P1에서 P2까지 버스를 타고 갔는데, 아니 이 마을버스 크기가 좁은 도로를 달린다면 우리 캠핑카가 달리지 못할 이유가 없는데 싶기는 했다. 물론 이 버스 운전기사분은 아마 눈 감고도 운전하실 수 있을 만큼 이 도로에 익숙하신 분이니까 우리가 쉬이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승용차들과 여럿의 캠핑카들이 P2에 주차되어 있는 것을 보니, 우리도 P2에 주차했으면 훨씬 수월하지 않았을까 했다. P1에 주차하면 돌아가는 길에 버스 시간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하루종일 걸리는 트롤퉁가 등산 대신 반나절에 왕복이 충분한 등산을 원한다면 로엔(Loen)을 추천하고 싶다. 케이블카도 있는데, 가격도 만만치 않거니와 트롤퉁가에 비하면 가벼운 산책정도로 느껴져서 우리는 주차장에 차를 대고 간단한 등산을 하기로 결정했다. 트롤퉁가만큼은 유명하지 않은 듯해서 사람이 그렇게 많지도 않고, 한 시간에서 두 시간이면 왕복이 가능하니 가벼운 등산이라서 부담 없이 갈 수 있다. 대신 비가 많이 온 뒤에는 진흙탕이라 미끄러울 수 있다고 하니 그 점은 염두에 두시길.
로엔에서 바라본 피요르드
트롤퉁가 같은 드라마틱한 풍경을 선사하지는 않지만, 어찌 보면 좀 더 편안한 느낌을 주었던 로엔이었다. 짧은 등산길의 끝에는 조그만 통나무집들이 여럿 흩어져있는데, 여름과 겨울을 모두 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집들로 보였다. 색색의 통나무집 지붕에는 이끼와 풀들이 자라서 호빗의 집처럼 귀엽다. 아침이나 점심 정도에 올라 가벼운 간식 먹고 돌아오기 딱 좋은 곳. 망원경을 들고 가면 저 멀리 피요르드 끝에 있는 마을과 피요르드 위를 항해하는 요트를 볼 수 있는 재미도 쏠쏠하다.
2. 기차를 타고 - 플롬 (Flåmsbana)
플롬의 피요르드 관광 기차
베르겐에서 크루즈를 타고 오거나, 운전해서 쉬이 갈 수 있는 플롬. 그곳엔 피요르드를 따라 달리는 관광 기차 플롬스바나(Flåmsbana)가 있다.
플롬은 관광객들을 위해 꾸며져 있다. 꽤나 잘 시설이 갖추어진 (하지만 그만큼 우리가 머물렀던 캠핑장들 중 가격도 가장 비쌌던) 텐트와 캠핑카들을 위한 플롬 캠핑 & 호스텔이 플롬 기차 출발지로부터 걸어서 15~20분 내외로 있고, 시원한 수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브루어리에다, 따끈한 시나몬롤과 커피를 마실 수 있는 (하지만 앉을 수 있는 실내 좌석은 제한된) 베이커리, 신선한 식재료에다 노르웨이 특산품인 갈색 치즈를 살 수 있는 식료품점까지 없는 게 없다. 게다가 베르겐에서 나는 정가를 주고 산 스칸디나비안 익스플로러 (Scandinavian Explorer) 우비도 여기는 아울렛에서 할인해서 판다! 이 동네 날씨에 아주 제격인 두둑하고 방수 잘 되는 우비인데, 여행 다니는 동안 아빠가 내내 "그거 딱이다"를 반복했던 꿀템이다.
그런데 이렇게 잘 꾸며져 있는 만큼 왕복 기차 가격은 만만치 않다. 성인 왕복으로 730 NOK이니까, 2024년 여름 환율로 치면 9만 원이 좀 넘는 가격이다. 왕복 말고 편도는 기차로 가고 오는 길은 자전거나 짚라인을 탈 수도 있다고 하는데, 그것도 나쁘지 않은 생각일 것 같다. 사실 가는 길에는 들뜨기도 하고 신나서 열심히 다들 사진 찍느라 분주했는데, 오는 길에는 솔솔 졸음이 오더라. 밖은 추운데 기차 안은 포근하니 졸릴 만도 하기는 했다.
차를 몰고 다니지 않고 크루즈로만 다니거나 노르웨이의 몇몇 도시들을 보기 위한 여행이라면, 플롬 기차를 타고 피요르드를 감상하기 아주 제격일 것 같다. 산꼭대기에서 여름이 되면 여러 줄기로 갈라져 즉흥적으로 흐르는, 아마도 이름도 없을 폭포들, 그리고 기차를 타는 중간쯤 포토타임으로 5분쯤인가 정차하는 어마어마한 기세로 흐르는 폭포는 정말 볼만하다. 하지만 솔직한 감상으로, 차박으로 노르웨이를 여행한다면 이 정도의 피요르드는 하루종일 지나다녀서 그다지 큰 감흥이 있지는 않았다...! 오슬로에서 오다로 가는 첫날에 이미 비슷한 풍광들을 사실 많이 봤다. 그래서 만약에 주변 지인이 차박으로 노르웨이를 여행 간다면, 뭐 좋기는 하지만 가격도 만만하지 않고 너무 관광지느낌이라서 패스해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3. 크루즈를 타고 - 가이랑거 피요르드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된 가이랑거 피요르드
이런 곳에서 북유럽의 신화가 만들어졌구나, 싶은 곳이다. 오딘과 트롤의 전설이 깃든 풍광을 풀어낼만한 글재주가 있으면 좋으련만.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도 등재된 가이랑거 피요르드 (Geiranger fjord)를 크루즈를 타고 감상하는 호사를 누렸다. 하지의 모닥불축제를 보았던 올레순드에서 출발하는 크루즈도 있는데, 그건 아침 일찍 출발해 하루 종일 걸린다. 우리는 오슬로 공항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날, 가는 길에 있는 가이랑거 피요르드에 들러 오후 크루즈를 타기로 했다. 가이랑거에서 도착해서 타면 한 시간짜리 크루즈 투어가 있는데, 성인 한 명당 530 NOK에 예약할 수 있다. 인터넷으로 예약해서 QR코드 보여주면 끄읏! 한국어로 오디오 가이드도 있는데, 나는 듣지 않았지만 엄마가 특히나 좋아하셨다. 이곳 주민들의 소소한 이야기들과 이 피요르드에 담긴 역사를 재미있게 너무 잘 담아내서 인상적이라고 하셨다. 나이가 들수록 유명인이 아닌 일상에 담긴 역사에 더 관심이 간다면서.
가이랑거 크루즈를 기다리는 동안 점심을 먹게 된다면, 노르웨이식 어묵을 파는 Fiskekaka Geiranger를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심플한 재료로 만든 따끈한 어묵과 으깬 감자, 그리고 어묵 포켓 샌드위치를 맛보면 이곳이 왜 별점 4.9/5에 빛나는 곳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어묵 점심 후에 달달한 것이 당긴다면 가이랑거 초콜릿집이 바로 맞은편에 있다. 초콜릿을 녹여서 만드는 핫초코도 있고, 아이스크림에, 이곳에서 직접 만드는 초콜릿도 기념품으로 살 수 있다. 이곳은 여름에도 으스스하게 춥고 시도 때도 없이 비가 내리는데, 따뜻한 핫초코를 한 잔 시켜서 여유롭게 크루즈를 기다리기 딱 좋은 카페다.
운전을 해서 노르웨이를 구경하게 되면 피요르드를 따라서 운전을 많이 하게 되는데, 막상 깎아지른듯한 절벽과 폭포를 가까이에서 감상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 점에서 기차는 차로 보는 풍광과 비슷했지만, 크루즈 위에서 올려다보는 피요르드는 또 다른 웅장함을 선사했다. 차박 여행이라면 크루즈도 꼭 고려해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