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빈 May 12. 2021

건조기가 주는 이로움

건조기와 식세기가 주는 저녁이 있는 삶





건조기가 주는 이로움이 있지만 항상 배팅하는 마음으로, 불확실성을 안고 건조기를 돌린다. 특히  옷을 샀을 때나, 리넨이 섞인 여름옷을 돌릴 때는 더더욱 그러한데 누군가는 “그럼 따로 분리해서 돌리면 되잖아?”라고 하겠지만 귀찮음이 온몸을 지배하는 나에게 빨래와 건조는 이제 거의  코스이고  중간에 <건조기 돌리면  되는  분리해내기>라는 미션이 하나  추가되는 것은 상당히... 귀찮아... 그래 그냥 귀찮아...




뭐 어쨌든 그래서 매번 배팅하는 마음으로 건조기를 돌린다는 이야기. 어제도 새로 산 둘째의 세컨스킨 모달 원피스는 한껏 줄어들었고 오늘 다시 뜨거운 물에 조물조물 손세탁해서 옷걸이에 걸어 말려두니 다시 쫙쫙 늘어나는 중이다. 역시 모달...



모든 옷이 이렇게 다시 빨아서 늘어나면 참 좋겠지만 그간 날려먹은 리넨 셔츠들과 그 밖의 줄어서 더 이상 못 입는 리넨이 포함된 모든 옷들에게 조의를 표한다... (그래도 분리 건조는 너무 귀찮아...)






영화 [월레스와 그로밋], 만화 [패트와 매트]에서는 주인공이 눈을 뜨기도 전에 시간에 맞춰 자동으로 옷을 입혀주고 양치도 시켜주고 식탁 앞에 앉힘과 동시에 준비된 식사가 제공된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올까? 하는 의구심이 들긴 하지만, 10년 전 처음 혼수가전을 준비할 때만 하더라도 건조 기능은 세탁기에 딸린 하나의 '코스'였을 뿐 실상 그 기능을 사용하는 사람이 많진 않았다. (제대로 건조가 되지도 않았을뿐더러...)




그런데 이제는 아예 건조기와 세탁기가 하나로 합쳐진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니, 내가 기술을 따라가지 못하는 건지 기술이 너무 빠르게 앞서가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이쯤에서 밝히자면 나는 기술의 진보에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 환영하는 편이지.

아이를 낳고 직장생활을 하며 남편과 가사 분담 조율에 관한 대화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남편의 직장은 서울이었고, 집은 부천이라 출퇴근 시간만 3시간 이상씩 걸렸다. 반면 내가 다니던 회사는 부천 내에 있었고 거리도 그다지 멀지 않아 마음만 먹으면 차로 1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러한 이유로 두 아이의 학교 등교, 어린이집 등 하원, 학습지 선생님 맞이, 학원에서 온 아이 맞이, 각종 학교 숙제와 집안일은 자연스레 나의 몫이 되었다.



그러나 집안일은 그 단어처럼 딱 세 글자로 끝나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집안일'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관한 일인데 남편은 이를 쉬이 여기며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자신을 '이런 남편이 어딨어'라며 방어하곤 했다. (지금은 아들이 많이 커서 음식은 엄마가 했는데 당연히 아빠가 버려야지 라고 실드를 쳐주곤 한다. 잘 키웠다는 생각이 든다.)





집안일은 해도 해도 티가 안 나고, 아이 보는 공은 없다던 어른들의 말처럼 나는 직장일과 집안일, 육아에 눌려 지쳐있었고, 내가 도대체 뭘 하는지 모르겠는 그 순간에 식기세척기와 건조기를 들였다.


식기세척기와 건조기는 과히 혁명적인 전자제품이었다.



아침에 대충 먹고 나간 밥그릇과 저녁 식사 후 쌓인 설거지는 식기세척기로 해결되었다. 더 이상 남편과 눈치 싸움하며 밥은 내가 했으니 설거지는 당신이 하라는 아쉬운 소리는 하지 않게 되었다.

빨래 후 세탁물을 빨래 건조대에 널지 않고 건조기에 넣음으로써 얻은 이득은 또 어떠한가?

나는 식기세척기와 건조기로 드디어 저녁에 쉴 수 있게 되었다. 단 30분, 1시간이라도 말이다.





이제 남편과 나는 "도대체 저것들 없이 전에는 어떻게 살았지?"라며 과거의 숱한 싸움들을 회상하곤 한다. 물론 앞으로도 리넨이 포함된 셔츠들은 줄어들겠고, 아무 생각 없이 돌린 성분을 도통 알 수 없는 많은 옷들이 줄어들겠지만 그로 인해 내 저녁시간을 살 수 있다면 그것은 얼마든 희생할 수 있다. (그래도 요즘엔 눈치껏 줄어들만한 옷은 따로 빨래망에 세탁했다가 그것만 따로 건져내어 건조대에 널어둔다. 빨래망... 이것도 정말 좋은 아이템이다.)


앞으로 빨래를 개 주는 기계가 속히 나오길 기대한다.











+ 물론 돈이 많아서 모든 가전제품을 구매한 건 아니다. 나는 여전히 가난하고(눈물 쓱-) 앞으로 갚을 대출금이 산더미이지만, 요즘엔 렌털이라는 꽤 괜찮고도 부담이 덜한 방법도 있으니 많은 직장맘들은 가사노동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길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거지근성 버리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