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으로 쓰는 이름, 나의 마지막 강아지 순대에게.
2013년 12월 13일 ~ 2025년 9월 3일 오후 8시 30분.
순대야,
너를 떠나보낸 밤이 지나가는 새벽, 눈을 감기 두려워 글을 쓴다.
다신 부를 수 없는 순대야,
푸들계의 김태희, 머리가 너무 좋아서 말 안듣는 천재견, 나의 20대를 함께 한 단짝, 우리집 막내딸,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귀여운 우리 아기, 조건없는 나의 행복, 즐거움. 이제는 어떻게 불러도 대답 없을 황망한 흔적, 쓰고 쓰고 아무리 헤프게 써도 닳지 못할 그리움, 사랑한만큼 고통스러울 이름, 나의 마지막 강아지.
언니의 예쁜이 아가 순대야, 오래 오래 살라고 이렇게나 촌스러운 이름을 줬는데 뭐가 그렇게 급했어.
뚱뚱이가 됐다는 말에 삐져 돌아 눕던 너의 따듯하고 포동포동하던 품. 너의 심장이 멎은걸 확인한 순간, 너의 체온을 붙들고 싶어서 한참동안 너를 부둥켜 안았어. 어깨 뒤로 고개를 기대어 볼을 맞대는 걸 좋아했던 너. 축 늘어진 너의 몸을 안고 차마 감지 못한 눈에 볼을 비비며 신한테 기적도 빌어봤어. 헛된 희망이 무너진 지금, 네 품에 가득했던 온기와 향을 잃은 채 차갑고 딱딱해져 돌아온 너를 마주하기 두려워. 내일부터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을 떠날 너의 마지막 모습을 눈에 넘치게 담아둬야할 텐데. 그래야 숨막히게 네가 보고픈 날 한번씩 잔상에 담아볼 수 있을 텐데. 이렇게도 겁이 많은 날 이런 식으로 버려두고 가면 어떡해.
유난히도 겁이 많던 너를 홀로 보내는 무지개길이 벌써 걱정이다. 너는 세상에 둘도 없는 겁쟁이라 엄마는 널 12년을 꼭 품에 달고 살았단다. 산책할때도 무서운 것들이 수두룩해 먼길을 돌아가야 했던 너. 엄살은 또 얼마나 심했니. 작은 인기척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피하는 ‘엄살왕’이었지. 그렇게 겁도 많고 엄살도 많은 애가 한줌의 공기도 들어찰 수 없는 폐를 왜 내색 안했을까. 죽기 일주일 전까지, 아니 그 날 오전까지도 사람들이 꾀병이라고 놀릴만큼 괜찮았는데, 그래서 마지막인걸 몰랐지. 너의 엄살을 믿은 내 불찰에 가슴이 시리다.
왜 오늘은 중간에 집에 돌아왔나 몰라. 가던 길을 돌아와 가만히 나를 바라보는 너의 눈을 보고 오늘 저녁에 프론트허그백 오거든 밤 산책 가자고 했는데, 마냥 걸으면 너가 힘들까봐 가방이 오는 오늘 저녁을 기다렸는데, 가방을 채 뜯기도 전에 뭐가 그리 급해서 그렇게 갔니. 나한테 이별을 받아들일 시간을 좀 주지, 딱 일주일만 주지. 아니, 최소한 오늘 아침에는 미리 알려주지, 그럼 그렇게 허무하게 너의 마지막을 보내지 않았을텐데. 맨날 여유 생기면, 시간 나면 하면서 너와 함께 하고 싶은 것들을 차일피일 미뤘던 내가 그렇게도 서운했니? 아침의 짧은 약속이 저녁에 돌이킬 수 없는 후회로 돌아올 줄이야. 팔딱팔딱 요동치는 마음이 재가 되도록 신을 원망했다.
사람들이 너가 우리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 고통을 버틸 수 있었던거라고 하더라. 가는 날까지 최대한 많은 순간을 사랑하는 우리와 행복하게 보내고 싶어서 죽음을 악물은 거래. 이별을 느낀 요 몇일 너도, 나도, 엄마도 우리 모두 처음으로 용감했지. 너의 인생을 바쳐 내 옆을 지켜준것 처럼, 나도 너를 지키기 위해 내 목표를 포기할 용기를 오늘 처음으로 냈어. 차라리 덜 용감 했으면 좋았을 것을. 혹시 내 용기를 네가 눈치채고 나를 위해 서둘러 떠난건 아닐까 싶어서, 너의 투병이 우리한테 고통이 될까 떠날 용기를 낸건 아닌가 싶어서. 우리를 향한 네 사랑의 흔적들이 심장을 후벼 판다. 힘겹게 숨을 쉬다 우리와 눈이 마주친 순간, 네 심장이 멎는 모습을 봤어. 굳어져 가는 너의 동공을 보고 내 생애 본적 없는 두려움을 마주했어. 후회돼. 너의 의식이 조금이나마 남아있을때 쓰다듬어 주고 무섭지 않다고 말해줄걸, 너는 내 인생 최고의 강아지라고 말해줄걸. 너는 그토록 용감 했는데 나는 끝까지 겁쟁이였어.
회사를 그만둔 덕분에 유례없이 너와 긴 시간을 함께 보낸 여름이었어. 너는 안중에도 없이 타인에 대한 분노를 삭히며 집에 주저 앉아있던 시간이 마지막 위로가 되네. 소름 끼치게 잔인한 여름이다. 너를 잃는 꿈을 자주 꿨어. 식은땀이 나고 믿고싶지 않은 풍경에 이를 갈다 지쳐 깨곤 했어. 그런 꿈에서 깨는 날이면 너가 안전하게 잘 있다는걸 확인해야 잠들수 있었어. 이제는 그런 밤에 어떻게 다시 잠들어야하나. 마음에 소복하게 쌓인 애절함이 넘쳐 꿈으로 흘러버린 밤에서 깨면, 너 없는 황망함을 어떻게 달래야 할까. 그런 밤들을 버틸 자신이 없어.
너와 함께 한 시간을 생각하면 12년이 12일 같이 짧기만 하다. 너를 처음 본 순간부터 가족이 될 운명인걸 알았고, 주먹만한 너를 종이박스에 담아 우리집으로 데려올때의 그 두근거림이 지금도 생생한데, 이별이라니. 너의 노화를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외면만 했어. 외면하지 않았더라면 후회가 덜 남았을까. 너와 함께할 시간이 점점 줄어든다는걸 알면서도 나는 닫힌 방문 앞에 너를 세워뒀고, 내 곁에 붙은 너의 몸을 밀어냈어. 별로 어렵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너는 참 좋아했는데, 뭐가 그리 귀찮았을까. 뭐 얼마나 대단한 걸 한다고 너의 기다림이 당연 했을까.
후회할 날들을 돌아보면 하루가 10년처럼 흐르는거 같다. 네가 두드리기 전에 먼저 문을 열어줄걸, 산책이란 말에 쫑긋거리는 너의 귀를 넘기지 말걸, 너를 사진에 더 많이 담아둘걸, 너를 좀 더 긴 시간 동안 다정하게 불러줄걸, 내 빈자리를 기웃거리지 않게 할 걸, 매년 돌아오는 너의 생일을 내년으로 미루지 말걸, 내가 우물쭈물하는 동안 너의 시간은 나보다 7배는 빠르게 죽음을 향해 가고 있었는데. 이 수많은 ‘걸’들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근데 후회는 언제해도 항상 늦고 역사에 만약은 없더라.
사랑은 작고 작은 점에 불과한데, 남기고 간 이별은 끝 없는 직선같다. 너를 만나고 단 하루도 너를 사랑하지 않은 날이 없었어. 사랑한 시간의 몇곱절을 애달프게 보내야 너를 덜 앓을 수 있을까. 온 집안 구석구석에 너의 그림자가 묻지 않은 곳이 없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이곳에 없는 널 보고 들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림자만 남은 너의 흔적에 가슴이 몇번이나 내려 앉을지, 눈물을 얼마나 흘려야할지 막막하고 두려워. 당장 너 없는 내일을 어떻게 버텨야할지도 모르겠어 난. 그 자리에 앉았던 행복은 증발해서 어디에도 없는데 남은 아픔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
믿지 않아야할 이유가 억만가지는 되는 신을 앞으로는 믿어보려해. 언젠가 내 시간이 끝나가는 날, 몇십년 묵었을 너에 대한 그리움을 다시 만날 설렘으로 바꿀 수 있겠지. 그곳에서는 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지 말고, 아프지 말고 행복하게 친구들이랑 놀면서 나를 기다려줘. 내 양말을 훔쳐 돌아다니던 그 모습으로, 뭐하는데 방문을 닫고 있냐는 듯 따지던 그 모습으로, 가장 익숙한 모습으로 나를 마중 나와줘. 나도 너한테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