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먼지가 되어 머나먼 별 여행을 떠나는 너를 보내며
순대야,
너를 한 줌의 재로 태우고 돌아온 집, 습관처럼 부르던 너의 이름이 얹힌 것처럼 목에 걸린다.
오늘은 이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을 가는 널 배웅해주고 왔어. 이틀 전에는 내 품에 안고 어르고 부빌 수 있었던 따듯한 몸을 떠나 자유로운 먼지가 되어 떠나는 여행.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너를 데리고 지하철 두 정거장을 못 가준 내가 답답 했구나. 얼마나 더 큰 세상이 궁금했던거니. 가늠도 안되는 그 길을 떠날 결심을 할 만큼. 너의 여행길이 얼마나 길지 몰라서 제대로 채비도 못했네. 가는 길이 외로우면 또 춥거나 배고프면 어떡하지.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이젠 없는데.
가는 길에 이제는 사진으로만 남은 너를 들여다봤어. 너의 장례식을 위한 사진들을 골라야한대. 너무 슬프지 않니. 우리는 2014년 2월25일에 처음 만났어. 한번도 너와 함께한 시간을 셀 생각을 안했는데 너는 4209일만에 우리를 떠났더라. 그 시간 동안 너는 참 우리한테 무한한 행복 이었더라. 왜 그 행복이 당연하다고, 언제까지나 함께할거라고 생각했을까 몰라. 사진을 넘기다보니 어느 샌가 네게 세월이 스며들어 있더라. 카메라 렌즈도 보는걸 난 왜 못봤나 모르겠다.
오늘만큼은 나도 카메라를 내려놨어. 기자가 되고 어디에서든 카메라로 기록하는 반사신경이 생겼지만 차마 너의 장례식에는 카메라를 꺼내지 못하겠더라. 사진으로 기록하면 너의 죽음에 "사실"이라고 도장을 찍는 것만 같아서.
장례 지도사님이 사라질 너의 흔적들을 하나씩 읊어주더라. 냄새가 사라질거래. 밖에서 상처받고 돌아온 밤이면 얼굴을 부비던 너의 부드러운 배에 코를 묻었어. 죽음이 이미 너의 향을 지워가고 있더라. 눈물이 터졌어. 네가 마지막까지 깔고 있던, 너가 좋아하던 그 회색 담요. 바닥에 눕고 싶어서 담요를 펼치면 늘 냉큼 먼저 가서 누웠던 너. 너와 항상 자리 싸움을 해야했던 그 회색 담요를 지퍼백에 넣었어. 시간에 점점 희미 해질 너의 향을 보관하려고. 그리움에 숨막히는 순간이 오면 조금씩 아껴서 맡으려고.
그다음엔 너의 털이 사라질거래. 자주 만져주던 부위를 말해주면 그 털을 잘라 주겠대. 혹여나 미용실에 갔다가 다칠까봐 걱정했던 엄마가 실수해서 사방 땜빵이 났던 너의 등 털. 그걸 보면서 꽤 웃었지. 너의 귀 털은 길고 가느다란데 부드럽고, 등털은 까칠한 양모 같고, 배털은 아가 솜털 같이 연하고, 다리털은 꼬불 폭신해. 넌 모르는 사람이 네 몸에 손대는거 싫어하는데 무서워하진 않을까, 너가 겁먹을거 알면서도 모든 부위의 털을 최대한 많이 잘라달라고 욕심을 부렸어.
마지막 순간까지 너는 참 하얗고 예쁘더라. 이렇게 하얗고 예쁜 너의 입가에 묻은 누런 고통의 흔적이 미웠어. 두번의 염을 했는데도 지우질 못했더라. 그게 너의 고통의 깊이인 걸까. 너가 나 모르게 아주 많이 고통스러워했다는 얘기를 듣고 너도 밉고 엄마도 밉더라. 고통도 너의 일부일텐데 나도 보게 해주지. 너가 그렇게 아팠는데 나는 몰랐다는 사실이 미치도록 쓰라려. 알았더라면 살아있는 널 한번이라도 더 안아주지 않았을까. 밤에 숨을 헐떡거리는 널 안고 신나는 여행길이 될거라고, 언니가 늘 지켜줄 테니 걱정말라고 말해줬을거 같아. 넌 똑똑한 강아지니까 알아들었을거야. 그랬다면 이미 식어가는 널 끌어안고 조금은 덜 울 수 있지 않았을까 원망스러워.
너의 조그만 부분 조차 잊고 싶지 않아서 너의 몸 구석구석을 꼭꼭 눈에 담았어. 이게 우리의 이별은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내 머리카락을 너의 발에 묶어줬지. 엄마랑 나는 네가 여행길에 덜 심심하라고 편지를 썼어. 처음보는 엄마의 편지쓰는 모습이 신기했어. 강아지별에는 번역 서비스가 있길 바래. 즐겁게 여행하고 꼭 다시 만나자고 말하며 너를 놔줬어. 눈 감은 너의 모습이 강아지별 여행을 기다리는 설레임에 들뜬거 같아 보이더라.
네가 너의 별로 가는 화로에 올라타는걸 지켜봤어. 엄마는 그 모습을 못보겠나봐. 나도 너무 무서운데 혼자 들어가는 네가 무서울까봐 떨면서 참았어. 블라인드가 열리고 오동나무 배에 탄 너가 어두운 터널 속으로 들어 가더라. 짐승처럼 소리를 지르며 울었어. 발을 동동 구르고 너의 담요를 손이 저리게 꽉 쥐었어. 불이 붙는 모습 까지는 차마 못 보겠더라. 내 마음이 끓다가 터져서 흘러 넘치는데도 우리 이별을, 너의 여행을 멈추지는 못했어.
황망? 허무? 허망? 허전? 하얀재로 부서져 돌아온 너의 모습을 묘사할 명사가 없어. 그걸 본 내 기분을 설명할 형용사도 없어. 이게 대체 뭘까 한참을 버벅거리다 장례 지도사한테 원래 이렇게 작게 돌아오냐고 물어봤어. 대답이 없었어. 차라리 고맙더라. 원래도 너는 작디작은 강아지였는데, 얼마나 멀리 날아가려고 이렇게 한 줌 재가 됐을까.
우리는 널 4층 테라스 정원에 묻기로 했어. 네가 제일 좋아하던 정원. 철마다 엄마랑 함께 풀을 깎다가 옴팡 진흙을 뒤집어 쓴 네가 뛰어다니던 곳, 잔디에 떨어지는 물을 쫓아 다니다 너의 발이 시커멓게 젖던 그 곳. 거기만 가면 꼭 중대장처럼 굴던 네 모습이 생각나. 여기는 내 땅이라는 듯 왕왕 거리며 평소에 볼 수 없는 용맹함을 보여줬지. 그 모습이 늘 우리를 웃게했어. 거기서 뛰어 노는 너의 모습을 딱 한번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좋겠다. 내 남은 시간을 깎아서 너한테 줄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너가 신나게 여행을 잘 하고 있는지 우리가 늘 지켜봐줄게. 신나고 즐거운 여정에서 아주 가끔 쉬고 싶을때, 우리를 돌아보고 싶은 날에 너가 잘 찾아올 수 있도록 복숭아 나무를 심고, 그 위에 네가 좋아했던 물건들을 걸어 놓을게. 평일에는 아빠가 창문 너머로 너를 느낄거고, 나도 주말에 너를 찾아가 매일 저녁에 그랬던 것처럼 내게 있었던 일들을 나누며 웃어볼게. 네가 어디에 있어도 우리는 항상 같이 있게 될거야.
강아지별을 여행할만큼 하고, 넓은 세상 다 구경하고 나면 내 딸로 다시 태어나주라. 그게 아니라면 천국의 무지개 다리 앞에서 나를 기다려줘. 우리 꼭 다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