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백일만.

팔 년 만에, 108배를 하기로 했다.

by 노미루

오랜만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하다가, 제주도에 있어서 정말 부럽다는 얘기를 들었다.

말한 의도는 전혀 그렇지 않았고 순수한 부러움의 말투였지만, 그런 식의 이야기를 자주 들어온 나는 피해의식처럼 왜곡되어 들려왔다.

'넌 참 팔자도 좋구나,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그렇게 사냐?'는 식으로 억울하게 느껴졌다. 사실 나는 그런 의도로 이곳에서 사는 게 아닌데 말이다.

제주 n달 살기, 그런 게 유행이었다지만, 난 취미로 살러 내려온 게 아니라, 정말로 '살기 위해서'내려온 건데 말이다.


사실 어딜 가서 뭘 해도 즐겁지가 않았다, 내 마음이 어떤 상태에서 내려왔는지, 내려와서도 마음이 편치 않으니 일상이 상상만큼 즐겁진 않다는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러다 이야기는 알고리즘을 타고 과거 나의 힘든 이야기까지 흘러갔고, 눈물까지 터뜨렸다.


평소에 속마음을 잘 터놓지도 않는 내가 울면서 이야기하니, 친구도 적잖이 놀랐나 보다.

힘들 거라는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너의 마음이 어땠는지는 전혀 생각도 못했다고 했다.

그러다 자신도 힘든 시기를 지나온 얘기를 하면서 108배 얘기가 나왔다. 자신도 그때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고 엄마의 권유로 108배를 시작하고선 마음이 많이 안정되고 잘 버틸 수 있었다며.

그러고 보니, 몇 년 전에도 이 친구에게 똑같은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큰 공감을 하지 못하고 지나갔었다.

당시 나는 "그래, 108배 진짜 좋지. 나도 몇 년 전에 해봤는데 마음이 많이 나아지더라고."라고 얘기한 것만 기억난다.

그러게, 나도 절을 하던 때가 있었다.



8년 전, 대학교를 휴학하고 삶이 흔들거리던 어느 날, 또 엄마에게 대판 한소리를 들었다. 더 이상 집에 있을 수 없던 나는, 다음 날 편지 한 통만 두고 무작정 집을 나왔다.

그날 밤 몸을 누일 곳이 필요해서, 당장 가지고 있던 돈으로 고시원에 들어가 살던 때였다.


그때는 비좁은 방보다 내 마음이 더 좁은 곳에 갇혀있는 것만 같았다. 어딜 가서 무엇을 하든 마음은 지옥 한가운데였다.

안 그래도 흔들리는 내 삶, 그걸 더 잡고 흔드는 가족, 낯선 도시에서 길을 잃어버린 심정이었다.

뭐라도 붙잡지 않으면 이대로 흔들거리다가 뽑혀버릴 것만 같았다. 그때 심리학이나 고민상담, 마음을 다스리는 류의 책을 많이 찾아 읽었다.


한 스님이 쓴 책에서, 108배를 백일만 하면 나의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구절을 읽었고, 바로 집 근처의 절을 찾았다.

종교적 이유나 마음의 수련, 그런 거 다 떠나서 새끼줄이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누군가가 성당이나 교회를 추천했으면 거길 갔을 것이고, 혹시라도 사이비 종교를 추천했다면 거기에라도 빠져버렸을 거다.

그 정도로 마음이 많이 약해진 상태였다.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속 시원히 말할 곳조차 없었다. 가장 가까운 존재들에게 상처 받았고, 서러웠지만 제대로 울 곳도 없었다. 고시원에서는 옆 방 소리가 고스란히 다 들려서 마음대로 울 수도 없었다.

108배는 쉽지 않았지만 마음이 괴로운 게 더 힘들었다. 절 한 배 할 때마다 아무도 없는 절에서 오열을 했다. 울면서 절하느라 거의 한 시간은 걸렸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마음 편하게 울고, 더디게 108배를 하고 나왔을 때, 마음을 기댈 곳이 생긴 것 같았다.


그 후로 매일 절하러 다니면서, 우는 횟수는 자연스레 줄어들고 절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한 배씩 절 할 때마다 내 마음에 걸리는 존재들에게 미안하고 감사하다고 되뇌었다. 물론 마음에선 전혀 내키지 않았지만 그저 로봇처럼 되뇌었다. 내 마음이 편해지기 위해서 분노부터 가라앉혀야 했으니까.


며칠쯤 하며 감사의 존재를 내 주위의 당연한 것들, 당연한 일들로 확대해나갔다.

어느 날은 그저 사지 멀쩡하게 태어난 것만으로도 엄청난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껏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그저 감사하다고 되뇌기만 했을 뿐인데 생각의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그때 비로소 108배를 왜 해야 하는지, 그리고 왜 100일 정도는 해야 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됐다.

절에 가지 못하는 날은 집에서라도 하며 이어가다가, 나중에 마음이 조금은 안정되자 서서히 절을 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의 나는 무엇에라도 집중하고 마음을 기댈 곳이 필요했고, 짧았던 108배는 나의 마음을 안정시켜주었다. 그렇게 저 밑에 가라앉아있던 경험을 친구가 다시 떠올려 준 거다.

친구는 절하는 방법과 여러 가지 책도 추천해주었고, 덧붙여 이런 말도 했다. 자신은 절을 하면서 스스로 감정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고, 인맥도 정리되고 인생이 가벼워졌다고. 그런데도 너와 내가 아직 친구라는 건, 너도 정말 멋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그간 내가 잊고 산 것들에 대해 다시 떠올려봤다.

나이가 들어도 휑한 마음과 무기력함은 예전과 그대로였다. 8년 전의 나는 울며불며 뭐라도 잡겠다는 의지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나 잡아봐서 다 알아.'라며 의지조차 없는 내 모습을 돌아봤다.

메워지지 않는 마음의 구멍, 여전히 영구치가 자라나지 않고 흔들리는 내 삶. 뭐든 시작할 힘조차 잃어버리고, 잊고 산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중 가장 큰 한 가지, 내면의 힘을 완전히 상실한 채 살고 있었다.


'인생의 키' 개념으로 108배를 한 야구선수 홍성흔 (출처: JTBC 아는형님)


며칠 전 예능 <아는형님>에 나온 야구선수 홍성흔의 말도 떠올랐다.

세계적인 선수라는 박찬호도 혼자만의 명상시간을 갖는데, 당시 아마추어였던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충격을 받았고, 자신도 인생의 키를 가져야겠다는 깨달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종교 겸 운동의 의미로 108배를 시작했고, 부상으로 관두기까지 7년간 매일 절을 했다고 했다.


지금의 나는 일단 우울감이 심했고, 일상의 패턴이 망가져있었다. 당장 패턴이라도 맞출 수 있는 규칙적인 무언가가 필요했다.

8년 전에 읽었던 책의 구절처럼, 딱 백일만 절 해본다면 나의 마음이 편해질 수 있을까? 생각의 전환을 다시 경험할 수 있을까?

딱, 백일만 토 달지 말고 해 보자. 꾸준히 뭐라도 한다면 죽이든 밥이든 되겠지.

그렇게 팔 년 만에 108배를 다시 시작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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