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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형식 Aug 07. 2018

대기실 #1

 첫 번째로 만든 영화는 5컷짜리 영화였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쯤, 수강하고 있던 영화 제작 워크숍의 가장 첫 단계 실습이었다. 사운드 없이, 카메라는 고정된 채로, 다섯 컷만을 가지고 하나의 짧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었다. 나는 그 당시 직접 우울이라는 것에 몰두하고 있는, 혹은 무언가에 의해 우울이라는 것에 몰두되고 있는 상태였다. 그 당시 내가 발견한, 혹은 뒤늦게 발견하고 정립하게 된 나의 우울, 즉 나는 우울한 사람이다라는 것에 대한 생각은 내 인생 전반을 지배해왔고 앞으로도 지배할 것이다. 이렇게 텍스트로 명시하진 않았지만, 그 당시에도 그렇게 짐작은 하고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나는 항상 우울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건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원인은 미스터리였다. 우울은 나에게 그저 하나의 이미지였다. 바로 내 눈 앞에 있는 어떤 것이었다. 내가 왜 그것을 보고 있는지, 왜 그것이 나에게 주어졌는지, 왜 내가 그것에 이러한 영향을 받는지 알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그저 하나의 이미지였다. 나는 그 해에 어느 밤, 귀갓길에 동네 지하철역을 나와 내가 건너야 하는 육교를 바라보고 이런 비슷한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내가 존재한다는 증거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고로 존재해야 할 이유도 없고 내가 존재한다는 확신도 없다." 나는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저 바로 그 생각을 하기 위한 구실이자 충동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았다. 모든 것을 사전적 의미의 이미지, 즉 허상으로 생각했다. 5컷 영화의 제목은 <빨래>였다. 서른 살이 다 되어가는 어떤 여자가 있다.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시도하며 살아왔지만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고, 지금은 남동생과 같이 사는 집 식탁에서 스케치북에 알 수 없는 괴상한 그림들만을 그리고 있다. 남동생은 누나의 그런 모습이 걱정되고 화가 나고 지겨워 누나의 그림들을 모두 세탁기에 넣고 세탁기를 돌려버린다. 여자는 뒤늦게 세탁기를 끄고 그림들을 건져낸다. 물에 젖어 찢어지고 서로 뭉쳐진 그림들이 세탁실 바닥에 떨어진다.


 그 당시에는 그저 덤덤했고, 그 영화보다 더 좋은 영화를 이후에 많이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돌이켜보면 어쩌면 그 영화보다 훌륭한 영화를 나는 만들 수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어쨌거나 그것은 소위 영화적으로 괜찮은 영화였다. 스케치북 종이의 상태와 질감의 변화를 통한 아주 감각적인 영화였다. 그러나 나는 그 당시에 그것을 의도할 생각이 없었다. 만약 관객이 있었다면, 그런 감각성은 관객이 좋아할 요소였지만, 나는 그저 그 여자의 상태에만 집중했고, 남동생이 그림들을 세탁기에 넣는 행위, 그것을 막으려 투닥거리는 몸짓, 그림을 다시 꺼내는 여자의 손 움직임, 떨어진 그림을 보는 우리 모두의 시선에만 관심이 있었다. 아마도 나는 감각 따위에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그 이후에 만들어진 내 영화에서 그런 감각성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나는 아마도 감각을 의도적으로 기피하고 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감각은 못 미더울 정도로 아주 은밀히 나에게 "너는 존재한다"라고 속삭이니까. 하지만 움직임과 시선은 그렇지 않다. 움직임은 아주 신기한 것이다. 환영과도 같다. 팔이 여기에 있다가, 저리로 간다. 이전에 있던 팔은 사라지고 새로운 팔이 저기에서 생겨난다. 잔영은 아주 빨리 사라져서 그것의 도움으로 우리는 움직임을 본다. 그것들은 아주 명백하게 불확실하며 대놓고 기만하는 것들이었다. 나는 이제까지 그저 움직임의 존재와 시선의 존재가 그 자체로 아주 불합리하고 부조리하다는 것만을 영화로 말하고 싶어 해왔을지도 모른다. 지금에서야 드는 생각이지만, 그건 일종의 이미지에 대한 물귀신 작전이었던 같기도 하다. 이미지를 나의 존재와 같이 죽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 영화 제작 워크숍의 수료작으로 찍은 영화와, 1~2년 뒤 만든 또 다른 영화는 모두 비슷한 맥락의 아주 작은 실패작들이었다. 전자는, 추진하고 있던 영화의 시나리오를 제작비 부족으로 인해 배우들 그리고 스텝들과 함께 폐기하고, 이미 예약되어 있던 오피스텔과 이미 빌리기로 했던 장비들을 등장시키는 혼자만의 작은 실험이었다. 그 당시에 내가 혼자서 할 수 있었던 것을 했을 뿐인 영화였는데, 거기서도 앞에서 말했던 이미지-존재의 부조리함을 다루려고 했던 것 같지만 스스로 생각했을 때 큰 성과도 아니었고 그저 영화적 투정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 작품이다. 후자 또한 비슷한 의미의 영화일 텐데, 촬영 장비가 아니라 진짜 인물들을 등장시키면서 스텝들도 동원했으니 그야말로 민폐였다고 할 수 있겠다. 이야기 자체가 아예 거세된 움직임만으로 이루어진 영화였고, 소재로서의 움직임들은 이유 없이 마음대로 동원되어 결국에는 이해할 수 없는 몽타주 사진 같은 영화였다. 그래도 기승전결로서의 리듬은 있었는데 그게 수확이라면 수확이었겠지만, 무엇보다 나는 배우와 스텝들, 즉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고, 그것이 가장 부끄러운 점이었다. 왜냐하면 움직임들이 마구잡이로 동원되듯이 사람들 또한 선의를 미끼로 처참하게 동원되었기 때문이다. 존재에 대한 불신에 혼자로만 사로잡힌 상태에서, 다른 사람들의 존재를 믿는다는 것이 안중에 있었을 리가 없다. 이렇게 말해도, 지금은 그것이 모두 괜찮아졌다고 말할 순 없을 것이다. 그로부터 몇 년 후부터, 타인에 존재에 대해 비로소 관심을 갖기 시작했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존재에 대한 불신은 우울처럼 일종의 병으로 자리 잡았고 그것들 모두 좀처럼 죽지 않았다.


 그렇지만 결국 그것이 그 당시 내가 영화라는 것을 좋아한 이유였다. 영화는 솔직하다. 자신이 그저 한낱 이미지임을 숨기지 않는다. 어떤 영화들은 그것을 숨기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껏해야 2~3시간이면 끝나는 것이다. 영화는 아주 짧게 살 뿐이었다. 그것은 샘이나는 부분이기도 했다. 영화를 많이 보면 현실 또한 한낱 영화처럼 가볍게 그리고 빠르게 지나갈 것 같아서 그만큼의 많은 영화를 본 것 같기도 하다. 플라톤주의를 비웃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뮬라크르의 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 당시의 나에게 "너는 영화를 보는 아무 이유 없이 영화를 보고 영화를 하는 아무 이유 없이 영화를 하고 있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정당하다. 나는 그런 질문을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필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하진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도대체 무엇이 나를 영화를 계속하도록 하는지, 계속 영화를 보도록 하는지 알 수는 없었다. 개별적으로는 모두 작은 실패들이라고 할 수 있어도, 모아서 보면 큰 실패라고 할 수 있는 몇 년 동안의 영화적 고민 끝에 내놓은 답은, "나는 내가 영화를 왜 하는지 알기 위해 영화를 한다"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문장은 나의 우울의 근원, 죽음충동에 대해서도 변형되어 사용할 수 있었다. "나는 내가 왜 존재하는지 알기 위해 존재한다." 그 말은 나 자신에게 굉장히 실존주의적인 선언이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 이유들과 근거들이 모두 나를 중심으로 바뀌어 나갈 것이라는 일종의 예언이기도 했다. 내가 불합리와 부조리를 느끼는 그것, 이미지-존재에 대해 공부를 해볼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고, 그것을 위해서 나의 이유 모를 존재성을 할애하는 것은 놀랍게도 굉장히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다. 어느새 이유 없음이 자연스러움으로 변했다. 영화라는 것에는 무언가가 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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