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등원길을 반기는 아침인사

어릴적 나의 산행길에서 내 아이의 등원길로 이어지는 다정한 유산

by 김영훈

나의 어릴 적 이야기

어릴 적 나는 종종 아버지를 따라 등산을 다녔다. 그 당시 나는 등산에 대한 거부감도 없었고 크게 힘들다는 생각 없이 곧잘 따라다녔다. 산길은 좁았다. 어른 한 명이 겨우 어깨를 비틀어야 지나갈 수 있는 길 위에서, 마주 오는 등산객과의 대면은 피할 수 없는 '만남'이었다. 그때 아버지는 항상 인사를 건네셨다. 모르는 등산객이라도 같은 길을 오가는 인연으로 인사를 나눴을 것이다. 나는 인사하시는 아버지를 보고 '아, 등산할 때는 이렇게 인사를 주고받는 거구나.'하고 당연히 해야 하는 행동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어린 나이지만 마주치는 등산객들과 열심히 인사했던 기억이 또렷이 남아있다. 그 찰나의 인사가 나에게 참 좋았던 기억으로 남았다. 내가 인사를 삶의 중요한 태도로 간주하게 된 건, 아마도 그 산길 위에서였을 것이다. 주고받는 인사 속에서 내 행동이 누군가의 인사라는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나의 자존감과 자기애 형성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아들과의 이야기

아침 8시 40분,

나는 1년째 아들과 유치원 등원을 도보로 하고 있다. 내가 다니는 회사 출근길과 아들의 등원길이 같다.

아들과 손을 잡고 걷는 등원길은 늘 같은 풍경이다. 걷다 보면 항상 우리 집 뒷산에 등산하러 올라가시는 할아버지, 도보로 출근하시는 아주머니, 좀 더 걷다 보면 초등학교 앞 교통안전 할아버지가 횡단보도 안전지도를 하고 계신다. 처음에는 아들과 나를 뺀 모든 것들이 그저 스쳐 지나가는 등원길 풍경이었다. 하지만 하루하루 쌓이는 등원길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무심코 그냥 지나쳤던 무채색의 분들이 하루하루 같은 시간 같은 곳에서 마주치다 보니 서서히 아들과 나의 눈에 제 빛깔을 내며 보이기 시작했다. 그분들 또한 매일매일 우리를 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이분들께 인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첫 시작은 아들이 다니는 유치원 앞 횡단보도에서 교통안전지도를 하고 계시는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이었다. 매일 아침 일찍 나와 고생해 주시는 할아버지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아들과 함께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너무나 밝게 웃으시며 우리 인사를 받아주셨다. 너무 환한 미소로 웃어주셔서 내 마음의 온도가 훌쩍 올라가는 기분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평소 주변에서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이 너무 적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할아버지 입장에서도 먼저 인사를 건네는 우리가 무척 반가운 존재이지 않을까?


할아버지께 처음 인사 드린 이후부터 마주치는 날에는 꼭 빠지지 않고 인사를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면서 할아버지도 아들의 인사를 기다리셨다. 아들이 멀리서 걸어오고 있으면 미리 인사할 준비를 하시는 모습이 보인다. 아들도 할아버지와 인사 나눌 수 있는 알맞은 거리까지 걸어가는 동안 인사할 생각에 들떠있다. 간단한 인사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쌓일수록 서로 오고 가는 이야기도 늘어났다. 그리고 꼭 할아버지와 '하이파이브' 스킨십까지 해야 인사가 마무리되었다.

하루는 할아버지께서 동료 할아버지께 자랑섞인 말투로 말씀하셨다.

"요 애기는 꼭 나랑 하이파이브를 한다~!! 허허허"

그때 깨달았다. 아이의 작은 손바닥이 누군가의 멈춰있던 아침을 깨우는 다정한 파동이 될 수 있음을.


요즘은 초등학교 방학기간이라 할아버지가 교통안전 활동을 하지 않으신다. 아들은 초등학교 앞을 지날 때마다 "아직도 형아들 방학 안 끝났어?", "할아버지 계속 안 계시네?"라고 얘기한다. 아들도 할아버지와의 아침 인사가 너무 좋은가 보다.


교통안전 할아버지 외에도 한 달 전부터 아들은 항상 같은 시간에 등산하러 올라오시는 할아버지와도 인사를 시작했다. 그전에는 참 무표정이시다고 생각했던 분이다. 그런데 아들과 인사하고 나서부터는 참 밝게 웃으신다. 낯선 사람들과 인사나누기 쉽지 않은 요즘 환경에서 나도 아이를 핑계 삼아 마주치는 분들께 인사를 건넨다. 인사를 함으로써 낯선 사람들은 풍경에서 하나의 기다려지는 관계로 발전 된다.

KakaoTalk_Photo_2026-01-27-12-38-23 003.jpeg 25년 여름 아들과의 등원길




아이들에게 인사는 단순한 예절 교육을 넘어 '사회적 참조(Social Referencing)' 과정이다.

낯선 존재를 만났을 때 부모가 밝게 인사하는 모습을 보며, 아이는 '이 세상은 안전하고 우호적인 곳'이라는 기본적인 신뢰감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누군가 내 인사를 받아준 경험이 아들의 사회적 뇌(Social Brain) 발달에 매우 긍정적인 자극을 준다.


우리는 아이에게 거창한 세상을 보여주려 노력하지만, 사실 아이가 처음 만나는 세상은 등원길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의 미소 속에 있다.


결국 인사는 타인에게 건네는 예의인 동시에, 내 아이에게 이 세상은 서로 의지하며 함께 살아가는 곳임을 증명하는 가장 다정한 행동이다.
월, 목,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