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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민주 Oct 26. 2023

셔터를 눌러 인화된, 우리의 기억

영화 ‘바다가 들린다’를 보면서 알 수 있는 사진첩과 기억의 유사성

[The Psychology Times=노민주 ]

영화 '바다가 들린다' 중 한 장면, 갑자기 우는 모습을 보고 주인공은 당황한다


다들 ‘기억’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 아주 어린 시절 친구와 싸웠던 생각이 나거나 최근 코앞에서 버스를 놓친 기억이 떠올랐을 수 있다. 아니면 정말 단어의 의미인 ‘경험, 학습에 의한 회상과 인식’이라는 개념이 생각났을 수 있다. 여러 의미와 다양한 기억들이 나올 수 있지만 나에게 기억은 머릿속의 사진첩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기억이 머릿속의 사진첩이라는 생각이 들게 된 계기는 최근 ‘바다가 들린다’라는 영화를 보고 나서이다. 영화는 오랜만에 동창회에 가게 된 남자 주인공이 학창 시절의 추억을 되돌아보면서 전개된다. 영화를 본 사람은 알겠지만,  잠깐잠깐 화면의 대부분을 흰 여백으로 두어 중앙에 있는 그림에 집중시키는 방식으로 화면을 구성한다. 나는 이런 연출이 사진관에서 인화한 사진첩처럼 보이도록 감독님께서 의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실제로도 사진이 인화되고 사진첩에 붙여지는 과정과 기억하는 과정이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내가 이번 글을 쓰게 된 계기이다.


전통적 기억 모형에는 세 저장소 모형이 있다. Atkinson & shiffrin이 주장한 모형으로 기억이 여러 개의 구조로 되어 있다고 보는 대표적 유형이다. 기억 시간과 용량에 따라 3개의 구조를 가정한 것으로 구조에는 감각기억, 단기기억, 장기기억이 있다.


우선 감각기억의 특징은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우리가 눈으로 본 거의 모든 정보가 유지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특징을 보고 카메라 렌즈의 기능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렌즈로 우리는 카메라가 향하는 모든 곳을 볼 수 있어 모든 정보가 담기지만, 실질적으로 사진이 기록되는 필름의 역할은 하지 않아 아주 짧은 시간만 볼 수 있기에 모든 정보가 저장되지만 아주 짧은 시간 유지 되는 감각기억과 유사하다 생각했다.


다음인 단기기억의 특징은 주로 음운적 부호화가 일어나며 대략 5~9개 정도의 용량 정도를 수용하고 20~30초 정도 정보가 유지된다는 것이다. 물론 카메라의 저장용량이 단기기억만큼 적지 않고 사진은 계속 카메라에 저장되기에 카메라와는 차이점이 있다. 그렇지만 나는 정보를 기억하는 과정 중 감각기억에서 주의를 준 정보만이 단기기억으로 넘어간다는 것에서 '주의'를 준다는 것이 카메라에서 '셔터'를 누르는 것과 유사하다 생각했다. 렌즈에 있던 정보들이 '셔터'를 누르게 되면서 필름으로 저장되듯이 감각기억에 있던 정보들이 '주의'를 주게 되면서 단기기억으로 저장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장기기억의 특징은 용량의 제한이 없고, 오랜 기간 동안 거의 영구적으로 정보가 저장된다는 것이다. 단기기억에서 장기기억으로 정보가 들어오는 과정에서는 시연이라는 과정이 필요한데 시연이란 획득한 정보를 말로 중얼거리거나 마음속으로 계속 되뇌는 과정으로 유지형 시현과 정교형 시연으로 나뉜다. 이때 정교형 시연을 사진을 인화하고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들을 골라 사진첩에 붙이는 과정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저장하게 되면서 사진을 인화하는 경우가 줄어들게 되었다. 물론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이 화질도 좋고 손쉽게 확인할 수 있지만 이런 방식은 정보를 기계적으로 단순히 반복하는 것이기에 집중 유지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는 유지형 시연과 같다고 생각한다. 이를 새로운 의미에 초점을 두어 의미적 처리를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정교형 시연으로 이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 모두가 바쁘게 의미를 신경 쓸 틈도 없이 살아가는 지금,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인화를 기다리고,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골라 신중히 사진첩에 넣는 조금은 느리지만 특별한 의미를 가진 사진첩을 만들어 보며 더욱더 의미 있는 기억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영화에서는 주인공의 학창시절 좋아했던 여자아이와 관련된 것들을 보면서 회상을 시작한다. 기차역에서 잠깐 마주친 그 여자아이를 닮은 사람을 봄으로써, 학창시절 찍었던 여자아이의 사진을 봄으로써 주인공이 좋아했던 여자아이를 중심으로 주관적 조직화하였던 과거의 기억들이 적절한 인출 단서를 만나게 되면서 회상 즉 인출이 되었다 할 수 있다. 이처럼 영화를 기억의 과정에 대해 연관 지어 다시금 생각하며 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영화 그 자체로 즐기는 방법도 좋지만, 나의 주관이 들어있는 렌즈로 보게 되면 영화를 몇 배로 더욱 흥미롭게 볼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STUDIO GHIBLI [바다가 들린다] (1993)

[한국심리학신문 대학생 기자단 심꾸미 8기 노민주 기자]

 http://www.psytimes.co.kr/news/view.php?idx=7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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