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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민주 Jul 21. 2024

무서운 걸 못 봐도 부천국제영화제를 즐길 수 있다!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 영화 8편 후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11일 동안 빡세게 일하기도 했고, 영화제 전 후로 근로도 하며 거의 3주 동안 쉬는 날도 없이 일했던 터라 이제야 시간이 났다. 비판 히어로즈로 활동하면서 영화표 10개를 받을 수 있어 영화제 기간 동안 영화 8편을 볼 수 있었다. 별 내용은 없지만 메모에 적어둔 것들이 있어 영화제가 끝난 지 일주일이 다되어가는 지금 영화제에서 본 영화들의 후기를 써보려 한다.


개인적으로 무서운 것과 고어한 것을 정말 못 보는 사람이기에 일절 보지 않았다. 나에게 부천국제영화제는 무섭고 19금 영화들 뿐이라는 생각이 강했는데 보고 싶은 영화가 정말 많았고, 시간이 안 맞아 못 본 영화도 정말 많았다. 무서운 것을 못 봐도 부천국제영화제를 즐길 수 있었다!


황야의 늑대


영화 20분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자리가 남았다기에 급하게 예매하고 보러 간 영화이다. 사실 너무 피곤해서 졸았다. 절대 영화가 재미없던 게 아니라 폭탄 터져서 화면 번쩍하고 총 쏘는 굉음이 들릴 때도 기절하듯이 스르륵 잔 걸 보면 정말 피곤했던 게 분명하다.     


영화는 단순 쾌락만을 충족하려는 것이 아니라 선과 악에 대한 고찰 등 철학적인 부분도 담겨 있어 좋았다. 다만 너무 어려웠다. 대사가 아니라 주로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들이 많았고, 생각할 여지를 주는 부분들이 극단적으로 잔인하거나 폭력적으로 총 쏘고 죽이는 부분이 많아서 의미가 단순 쾌락에 잠식되어 버린 것 같았다.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남자 주인공이 죽는 모습이 처음에 여자주인공이 기도하던 십자가의 예수와 똑같은 모습 등 깊은 인상을 준 영화이다.      


하이퍼보리안


프로그램 노트를 보고 재미있을 것 같아 당일날 예매하고 보러 간 영화이다. 심리학과로써 심리학이 나온다기에 기대하고 봤는데 너무 난해했다. 사실 뭘 의미하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분명 영화의 모든 장면은 감독이 의미가 있기에 넣은 것이지만 나치도 나오고 갑자기 머리만 남은 사람들도 나오고 정말 그냥 뭘 의미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었다.      


촬영 후 필름을 잘라 편집한 것처럼 물건이 이질적으로 생겨나는 등 현대기술로 과거 영화의 모습을 재연하는 것 같은 부분들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 꽤 긴 정적이 나오는데, 그 순간 영화관이 아닌 또 다른 공간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상영기계에 소리가 났던 과거에서 이런 정적을 영화에 담을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을 발전했다는 것이 느껴져 영화역사의 모든 것을 한 영화에서 보는 것 같았다.    

 

영화에 나온 머리만 남고 새로운 육신에 영혼을 넣는다는 설정에 물론 칠레의 역사적인 요소가 있겠지만, 나는 남은 머리가 ‘영화’의 본질이라 생각이 들었다. 영화라는 것은 영화를 둘러싼 당시의 시대적 상황, 기본 배경 등을 알고 보는 것인데, 시간이 흐르면서 영화 자체(머리)만 남고 주변의 기본배경이나 지식들(몸통)이 사라져서 현대에 존재한다 보였기 때문이다. 주인공 복제품이 영화를 보고 자아를 가진 새로운 육신을 얻는 모습도(영화에서는 나쁜 의미이긴 하지만) 후대의 사람들이 영화를 다시 보고 재해석하고, 모티브로 한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 내는 것을 통해 영상 그 자체로만 남은 영화가 다시금 되살아 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영화의 10%도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나한태는 너무 어려웠다... 그래도 복잡한 영화임에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괴상하지만 파격적인 새로운 시도가 많이 보였다. 나는 괴상한 감독님들 얼굴의 목각 인형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상업영화시장에서는 보기 힘든 영화임은 분명하지만 영화제를 통해 이런 독특한 영화를 볼 수 있게 돼서 너무 좋았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


너무 재밌었다. 할 말이 너무 많아 짧게 쓸 자신이 없다. 그래서 따로 쓸 예정이다!


다아아아알리


진짜 재밌었다. 한마디로 ‘뇌절의 뇌절은 예술이다’의 표본이었다. 영화 속의 영화의 꿈속의 꿈속의 꿈. 솔직히 뇌절 같긴 했지만 너무 내 취향이었다. 진짜 영화관에서 깔깔거리면서 웃었다. 영화제를 통해 같은 유머코드를 가진 사람들과 같은 영화관에서 웃으면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영화관에서 주변사람들이 웃는 것마저도 영화의 한 부분 같았다.      


영화제에서 본 영화 중 1등을 뽑으라 하면 이 영화를 고르고 싶다. 특유의 노래가 들릴 때마다 자동 반사적으로 웃음이 나왔다. 영화에 5명의 달리가 나오는데 나는 4명밖에 인식하지 못했다..! 정말 닮은 사람들로 잘 구성하셨나 보다.      


처음에 달리가 호텔 복도를 10분 넘게 걸어오는 순간부터 그림 속 비현실적인 모습이 실제의 모습인 것과 꿈속의 꿈속의 꿈, 그리고 수정의 수정을 거쳤지만 허접하게 실수로 끝나는 영화의 마지막까지 너무 좋았다. 영화 보고 난 후 적은 메모에 ‘아 진짜 너무 재밌다.. 아 또 보고 싶다.. 아 진짜 너무 재밌음’ 등등 감탄사만 가득했다. 물론 조금 난해하고 뇌절이 많아서 흥행은 장담하진 못하지만 영화관에서 또 보고 싶다.   

  

맘 앤 대드


다른 의미로 충격적인 영화였다. 처음에는 전형적인 옛날 영화여서 성교육이라는 큰 주제를 가진 위험성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영화구나 생각했었는데 정말 적나라하게 제왕절개하는 모습과 매독에 걸린 사람들 성기를 보여주는 등 정말 성교육용 영화였다.    

  

당시의 사람들보다 내가 성에 대해 제대로 못 배웠다 생각했다. 실제 출산 장면을 처음 보기도 했고, 그 외에도 영화를 보면서 새로 알게 된 것들이 많았다. 당시에는 결혼 전에는 ‘몰라도 된다’라는 생각이 만연해서 청소년들도 알아야 된다며 그 생각을 깨는 영화가 만들어졌는데, 지금의 한국은 애초에 가르쳐줄 생각조차 없이 그냥 쉬쉬하는 분위기기에 지금의 성교육이 더욱 퇴화된 것 같았다.      


흑백영화와 함께 옛날 영화의 특유의 느낌이 좋았다. 아이를 임신시킨 남자애가 죽었다는 것을 듣고 들고 있던 접시를 깨는 등 과장되고 정제되지 않고, 결국은 정석적인 결말로 끝나는 당시의 감성들이 개인적으로 취향이었다. 그리고 실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정말 충격이긴 했다. 정말 지금은 절대 나오지 않을 영화이다. 흑백이 아니었으면 난 끝까지 못 봤을 것 같다.      


언젠간 달라질 거야


설정은 전형적인 타임루프에 갇힌 영화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자신들을 방해하는 사람이 본인들이 아는 사람이고, 결국 살리기 위해서 끝없이 루프를 반복하고, 마지막에 본인이 초반부터 죽으면서 루프를 깨려는 것까지 정말 정석적인 설정이었다.   

   

그렇지만 긴박하고 재밌었다. 영화에 나온 노래가 진짜 찰떡이었다. 직접 만든 것 같던데 영화의 가사부터 모든 게 정말 음악에 미친 사람이 영화도 만든 것 같았다. 그리고 시드니(동생)가 타임루프에서 벗어나려고 집에서 도망치려 할 때 익스트림 와이드샷으로 보여주는 정적인 모습과 클로즈업으로 피를 토하며 괴로워하는 극적으로 동적인 모습을 번갈아가면서 보여주는 장면은 정말 관객의 오감을 자극하면서 충격을 더욱 극대화했는데 이걸 보면서 정말 감독이 미친 사람인가 싶었다.   

   

도중에 누가 주무셔서 코 고는 소리가 청량하게 들렸다. 사실 나도 조금은 몰입감이 떨어져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보고 싶어 지긴 했다. 새로움은 없지만 영화 자체는 완성도 있고 좋았다. 영화제에서 본 영화 중(내 머리 속의 지우개 제외) 가장 바로 cgv에서 개봉해도 경쟁력이 있을 것 같다 생각한 영화이다.    

 

타임스토커


계속 CGV에서만 보다가 처음으로 부천시청 어울마당에서 봤는데 사람들도 엄청 많고 자원봉사자 발대식 했던 곳에서 영화를 상영해서 신기했다. 내가 상상했었던 영화제와 가장 유사했다. 엄청 큰 장소라 시야와 음향을 기대를 안 했는데 시야도 나쁘지 않았고, 음향도 엄청 좋아서 놀랐다.      


뇌 빼고 보기 좋은 영화였다. 그리고 재밌었다. 영화 ‘다아아아알리’처럼 뇌 빼고 사고가 필요 없는 영화들이 내 취향이란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 영화다. 처음부터 영화의 후반부까지는 부담 없이 웃기 좋은 블랙코미디의 정석처럼 흘러갔는데 주인공이 자신이 스토커라는 것을 알고 난 후부터 엔딩까지는 감독의 의도를 따라가기 벅차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도 영화를 보고 나서 결국 모든 것이 상상인 것인지, 아니면 주인공이 착각을 한 인생 중 하나였던 것인지 의문이 끊이지 않았다. 망상을 가진 스토커라는 조금은 딥한 주제를 경각심과 유머러스함을 공존하면서 풀어낸 것은 좋았지만 마지막은 조금 아쉬운 영화이다.    

  

비버 대소동


발달된 현대기술로 옛날 영화를 흉내 내는 게 정말 취향이었다. 그리고 정말 어이없이 웃긴 영화였다. 진짜 실없이 웃었다. 가끔씩 나오는 셜록과 왓슨이 괜히 반갑고 웃겼다. 그리고 갈수록 사냥을 점점 잘해가는 과정도 너무 웃겼다. 웃김과 비례해서 배우님이 힘드셨겠다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다.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황금기에 대한 오마주를 실사로 풀어냈다는 프로그램 노트에서 적힌 것처럼 정말 많은 영화가 생각이 났다. 그렇지만 옛날 영화의 지루한 느낌도 함께 가지고 온 것 같았다. 50분 정도였다면 짧고 굵은 정말 재미있는 영화로 남았을 것 같다. 108분은 너무 길었다.      


비버 가죽 벗기는 공포를 인간이 체험하게 하는 모습과 비버의 벌목으로 주변이 휑한 모습, 비버가 쏜 로켓이 터질 때 핵폭탄 구름이 나오는 것 등 보면서 환경과 관련된 영화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잔인한 부분도 많이 나와서 당혹스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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