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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민주 Jul 28. 2024

영화<내 머리 속의 지우개> 후기

이번 부천국제영화제에서 ‘독.보.적. 손예진’이라는 이름의 특별전으로 현대 백화점에서 전시와 손예진 배우님의 대표작들을 다시 상영해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를 보게 되었다. 꽤 유명한 영화라 언젠가 한번은 봐야지 생각하고 계속 미루던 영화였기에 더욱 기대가 컸다.     



영화에서 2004년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신기했다. 콜라가 700원인 것은 지금은 상상할 수 없고, 패밀리마트는 한국에서 사라진지 꽤 되었기에 같은 한국임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고 매력있었다. 그 외에도 휴대폰이나 옷차림등으로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2000년대 초 감성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당시의 서울 사투리가 조금씩 들려서 신기했다.     


그렇지만 스모키 화장은 조금 많이 부담스러웠다. 물론 스모키 화장을 한 손예진 배우님은 정말 예쁘셨다. 처음 손예진 배우님이 등장하셨을 때 ‘저때는 저런 화장이 유행이였구나’ 하며 이해하려 노력해봤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저 화장으로 나올까봐 걱정했었다. 그래도 처음 장면 말고는 스모키 화장을 안하셔서 개인적으로 정말 좋았다.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는 클래식한 한국 영화의 표본이었다. 특히 자극적인 주제를 자극적이지 않게 풀어내는 것이 매력적이였다. 유부남과 바람난 것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단순히 기차에서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수진의 모습과 회사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것 등 자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음에도 상황 전달 정도로만 표현하고, 영민의 전부인의 대학동창이 크고 작은 사건을 암시하는 듯하지만 별일이 생기지 않는 것 등 영화를 최대한 담백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감독의 뜻이 느껴졌다.      


특히 집으로 찾아온 영민과 철수가 싸울 때 수진이 들고 있는 칼이라는 자극적인 요소에서 잘 드러났다. 계속해서 칼을 들고 있는 수진의 모습을 의도적으로 카메라에 담아 누군가를 깊게 찌를 수 있다는 여지를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긴장감을 주지만 영화는 수진이 쓰러지는 것으로 상황을 마무리한다. 정신에 문제가 있는 환자가 들고 있는 식칼이 단순히 팔을 베이는 것으로 의미회수가 끝나는 일은 영화에서는 흔치 않기에 더욱 매력으로 느껴졌다.      


충분히 자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음에도 자극적이지 않게 잘 풀어낸 부분들이 영화의 주제를 퇴색하지 않고 주인공들의 관계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 주어 영화가 슴슴하지만 감칠맛있는 평양냉면 같은 매력을 가지게 되었다 생각한다.     



내용을 전혀 모르고 제목만 알고 있었을 때는 결혼 이전의 전형적인 연애의 과정을 영화에 담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첫만남부터 결혼하기까지의 모습을 빠르게 보여준다. 수진이 철수에게 뭐 공부하냐 묻는 장면에서 회사 동료들이랑 정장을 만드는 장면으로 넘어갔다가 갑자기 시험보는 장면으로 넘어가는 등 어떻게 보면 영화에 필요한 장면들이 파편처럼 잘린 듯한 느낌을 준다.      


사람들은 꼭 잊고싶지 않은 기억들을 단기기억에서 이동시켜 장기기억에 저장한다. 이때 저장된 장기기억은 맥락없이 파편처럼 남아있기도 한다. 나는 이런 파편처럼 이어지는 장면들이 수진이 알츠하이머로 인해 기억을 잃는 와중에도 꼭 기억해야 하는, 지우개가 지우기 못하도록 소중히 숨겨둔 장기기억 속 기억들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수진의 머릿속을 영화를 통해 우리가 보는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에서 결혼식 장면이 나오지 않고 드레스 피팅 장면만 나오는 이유도, 결혼식의 기억보다도 드레스 피팅 때 수진을 보는 철수의 모습을 가장 기억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을까. 영화에 나온 모든 장면들이 조금은 끊어지더라도 수진이 정말로 기억하고 싶은 철수와의 추억이였을 것이다.       




‘이거 마시면 우리 사귀는거다’ 장면을 딱 그 대사만 알고 전후 사정은 몰랐었다. 그런데 실제로 보니까 안설랬다. 일하고 온 수염 기른 노가다 아저씨가, 물론 얼굴이 잘생겼지만 상황을 알고나니 하나도 설래지 않았다. 그런데 그 후의 손예진 배우님의 반응이 대박이었다. ‘안 마시면?’ 묻는 모습부터 키스하기까지 모든 모습이 너무 예뻤다. 손예진 배우님이 너무 예쁘고, 두 사람이 선남선녀라 명장면이 되었다 생각한다.     


그리고 야바위하는 장면이 영화에 여러번 나오는데 너무 오글거렸다. 물론 두 사람의 소중한 추억과 두 사람의 관계성을 의미하는 것은 맞지만 야바위를 하는 장면이 나올때마다 너무 오글거려서 온몸이 주체를 할 수 없었다.



철수가 수진이 알츠하이머라는 것을 들은 후 분노를 참지 못해 화를 내자 간호사가 들어와 “왜 그러세요. 제발 진정하세요. 우리 박사님도 사모님을 이 병으로 잃으셨어요.”라 말하는 장면이 있다. 나는 이 장면이 정말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간호사는 분명 진찰실 밖에 있어 대화를 못들었기에 철수가 화를 내는 이유를 몰랐을 것인데 어떻게 대화내용을 자세히 알았던 것일까..? 영화에서는 못미덥고 신뢰도가 떨어지는 괴짜에서 진심으로 병에 대해 연구하는 전문가의 이미지로 바꾸기 위해서는 필요한 연출이긴 했으나 너무 이질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게 표현되어 아쉬웠다.      


그렇지만 매 장면마다 수많은 신경과학 책더미와 뇌사진이 붙어 있는 모니터 사이에서 등장하던 박사님이 철수가 수진이 자신을 기억 못한다고 한탄하는 장면에서는 박사님의 주변에 아내 사진만 보이는 구도로 표현해 의사로써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알츠하이머로 아내를 잃은 남편으로써 조언해주는 장면의 연출은 인상 깊어 영화가 끝나고도 계속 생각이 났다. 왜 명작으로 꼽히는지 알 수 있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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