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셉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를 보고 나면 유달리 피곤하다. 재미없다기보단 2시간 내내 폭격처럼 쏟아지는 지적 자극을 머릿속에서 처리하다 보면 저절로 진이 빠진다. 2010년 개봉한 영화 <인셉션>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끝까지 혼돈만 주는 꿈과 현실은 물론이고, 자각몽과 호접몽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긴장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미로 같은 영화 속을 미친 듯이 달려가는 전개와 강한 시너지를 내며 묘한 기쁨도 함께 선사한다.
<인셉션>은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블록버스터임에도 불구하고, 음모를 꾸민 악의 실체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첫 장면부터 악당 포스로 등장했던 ‘사이토(와타나베 켄)’는 의뢰인이자 엄청난 조력자이고, 주인공 무리와 대적할 것이라 예상되던 상속자 ‘로버트(킬리언 머피)’도 의도한 대로 휘둘리는 표적일 뿐이다. 중요한 순간마다 나타나 일을 망치고 사라지는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아내 ‘맬(마리옹 꼬띠아르)’도 상상의 존재일 뿐이다. <인셉션>에서 가장 위협적인 것은 인물이 아니라 ‘무의식’이라는 구성개념이기 때문이다.
의뢰에 성공해 자식들에게 다시 돌아가는 것이 곧 맬을 진정으로 잃는다는 생각이 깊숙이 박혀있는 코브의 무의식은 꿈속에서 기이한 행보를 보인다. 맬의 모습으로 나타나 표적에게 모든 진실을 다 밝히기도 하고, 다음 단계의 꿈속으로 납치하기도 하며 의뢰를 망친다. 그 외에도 뜬금없이 기차로 치는 등 코브 본인에게도 공격적인 모습을 보인다. 어쩌면 1단계 꿈에서 침입자를 죽이려던 존재들도 로버트의 방어법이 아닌, 코브의 무의식이 반영된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예측 불가능한 무의식은 <인셉션>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끌어낸다.
아날로그 특수효과에 집착하는 놀란 감독의 고집은 <인셉션>에서도 꺾이지 않았다. 아리아드네(엘리엇 페이지)가 꿈의 세계를 인식해 생긴 폭발부터 아서(조셉 고든 레빗)의 회전하는 복도 액션까지, CG 없이 만들어졌다는 게 믿기지 않는 영화 속 장면들은 개봉한 지 수년이 지났음에도 감탄을 금치 못 하고, 여전히 세련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만 영화 속에 코브와 맬의 애정과 갈등의 감정을 제외하고는 그 외 인물의 정서에 대한 묘사는 영화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완벽에 가까운 스토리 구성에 정서적인 연결로 채울 수 있는 세부적인 부분들이 비어 있는 것은 아쉬울 따름이다. 그럼에도 몇 년이 지나더라도 <인셉션>은 놀란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로 남을 것임은 확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