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정한다(Denial)(2017) 후기
(*스포있음*)
영화의 줄거리는 미국의 역사학자 데보라에게 나치는 실존하지 않는다 주장하는 어빙이 명예훼손 소송을 걸어서 영국에서 소송을 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단순히 말하면 개인과 개인의 소송의 이야기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가 만들어진 만큼 엄청난 화제가 되었고 중요했던 사건이었다.
우선 수업 준비 때문에 영화를 보게 된 것이라 아무 정보 없이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배우진들이 익숙해서 당황스러웠다. 가장 당황스럽고 친숙했던 배우분은 BBC 셜록 시리즈에서 모리아티 역을 맡으신 앤드류 스콧 배우님이 변호사 앤서니로 나왔다. 더군다나 마이크로프트역의 마크 게티스 배우님도 나와서 놀람 반 반가움 반이었다.
또한 브리티쉬 로즈라 불리는 레이첼 와이즈 배우분과 해리 포터의 피터 패티 그루 역을 맞으셨던 티모시 스폴 배우분도 나오셔서 연기력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 속에 내용이 정말 열불 터졌다. 어빙이라는 사람이 역사 수정주의를 하며 홀로코스트의 증거를 보이라는데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사람들, 특히 어빙의 행동들이 너무 화가 났다.
우선 영화 첫 부분에 주인공이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이라면서 4가지를 소개한다.
1. 나치는 조직적으로 유럽 유대인을 죽이려 한적 없다.
2. 희생자는 5, 6백만 명보다 작다.
3. 가스실을 존재하지 않았다.
4. 유대인이 지어낸 괴담으로 이스라엘 국고를 늘리려고 하는 것이다.
물론 역사학자들끼리도 같은 역사적 기록이 있더라도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을 때가 있다고 해도 명백히 근거도 있고 피해자들도 있는데 그런 말로 계속 우기는 것이 정말 화가 났다.
또한 어빙은 주인공을 영국에서 고소를 했는데 그 이유는 미국은 명예훼손이라는 사실을 명예훼손을 당한 사람이 증명해야 하고 영국에서는 명예훼손이 아니라는 사실을 고소를 당한 사람이 증명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사람을 선동하며 먹고사는 사람이기에 화제성을 일으키려고 고소를 하는데 주인공이 불리하게 하는 것부터 정말 야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주인공이 어빙이 굳이 자신인 이유가 주인공이 여자이고 유대인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장면이 있는데 정말 주인공이 강연하는 곳에 찾아가서 소리 지르고 악의적으로 글을 쓰고 거기에 모자라 자기가 먼저 고소를 하는 것을 보아 정말 그 이유가 맞는 것 같았다. 정말 추잡했다. 정말 사람 자체에 대한 정이 떨어졌다.
그렇지만 변호인들이 일기를 가져가기 위해 집에 찾아갔을 때 본인의 가정에서는 다정한 아빠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 참 모순적으로 느껴졌다.
영화로 역사를 보는 수업이라 교수님께서는 역사 영화가 아니라 후반부로 갈수록 법정영화로 가게 되어서 아쉽다고 하셨는데 나는 소송의 내용이 주가 되면서 흔히 있는 영화들과 색다른 영화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실화에서도 이 소송의 의미는 막중했던 것 같다. 표면적으로는 개인과 개인의 소송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주인공이 패배하면 혼자만의 패배가 아니라 모든 이들의 영원한 패배가 되었다. 주인공이 소송을 포기하고 합의를 하거나 패배하게 되었다면 홀로코스트를 부인한다는 의견이 공식적으로 인정이 되는 것이고 이후로는 역사 수정주의가 더욱 판을 치게 되면서 정치 프로파간다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막중한 소송인 걸 알게 되니 재판의 결과를 알지만 주인공의 마음에 빙의해서 초조해하고 화도 내고했던 것 같다.
또한 영화의 제목인 나는 부정한다(Denial)의 의미가 영화 속에서 다중적으로 드러나는데 주어가 어빙이 되면 본인은 홀로코스트를 부정한다.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고 주어가 주인공이 된다면 주인공이 어빙의 내용을 부정한다는 의미가 된다. 나는 처음에는 주인공이 어빙을 부정한다는 의미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영화 속에서는 이 두 의미 말고도 주인공이 자기 자신을 부인해야 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어빙은 이 소송이 논란이 될 것을 알고 자신의 명성을 위해서 주인공이라는 먹잇감을 사용한 것이기에 어빙 스스로 자멸하기 위해 주인공이 본인을 부정하면서 아무것도 안 해야지 이긴다는 모순적인 상황이 생겨나게 된다. 나도 처음에는 주인공처럼 이해가 잘되지 않았지만 변호사님이 사실들로 질식하게 만들어서 본인이 본인의 늪에 빠지게 두는 것이라 말해주고 나서 신뢰도가 급상승하게 되어서 편안하게 영화를 봤던 것 같다.
변론인분이 변론할 때 상대할 가치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어빙의 눈을 마주치지 않고 재판을 하는데 마지막에도 어빙이 악수를 걸어오자 쳐다보지도 않고 무시하는 모습이 너무 속 시원하게 느껴졌다.
영화에서 현재의 아우슈비츠의 모습을 담아내는데 ‘안네의 일기’,‘쥐’에서 당대의 상황만을 알고 있다가 현재의 폐허가 된 아우슈비츠의 모습을 보니 색다르게 느껴졌다. 그리고 주인공을 유대인으로 설정을 함으로써 주인공이 감정을 참지 못해 눈물을 흘리고 울컥하는 모습이 드러나면서 더욱 감정이 고조되는 느낌을 잘 느꼈던 것 같다.
영화에서 단순히 정의감에 차있는 굴하지 않는 히로인과 악으로만 가득 찬 악당과 같은 단순한 인물들이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어서 좋았다.
진실을 왜곡하며 많은 역사가들한테 비판을 받지만 본인을 지지하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단순한 악인 모습이 아니라 사람들을 이끄는 능력도 있는 더군다나 딸에게는 엄청 자상한 아버지인 어빙의 모습과
본인의 소송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자신의 이름의 뜻인 백성의 수호자, 전사라는 말을 되새기며 정의감을 가지고 악당과 싸우지만 마냥 정의감에 사로잡혀 있는 게 아닌 감정에 쉽게 휩쓸려서 큰소리를 내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과 말다툼을 하기도 하는 주인공의 모습
흔히들 생각하는 법조인들의 모습인 이성적이고 감정에 동요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변호인단들의 모습도 있지만 감정적으로 큰소리를 내기도 하고 재판 결과가 나오기 전에 긴장해서 담배도 피우는 변호인들의 모습
본인이 당사자이기에 죽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증인을 하겠다고 나서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생존자들의 모습
현실적으로 그런 퇴물 상대하지 말고 합의하고 끝내라 하고 정작 이 소송에 적은 액수의 후원도 하지 않는 유대인들을 대표하는 격인 영국 유대인 지도층의 모습
세상에는 다른 일도 많다면서 “언젠가는 잊고 지나가야지 이건 집착이야, 벌써 얼마나 지났어? 평생 슬퍼하며 살 거래?”라며 관심을 갖지 않으면서 본인 일이 아니라고 함부로 말을 하는 주변인들의 모습
그리고 단순히 상황에 따라서 선동당하는 언론들의 모습까지
여러 인물들이 나오면서 영화의 내용이 더욱 풍성해지고 정말 현실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무조건 악당 편, 주인공 편으로 나뉘는 게 아니라 현실에도 존재하는 주인공을 지지해 주는 것은 맞지만 현실과 타협하라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고 본인들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모습까지 현실에서도 정말 많이 보이는 사람들이라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악의를 가진 사람은 맞서기도 하고 대비도 하지만 자신과 관련 없는 일이라며 아무렇지 않게 말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띵한 느낌이 들면서 허망감이 들게 되는 것 같아서 더 무서운 것 같다. 더군다나 우리 주변에도 역사 수정주의가 만연하는데 나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말을 하는 사람이 될까 봐 무섭다.
주인공이 직접 나서는 부분이 없어서 아쉽다. 나름 주인공도 어빙이 직접 강연에 찾아올 정도로 유명하고 저명한 역사학자인데 영화에서는 변호사들에게 도움만 받고 감정적으로만 비쳐서 아쉽다. 물론 영화 속에서 교수님의 책이 도움이 되었다고 언급을 하기는 하지만 책에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 나오지 않아서 단순히 도움을 받는 수동적인 존재로 남아서 아쉬웠다.
소송을 하는 과정에서 어빙의 역사 수정주의가 잘못되었다가 중점이 아니라 어빙이 고의로 틀린 내용을 주장해서 주인공이 어빙에 대한 사실을 말한 것이기에 명예훼손이 아니라는 결론으로 가서 아쉬웠다.
영화 속에서 나치에 관한 내용들과 직접 아우슈비츠까지 가서 조사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정작 소송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었던 부분은 나치에서 벗어난 어빙이 인종차별주의자라는 것을 밝히는 거여서 아쉬웠다. 물론 고의성을 밝히는 게 키포인트긴 하지만 계속 나치에 대해서 다루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수용소의 생존자분들이 자신들이 증언하겠다고 할 때 단순히 손을 잡아서 위로해 주는 것이 아니라 수용소에서 찍힌 번호를 가리는 게 인상 깊었다. 또한 소송에서 이기기 위해서 증인을 안 쓰는 게 좋아서 생존자분들의 증인석에 세워달라는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지만 소송에서 이기고 난 후 기자회견에서 언급하면서 여러분은 기억되었으며 아픔의 목소리가 전해졌다고 생존자들의 요청을 이렇게라도 들어주어서 좋았다. 모두가 행복해서 좋았다.
단순히 팀이 항상 으쌰 으쌰 하면서 환상의 팀워크를 가진 게 아니라 서로 같은 목적을 가졌지만 서로 삐걱거리기도 하고 소리 지르면서 화를 내기도 하고 사과도 하고 단순히 영화에서 연출적으로 팀워크가 돈독해진다를 나타내기 위해 보여주기 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나면서 스토리에 잘 스며들어서 좋았던 것 같다.
영화에서 뜬금 없는 부분이지만 변호사들과 주인공이 만났을 때 변호사들의 검은 옷과 주인공의 흰옷, 빨강 머리(?)가 대조적으로 드러나는게 눈에 확 띄었다.
어빙이 전략을 써서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었을 때 다들 화나있는 상황에서 그저 물어본 거긴 하지만 차 마실 건지 물어보는 모습이 정말 영국스러움이 잘 드러났다.
영화에서 8주 넘게 소송을 진행하게 되었는데 주인공은 대학교 교수이기도 하고 수업도 할 것인데 학생들의 수업은 어떻게 되었는지 대학생의 시점에서 소름이 끼쳤다. 강의가 폭파되어도 문제고 맨날 맨날 영국 가시느라 대체 과제를 내시는 것도 문제고 보강을 하더라도 보강 시간 맞추는 것도 소름 끼친다.
영화에서 변론인분이 “세상에는 겁쟁이로 가득해요. 나약한 마음에 따랐을 테니까 나도 동요하지 않았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어요."라는 말을 한다. 그리고 주인공이 수업에서 사람들이 허세를 떨며 “그때 독일에 있었다면 난 협조 안 했어 저항했을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들에 대해 말하며 ‘그게 얼마나 위험하고 어려웠을지 아냐면서 적 앞에 서는 건 고되고 불확실하고 지치는 일이다. 그런데도 했어야 했다. 다 지나고 나서야 영웅적이었다는 소리를 듣는다. 당시에는 그저 두렵다. 어떻게 될지 마냥 두렵다.’라는 말을 한다. 내가 만일 그 시대에 살았으면 청렴하게 살았을까? 나는 그렇다고 확실하게 답을 하지 못하겠다. 정말 두려울 것 같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자신의 신념 하나만을 가지고 버틴다는 것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로 멍청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는 말을 한다. 그렇지만 나는 처음에는 어빙을 보면서 똑똑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더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어빙은 30년 동안 자신의 주장에 대한 연구를 했다. 대중을 매료시키는 말솜씨도 가지고 있어서 쉽게 사람들이 동요하게 된다.
그러다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똑똑한 사람이 잘못된 신념을 가질 수 있는가? 애초에 잘못된 신념을 가지는 것은 멍청하다고 보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되면 어빙은 멍청한 것인가? 히틀러도 멍청한 것인가? 둘 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것을 행한 것뿐인데 사회적 통념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멍청하다고 해야 하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찾지 못했다. 내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주제인 것 같다.
재판장 앞에서 기자들 사이에서 사람들이 ‘더러운 유대년, 유대 쓰레기’ 같은 말을 주인공에게 한다. 처음에 정말 혐오하면서 보았는데 ‘창피한 줄 알아 나치 앞잡이야’라며 계란을 어빙에게 던지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이걸 보면서 마음이 편안했다. 똑같은 행동이지만 사람의 생각이란 게 본인의 선호 여부에 다라서 달라 보인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졌다.
이 영화는 나치, 홀로코스트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정작 우리나라만 해도 위안부, 일제강점기 등 역사 수정주의가 만연하게 일어나고 있다. 영화에서는 전 세계 신문에 다 나면서 이슈가 되지만 우리나라의 실상은 자국민한테도 관심을 못 받고 있다. 모두의 작은 관심이 모여서 큰 힘이 되는데 그게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우리나라도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로써 주인공처럼 나서서 강연도 하고 싸우지는 못하더라도 영화에서 나온 사람처럼 본인의 일이 아니라고 아무 말이나 하는 사람이라도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