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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요

영화 <어쩌면 해피엔딩> 리뷰

by 맹글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동명의 뮤지컬을 원작으로, 머지않은 미래에 제임스와 반딧불이를 만나기 위해 제주도로 향하는 헬퍼봇 5 ‘올리버(신주협 배우)’와 헬퍼봇 6 ‘클래어(강혜인 배우)’의 여정을 담은 영화이다. 러닝타임 내내 서정적인 톤을 이어가는 영화는 상실의 슬픔과 사랑의 기쁨을 넘나들며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는 화분과 반딧불이, 그리고 사람에게 향하는 어린 시절의 애착에 가까운 순수한 사랑부터, 프로그래밍을 넘어 서로를 이해하려는 성인의 사랑, 마모되어 가는 부품들로 표현된 노년의 이별까지 다양한 사랑의 형태를 섬세하게 담아낸다. 로봇이라는 설정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랑은 관객에게 사랑의 본질을 다시금 되묻게 한다.


common?quality=75&direct=true&src=https%3A%2F%2Fmovie-phinf.pstatic.net%2F20250904_118%2F1756952218510iKNxw_JPEG%2Fmovie_image.jpg 영화 <어쩌면 해피엔딩>

뮤지컬에 참여했던 신주협 배우(재연)와 강혜인 배우(재연, 삼연)를 캐스팅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영화는 원작의 감동을 충실히 재현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동시에 영화는 뮤지컬과 달리 카메라를 통해 관객과 더욱 가까이 소통하기에, 무선 이어폰을 낀 듯한 귀 모양이나 헬퍼봇 5의 실리콘 손과 같은 세밀한 디테일을 더하고, 관객의 상상과 간단한 소품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장면들을 시각적으로 풍부하게 구현해 영화라는 매체의 장점을 최대한 끌어낸다. 특히 영화 속에 등장하는 서울과 제주도의 풍경은 헬퍼봇이 실제로 존재하는 듯한 현실감을 불러일으키며, 생산이 중단된 공장의 모습과 풍경 속에 흘러나오는 뉴스 헤드라인들을 통해 영화는 단순히 무대를 벗어난 것을 넘어서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여전히 유효할 사회적 문제들로 시야를 확장한다.


그러나 뮤지컬 속에서 두 헬퍼봇이 보여주는 '애착'과 '어린아이 같은 모습'들은 영화 속에 거의 보이지 않는다. 주인이 주는 물을 기다리며 여전히 제자리에 있는 화분과 자신을 봐주길 바라며 끊임없이 빛을 내는 반딧불이, 각자를 똑 닮은 대상에 대한 두 헬퍼봇의 어리숙한 애착은 단순한 설정을 넘어 두 사람의 상징이자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뮤지컬의 동력이었다. 이러한 정서가 잘 드러났던 ‘Driving’과 ‘Goodbye, My Room’ 같은 넘버들과 표현들이 생략되면서, 영화는 <어쩌면 해피엔딩>만의 고유한 색을 잃은 밋밋한 단순 로맨스에 가까워 보인다. 또한 은퇴한 헬퍼봇 아파트에 거주한다는 뮤지컬의 설정이, 영화에선 주인이 살던 집에 남겨졌다는 설정으로 표현되어 고증에서도 약간의 아쉬움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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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도 사랑을 할 수 있을까. 혐오와 고립이 일상처럼 퍼져 있는 오늘날, <어쩌면 해피엔딩>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다가가고 사랑을 시작하는 헬퍼봇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투영한다. 그 끝에 존재하는 ‘어쩌면요.’라는 대답은, 기약 없는 운명 속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하는 가장 진실된 위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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