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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민주 Jul 23. 2023

내가 왕이 될 상인가..?

영화 ‘관상(The Face Reader)(2013)’ 후기

(*스포있음*)

역시 엄청나게 흥행을 했었던 만큼 정말 대박인 영화였다. 관상이 나온 13년도에 최신 영화라면서 본 기억이 있는데 내 기억 속의 영화 내용과 많이 달라서 보면서 많이 당황스러웠다. 물론 나온 지 10년이 넘은 영화기에 기억이 왜곡되었을 수도 있지만 그때는 안 보였던 영화 속 사실들이 이제는 잘 보인다는 게 맞는 말인 것 같다.

영화 '관상' 포스터



영화의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우선 수양대군의 등장 신은 역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최근 내용이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는 상황에서 인터넷짤로 돌아다니는 것을 보았을 때도 정말 역사에 남을 장면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영화의 맥락을 파악하고 그 장면을 보니 영화 속에서 수양대군이라는 사람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인데다가 수양대군이 내경을 속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장면이라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을 하여 화남이라는 감정과 동시에 수양대군에 대한 혐오감, 경외감, 두려움 등 정말 많은 감정이 들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새벽 12시 넘어서 기숙사에서 보고 있었는데 육성으로 소리 지를 뻔했다.


그 후 내경이 어떻게 본인을 알고 방비를 했는지 고민을 하는 와중에 전에 본인을 납치한 한명회를 만나게 되어 누군지 알기 위해 따라가다가 또 납치를 당하게 된다. 한명회를 따라가는 장면에서 저잣거리에 어울리지만 묘한 기시감이 있는 탈을 쓴 무리들이 나오고 자욱한 안개가 나오면서 내경이 저잣거리에서 도깨비들이 나오는 다른 세계로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납치를 당하고 난 후에 목소리는 사방에서 울리고 화면도 비정상적으로 흔들리고 내경의 당혹스러운 눈과 함께 빠르게 화면이 내경의 시점에서 휙휙 바뀌는 장면이 전의 장면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모습이 정말 흠잡을 곳이 없었고 내 취향이었다.

안개를 해치며 한명회를 따라가는 내경
얼굴을 들키지 않기 위해 가면을 쓰고 내경을 협박하는 한명회


수양대군이 호랑이라 불리는 김종서 대감에게 본인이 잡은 호랑이를 매달아 선물하며 도발을 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때 단순히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호랑이처럼 짐승의 소리처럼 분노하는 모습이 처음에는 많이 당황스러웠지만 사람을 죽여서라도 목적을 다하는 이리의 야비함과 분노에 찬 호랑이 김종서 대감의 모습이 영화의 전반적인 모습을 축약해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지만 집 앞 나무에 죽은 호랑이가 걸려있고 김종서 대감이 분노하고 있다.


한명회가 김종서 대감의 소행으로 꾸며 진형의 눈을 멀게 하자, 김종서의 짓이라 생각한 팽현은 수양대군에게 김종서가 수양을 죽이려 한다는 것을 밀고한다. 이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에 팽현은 검은 옷을 입고 엎드려 수양대군에게 빌고 있고 수양대군은 하얀 옷을 입고 서 있는 모습이 번개가 치면서 팽현의 형상, 윤곽이 드러나 둘의 대비가 확연하게 드러나면서 정말 구도가 완벽한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너무 몰입해서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맞춰서 심장이 쿵쿵 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상황, 연기, 구도 모든 게 다 완벽했다.


상황을 알게 된 수양대군이 김종서 대감을 죽이기 위해 찾아간다. 이때 김종서 대감이 수양대군과 대치를 하면서 한마디씩 대화를 나누면서 계단을 한 칸 식 내려오고 다가가면서 서로 가까워진다. 단순히 줌인으로는 느낄 수 없는 둘의 사이가 물리적으로 가까워진다는 사실이 고조됨과 긴장감 그리고 심장을 점점 쪼여오게 만들었다.

너무 몰입해서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맞춰서 심장이 쿵쿵 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내경과 팽현이 한양에서 위기를 느끼고 난 후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려던 중 어떤 사람이 둘을 잡는다. 그렇지만 둘은 이를 거절하고 가려는데 부르는 상대가 김종서 대감이라는 말을 듣고 다시 돌아오는 장면이 있다. 자주 나타나는 양상은 김종서 대감이라는 말을 듣고 주인공들의 얼굴을 풀샷을 잡으면서 동요하는 표정을 담아내면서 돌아오는 것과 같은 형식이 많이 보이는데 이 영화에서는 포커스가 둘을 잡았던 사람으로 잡히고 몇 초 있다가 그 포커스 그대로 둘이 배경처럼 흐릿하게 팔랑팔랑 뛰어와서 참신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복이라 그런지 품이 커서 몸짓이 더 오버스러워서 익살스러운 음악과 함께 더욱더 두 사람이 하찮고 귀여워 보였다.

둘이 호다다닥 달려오는데 초점도 안 잡혀서 흐릿하다.


그리고 말을 타고 가는 장면에서 다른 사람들은 1인 1말인데 내경만 뒤에 타고 있는 모습이 너무 뽀짝 했다. 물론 송강호 배우분이 말을 못 탈수도 있겠지만, 그냥 내경도 말 하나 주는 게 아까웠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킬링 파트였다.

상황과 표정은 다 진중한데 혼자만 앞사람을 꼭 잡고 같이 말 타고 있는 부분이 너무 귀여웠다.





‘천문’에서 세종의 신하로 나왔던 배우분이 관상에도 또 나온다. 이번에는 세종의 아들인 문종으로 나오고 심지어 잘 어울렸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영화를 본지 1주일도 안 지난 시점인데다가 ‘천문’에서도 나름 비중이 있었던 역이라 당황스럽고 황당했다.

세종의 신하=문종=아들??, 그만큼 연기를 잘하신다는 거지....


어릴 때는 몰랐었는데 ‘미스터 선샤인’에 이완익 역으로 나오신 김의성 배우님이 한명회 역으로 영화에 등장하셨다. 나는 ‘미스터 선샤인’으로 김의성 배우님을 처음 보게 되었다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오래전부터 영화에 있으셔서 당황스럽긴 했다. 심지어 영화에서 꽤나 비중이 크셨는데 내가 몰랐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잊을 수 없는 캐릭터인데 왜 몰랐을까....?


어렸을 때 본 관상에서 기억나는 장면은 수양대군이 갑자기 돌변하면서 관상 보는 여자분을 죽여서 저 사람이 나쁘다고 생각했던 것과 다 같이 뭉쳐서 점을 만들러 가고 이를 통해 어린 왕이 깨닫는 장면인데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악당인 수양대군에 맞서서 주인공들이 한 팀이 되어서 해결한다는 엔딩이라 생각했다.

어벤저스처럼 다들 힘을 모아서 악당을 이기고, 권선징악 엔딩이라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애초에 한 팀은 없었고, 모두 각자의 이익을 위해서 처절하게 싸우는 것뿐이었다는 사실이 어릴 때의 기억과 달라서 괴리감이 들었던 것 같다. 더군다나 영화가 생각보다 어린애가 보기에는 정서에도 안 좋고 충격이 클 것 같아서 차라리 저렇게 기억하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님 너무 충격적이라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에서 본 짤들로 웃긴 영화라 머리속에서 미화가 되었던 것도 이유가 있는 것 같다.




한명회의 정체가 밝혀지고 대신들을 죽이는 장면에서는 성인이 되었음에도 밤에 악몽을 꿀 정도로 충격이 큰데 11살의 내가 보았다는 게 맞는 선택이었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고 이틀 뒤에 진짜 저 장면이 꿈에 나와서 식겁했다.



영화 스토리라인 너무 탄탄하고 배우분들 연기 너무 좋았고 연출도 너무 좋았다. 수양대군이 그냥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만 했었었는데 더 나쁜 사람이라서 놀랐다. 단순히 나쁘고 흉악한 사람이 아니라 머리도 비상해서 더 무섭게 느껴지는 것 같다.

그치... 세조가 폭군이긴 하지만 머리도 좋고 일을 못하진 않았지..


수양대군이 왕권을 잡았을 때 본인의 편에 설 사람과 아닐 사람으로 나누는데 이때 눈을 다친 진형은 어느 쪽인지 몰라서 반대하는 쪽에 서게 된다. 아니 눈을 다쳤으면 옆 사람한테 어디가 어디쪽인지 물어보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속이 터질 것 같았다. 물론 진형 성격에는 눈이 보였든 안 보였든 반대하는 쪽에 서게 될 것 같지만 눈이 안 보여서 방향을 몰랐다는 것이 진형이 너무 어리석은 걸로 표현이 되어서 아쉽다. 그리고 진형이 수양대군을 반대하는 쪽으로 가는 와중에 대신들이 죽임당하자 내경이 입 막힘 당하면서 안돼라며 소리치는 장면을 사이에 넣는 걸 보고 미쳤다고 생각했다.

아니 눈 다쳤으니까 관상도 바뀌게 되어서 진형이 살려줬으면 뭐가 덧나나 진짜


김종서 대감이 수양대군과 대치하다가 결국 철퇴에 맞아 죽게 되는데 이 장면에서 정몽주가 철퇴에 맞아 죽은 것이 생각이 났다. 둘 다 옛 왕을 고수하다가 반대 세력에 죽게 되고 철퇴에 맞아 죽어서 그랬던 것 같다. 생각보다 피가 피슉하고 많이 뿜어져 나와 잔인해서 놀랐고, 이미 죽을 건데 내버려 두지 굳이 철퇴로 치는 게 너무하다 생각했다.

이미 칼로 배에 두 방 맞고 비틀거리는 사람을 굳이 굳이 철퇴로 때려죽이는 세조 인성, 영화에서 피가 수도꼭지 튼 것처럼 뿜어져 나온다.


자꾸 영화에서 수양대군이 여러 번 자신이 왕이 될 상이냐고 묻는데 왕이 될 상은 맞지, 다만 역모로 왕이 될 거라서 말하면 문제가 되는 거지, 아니 왕이 될 상이 아니라 해도 역모할 건데 왜 자꾸 물어보는지 모르겠다. 자꾸 주인공에게 이런 질문을 하고 왕권을 잡은 후에 주인공에게 물어보고 난 다음에 비위 맞춰서 살려고 아등바등하려는 것을 다 보고 결국에는 본인의 눈까지 버리면서 지키려고 했던 아들을 자기가 죽여놓고 ‘아들이 저렇게 절명할 걸 알고 있었는가? 난 몰랐네만’이라 말하는 것이 그저 주인공을 본인의 비위를 맞추는 장난감으로 보는 것 같아서 수양대군의 캐릭터 설명이 확실했다.

의문을 가지며 떠나는 수양대군 뒤로 내경이 죽은 진형을 안으며 울부짖고 있다.


성인이 되고 난 후 처음 다시 보았을 때는 한명회가 목소리만 나왔을 때는 동일 인물인지도 모르겠고, 누구인지 감도 안 잡혔는데 얼굴을 알고 난 후 다시 보니까 목소리가 들리고 구분이 되어서 너무 신기했다. 그리고 다시 볼 때도 몰랐는데 주인공이 한명회를 찾으려고 세조의 집에 들이닥쳤을 때 목소리로 사람을 구별하기에 말을 해보라 하지만 한명회를 못 찾고 웃음거리만 된다. 이때 한명회가 일부러 한마디도 안 하고 웃고 있는 게 화면에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소름이 끼쳤고 이걸 숨겨 놓은 제작진분들에게 경외감이 들었다.

저기서 한명회는 혼란스러워하는 내경이 얼마나 우스워 보였을까


내경은 한명회의 관상을 보고 목이 잘릴 팔자라고 말을 한다. 한명회는 죽기 전까지도 목이 잘릴까 걱정하지만 목이 잘리지 않고 죽는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시길 한명회는 연산군 때 부관참시를 당하게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내경은 부관참시를 당할 것도 알고 있었지만 남은 인생을 벌벌 떨며 살라면서 그냥 목이 잘린 팔자라고만 말을 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관상에 대한 회의적인 말을 해서 사실은 관상대로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를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다음으로는 한명회가 열심히 살면서 관상을 바꾸게 되어 목이 잘리지 않았을 거라 생각해서 열심히 살면 관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생각했는데 결론이 결국 관상대로 흘러가서 허무함과 동시에 단순히 '한명회라는 사람이 갑자기 변해서 높은 자리까지 올랐다'는 기록으로 이런 이야기를 생각해낼 수 있다는 것에 감탄이 나왔다.

한명회는 저 자리에서 숨을 거두게 되는데 뒤의 지팡이가 한명회의 목을 관통하는 것처럼 보인다.


진형이를 위해서 돈을 벌러 한양에 내려오고, 관상도 보고, 약도 사 오고, 배신도 하고, 빌어도 보고, 눈도 포기했는데 결국 진형의 눈은 실명했고 심지어 지키지 못하고 죽고 다시 한양을 떠나 바닷가에서 살게 되는 영화 속 운명이 운명이 참 슬펐다. 처음에 진형이 떠나서 내경과 팽현이 손을 흔드는 장면이 나오는데 영화 마지막에 바닷가에서 손을 흔드는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더욱 슬펐다.

영화 초반 진형이 과거시험을 위해 떠나자 손을 흔드는 장면
영화 끝부분 자신을 찾아온 연홍에게 손을 흔드는 장면


팽현이 수양대군에게 밀고를 한 것을 내경이 알았을 때 박진감 넘치게 액션신처럼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찮게 고정된 프레임 안에서 투닥투닥 싸우는 게 더욱 현실감 있고 진정성 있게 느껴졌다. 관상이라는 영화 자체가 웃음거리는 있지만 영화 자체가 우습지 않는 많은 생각이 들고 깊은 여운이 들게 하는 영화라는 것이 잘 스며들어있는 장면인 것 같아 개인적으로 기억에 많이 남는 장면이다.

그렇지만 나였어도 진형을 위해서 뭐든지 했을 것 같아서  진형과 내경의 마음이 모두 이해가 되어서 웃음이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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