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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해Jung Nov 24. 2021

손님을 기다리지 않는 가구점 #1

1.끝


 회사를 떠나겠다는 얘기에 적잖이 놀라거나 조금 놀라거나 정도의 차이만 있었을 뿐 모두들 놀란 표정을 지으며 '왜'냐는 질문을 했다. 아 그래요, 언제까지 나와요?라는 질문보다 '왜' 라는 질문은 회사의 창립 멤버이고, 주주이며, 8년 동안 회사가 성장하는데 일정부분 기여했다는 나에 대한 일종의 존중이었다고 생각한 건 모든 일들이 정리되고 난 이후였다.


누군가의 왜에 나는 측은해졌고, 누군가의 왜에 나는 가엾어졌다. 어떤 왜는 아무것도 묻고 있지 않았다. 분명히 왜냐고 묻고 있지만 그 왜는 아무것도 묻고 있지 않고 있어서 답을 할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어서 난감했다. 아니, 왜요? 이 질문은 마치 주식이 오르지 않는 이유, 행복하지 않은 이유, 경제가 좋아지지 않는 이유, 축구 경기에서 패배한 이유, 그 사람과 헤어진 이유 따위의 다소 복잡한 과정을 거쳐 결정되는 단순한 사실을 단지 '왜'냐고 묻는 것과 같았다. 대체로 사람들은 본인이 관심이 많지 않은 복잡한 문제를 '왜'라고 질문하곤 하는데, 그 무심한 '왜'를 상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퇴사하는 이유에 대해서 '그냥'이라는 초간단 답변부터 계획, 아이템, 비전, 재무상태를 총망라한 3시간짜리 답변까지 다양한 버전을 준비해야 했다. 그리고는 질문하는 사람의 궁금한 정도를 짐작하여 맞춤형 답변을 했다. 조금 궁금한 사람한테 길게 얘기하면 지루해했고, 많이 궁금한 사람한테 짧게 얘기하면 섭섭해했다.


 퇴사하겠다는 얘기를 해야 할 사람은 생각보다 많았다. 단순히 의사 전달을 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퇴사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설득도 병행해야 했다. 의사전달도 쉽지 않았지만 설득은 더욱 힘들었다. 나는 사람들과의 반복된 얘기에 피곤해했고, 밤에는 깊이 잠들지 못했다. 삶의 변화를 주는 것이 쉬울 리 없겠지만 시작은  그렇게나 버거웠다.




 만남이 로맨스였다면 헤어짐은 다큐였다. 만남은 호기로운 의기투합만으로 시작되지만 헤어짐은 비상장 주식 평가라는 다소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각자 가지고 있는 계산기로 계산한다. 셈법은 각자 마음속에 있는 것이어서 그 답이 같을 수 없으며, 얼마큼 다른 지도 알 수 없었다. 그 다름을 표준 통화(KRW)로 환산했을 때 차액은 많거나 적거나 관계없이 그 괴리를 줄이는 협상은 그 자체가 피곤했다.


 정산을 위한 기간 동안 나는 술을 자주 마셨고 쉽게 취했다. 술은 커다란 문제는 사소하게 만들어서 마음이 홀가분 해졌으나 사소한 일들이 크게 느껴져서 이따금씩 시시콜콜해졌다. 예상대로 술을 마신다고 달라질 것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고, 예상대로 술은 다음 날 숙취만 남겼다.


 업무는 인수인계되었다. 그리고 셈이 끝났다. 셈이 끝났다는 것은 모든 것이 정리된 것을 의미했다. 셈이 끝나자 그간 오갔던 대화 설득 의지 의견은 허공에 흩어지는 말일뿐이었고, 섭섭합도 미안함도 미묘한 나의 모든 감정마저도 셈이 끝나자 사용하던 책상 정리하는 것처럼 사사로운 것이 되었다.


 모든 일은 나의 의지에서 비롯되었다. 내 의사가 전달된 이후에 모든 것이 빨라졌다. 속도라는 것이 어디까지나 주관적 인지에 대한 문제인데 정작 모든 걸 주도한 나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나는 워터파크 워터슬라이드에 올라선 초보자 같았다. 내가 원해서 뛰어든 미끄럼틀이지만 체감속도는 훨씬 빨랐다. 어지러웠다. 어, 이거 좀 빠른데?라는 생각을 했을 때 이미 나는 미끄럼틀을 빠져나왔고, 나는 혼자였다.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을 뿐인데 나는 어떠한 영리 기관에도 소속되지 않은 무직자가 되어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그 길로 세무서로 향했다. 세무서에서 나는 내가 속할 사업자를 신고했고, 스스로를 취업시켰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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