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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해Jung Nov 24. 2021

손님을 기다리지 않는 가구점#2

2.시작

혼자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나는 이제 팔랑귀가 되어선 안되고, 선배들의 조언을 무시해서도 안된다. 다양한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흔들림 없는 심지도 있어야 한다. 서둘러서도 안되고, 머뭇거려도 안된다. 자비롭되 치밀해야 하고, 과감하되 신중해야 한다.


 주변 사람 모두 내가 해야 하는 일에 대해 최선의 조언을 해주었다. 그 말들은 모두가 진심이었고 그 진심에 감해했다. 하나 진심과 실행은 별개였다. 조언 중에서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과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추렸고, 다시 내가 실행할 수 있는 부분과 실행할 수 없는 부분을 추렸다. 어차피 세상살이란 게 기존의 내 생각에 다른 생각을 섞어 다시 내 생각으로 만드는 일련의 화학작용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최대한 마음을 가벼이 했다.


통장 잔고를 확인했다. 통장잔고는 내가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함 이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신뢰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함이었다. 통장의 잔고는 숫자였다. 숫자는 많거나 적거나의 의미를 포함하지 않았다. 나는 숫자를 견해가 아닌 사실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돈은 많지도 적지도 않았다. 나는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을 철저히 무시하는 편리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특히 통장 잔고를 바라보는 나의 태도가 그러했다.


'여기에 사인하면 되나요?' 이것은 또 문슨 서류인가. 자동차 구매 계약서, 임대차 계약서, 보험 가입서, 프린터 렌탈, 통장 개설, 신용 카드발급, 인터넷 가입 '네, 일단 줘 보세요' 닥치는 대로 신청하고, 가입하고 계약했다. 서명은 거침없었고, 도장은 망설임이 없었다. 그렇게 많은 서명을 했는데도 뒷면의 서명을 여전히 빼먹곤 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팔아야 했고, 팔기 위해서는 먼저 사야 했다. '살까 말까 하는 것은 사지 않고, 사야 할 것은 비싼 걸 산다'라는 비교적 단순한 기준을 세우고 물건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방문해서 사고, 온라인으로도 샀다. 돈을 쓰는 나에게 대체로 사람들은 친절했고 왜냐고 묻지도 았았다. 가입하고 주문하고 송금하고 물건을 받았다. 다음 날도 주문하고 장바구니에 넣고 결제하고 택배 포장을 벗겼다. 잡다한 것들을 사들이는 일은 끝이 없었다.


 처음에 계획한 바는 이루어지지 않거나 나 스스로 계획을 변경하거나, 진행이 느렸다. 예상대로 필요한 건 예상보다 늘 많았고 비쌌다. 예상보다 좋은 건 없었다. 예상보다 나쁘지 않기 위해서는 예상하지 않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어쩔 수 없는 것들은 어쩔 수 없었다. 어쩔 수 있다고 생각한 것도 어쩔 수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최선 차선 차악 최악을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내가 선택한 모든 것이 최선이라고 믿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평가가 다라질 것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지금 선택이 미래에도 최선일 것이라는 기대를 버림으로써 마음을 편히 다독였다. 결국 내 마음을 편하게 두는 것.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이면서 가능 큰 투쟁이었다.


대부분의 시간은 전보다 외로웠다. 가끔은 사무치게 외로운 뭔가가 치받고 올라오기도 했는데, 감당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되는 건 되는대로 안 되는 건 안 되는대로 외로운 건 외로운 대로 받아들이고 수긍하고 인정했다. 나는 주변의 모든 것들에 대체로 적응해갔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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