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스트하우스 부엌에서 펼쳐진 뜻밖의 해체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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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홍합공장에서 일을 마치면 곧장 낚싯대를 차에 싣고 또 다른 해변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마오리 할아버지가 손질해 준 그 낚싯대는, 계속 들고 다니고 싶었다.
나만의 추억이 시작되는 기분으로, 하루하루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며칠 동안, 시골 마을 근처 사람이 없는 해변을 찾아다니며 이곳저곳을 갔다.
낚시보다는 아무도 없는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기분으로 갔다.
하늘은 맑고 뉴질랜드 남섬의 언제나 그랫듯 풍경은 아름다웠고, 가는 곳마다 저마다의 매력이 있었다.
아무도 없는 바다면 무조건 던지고 또 던졌다.
낚싯줄이 바다에 닿는 소리는 들렸지만,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파도 소리, 바람 소리, 내 숨소리만 들렸다.
그러다 지치면, 들고 온 캠핑 의자에 앉아 자연을 바라보며 멍하니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게 좋았다.
해가 지고 돌아오는 길은 항상 핑크빛으로 물든 하늘을 보며, 마오리 할아버지처럼 자연인이 된 것 같았다.
돌아오는 차 안은 늘 조용했다.
그래도, 왜 안 잡히는 걸까. 나한텐 아직 뭔가 부족한가. 계속 생각이 들었다.
물고기를 못 잡아도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몇 날 며칠을 그렇게 허탕 치며 다녔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이번엔 다를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조금 더 멀리 들어가 보기로 했다.
그날도 기대 없이 바다를 향했는데,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뭔가 다를 것 같은 기분.
마을에서 꽤나 멀리 떨어진 비포장도로를 따라 한참 들어갔다.
도로는 중간중간 파인 구덩이로 울퉁불퉁했고, 양옆엔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창문을 살짝 열어보니 짠내와 흙냄새가 섞인 바람이 불어왔다.
길 끝에 도착하자, 강과 바다가 맞닿은 조용한 해변이 펼쳐졌다.
검은 모래가 눈처럼 부드럽게 깔려 있었고, 파도는 천천히 숨을 쉬는 것처럼 잔잔했다
그런데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했던 해변에 도착하니 이미 몇 명이 낚시를 하고 있었다.
까무잡잡하게 그을린 피부에 검은 수염을 가진 남자들.
시골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인적 드문 곳이라 그런지,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조금은 무서웠다.
그들도 내 차가 들어오는 걸 보고 모두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마 그들도 까무잡잡한 피부에 투블럭 머리, 길게 기른 수염을 가진 나를 보고 경계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낚시를 즐기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은 없을 거란 생각으로,
이 곳의 낚시도 물어볼 겸 먼저 웃으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좀 잡았어요?”
나도 영어가 잘 안 됐지만, 그들의 영어는 나보다 더 서툴렀다.
그래도 영어를 못 한다고 웃으며 손과 고개를 저으며 쑥스러워하는 모습에서,
나쁜 사람들은 아니란 걸 직감했다.
듣자 하니,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사모아에서 뉴질랜드에 잠시 일하러 온 사람들이라고 했다.
나는 조용히 그들 옆에 자리를 잡았다.
지렁이 미끼를 끼우고, 캐스팅.
마오리 할아버지에게 배운 그대로 해봤다.
그런데… 내 낚싯줄은 얼마 날아가지도 못하고, 그저 가까운 바다에 힘없이 툭 떨어질 뿐이었다.
옆에서 던지는 사모아 형들의 낚싯줄은 멀리, 아주 멀리 날아갔다.
섬나라 사람들이라 그런지, 캐스팅하는 자세도 온몸을 쓰듯이 남달랐다.
수평선까지 날릴 기세였다.
나는 그래도 마오리 할아버지가 가르쳐준 것처럼 묵묵히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사모아 형들 중 한 명이 던진 낚싯줄에
성인 남성 다리만 한 물고기 하나가 바다에서 끌려 나왔다.
충격이었다.
TV 낚시 채널에서나 보던 참치 같은 고기가 여기서 잡힌다고?
그들은 30분에 한 마리씩 계속 잡아냈고,
나는 하루 종일 던졌지만 내 낚싯줄은 잔잔한 파도에도 해변으로 계속 밀려 들어왔다.
‘뭐가 문제지?’
나도 빨리 잡고 싶다는 설렘과 조급함이 내 자신을 더 답답하게 만들었다.
어깨너머로 그들이 하는 걸 계속 훔쳐보다, 너무 궁금해서 할 수 있는 모든 몸짓으로 말을 걸었다.
내 낚싯대를 보여주자, 그들은 내 바늘을 가리켰다. 작다.
그들의 바늘은 성인 남성 손가락 중지만 했다.
추도 가리켰다. 작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들이 사용하는 추를 나에게 보여주었다.
내 추는 너무 작았다. 그들의 추는 내 추의 세 배쯤 되어 보였다.
내 낚싯줄이 왜 멀리 안 나갔는지 그제야 알았다. 큰 물고기가 해변 가까이에 있을 리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미끼.
나는 할아버지가 가르쳐준 대로 지렁이를 쓰고 있었는데,
그들은 손바닥만 한 정어리를 과도 같은 걸로 조금씩 잘라 쓰고 있었다.
생선 눈깔처럼 반짝이는 미끼였다. 내 눈도 반짝이고 있었다.
미끼 어디서 구했냐고 물었더니, 그들은 웃으며 말했다.
“차. 차.”라고 말하며 손가락으로 내 차를 가르키고 무언가를 표현했는데, 잘 알아듣기 힘들었다.
“아! 주유소!”라고 말하자, 맞다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에게서 낚시의 기본적인 준비물을 듣고, 그날은 그냥 배워가는 날이라고 직감했다.
하루빨리 낚시 장비를 정비하고 다시 와서 제대로 던지고 싶었다.
나는 돌아가기에는 이미 운전해서 온 시간도 아깝고, 기름값도 아까웠다.
이상하게 오기가 생겨 마오리 할아버지가 가르쳐준 방법으로 다시 계속 해봤다.
그렇게 허탕을 치고 있는데, 사모아 형들 중 다른 한 명이 또다시 다리만 한 물고기를 물속에서 꺼냈다.
부러웠다. 더이상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사모아 형이 물고기를 들고 계속 바라보는 내 앞으로 오더니, 웃으며 내 앞에 ‘툭’ 던졌다.
웃으며 가져가라는 손짓을 하고 돌아서서 갔다.
나는 소리를 지르며 “땡큐! 브라더!”라고 하며,
그 파닥거리는 물고기 앞에서 온몸으로 감사의 표현을 했다.
내가 잡은 물고기는 아니지만, 그들의 나눔에 감동했다.
그 물고기를 들었을 때, 그 무게와 온기가 이상하게 마음을 울렸다.
고마웠고, 조금 부끄러웠다.
그들은 욕심부리지 않으면 바다가 언제든 선물을 준다는 걸 알고 있었을까.
그렇게 낚시하는 법을 배우고, 물고기 한 마리를 얻은 뒤
해가 지고서야 게스트하우스로 들뜬 마음으로 돌아왔다.
친구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너무 궁금했다.
무슨 트로피라도 든 사람처럼 내 다리만 한 생선을 들고 당당하게 들어갔다.
내가 잡은 건 아니었지만, 친구들은 몰려들었고 방에 흩어져 있던 친구들까지 다 나와
“진짜야?” “어디서 잡았어?”
온 게스트하우스가 떠들썩했다.
나는 부끄러웠지만 솔직히 말했다.
“나 안 잡았어. 오늘 같이 낚시하던 사모아 형이 줬어.”
다들 웃었다.
내가 며칠 동안 낚시로 큰 고기 몇 마리 잡아서 조만간 요리를 해주겠다고 말하고 다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너 덕분에 우리 다 뉴질랜드 생선 구경하네.” 라며, 기분 좋게 말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근데 이거 어떻게 손질해?”
생선 손질? 나는 살면서 해본 적 없다.
그때, 게스트하우스에서 함께 지내던 생선을 구경하던 한국인 동생이 말했다.
“형, 저 예전에 일식집에서 알바했어요.
한번 해볼까요? 저 혹시 몰라서 한국에서 사시미 칼 가지고 왔어요.”
한 명은 다리만 한 생선을 들고 있고, 다른 한 명은 사시미 칼을 챙겨왔다.
이 상황이 너무 웃겨서 다들 박장대소했다.
그렇게 나는 그 동생이 가져온 칼로 생선 손질을 배우기로 했다.
게스트하우스 부엌에는 외국인 친구들이 다 모여 구경하러 왔다.
그 동생과 같이 물고기를 비늘 벗기고, 배 갈라보고, 내장 꺼내고, 조심스럽게 회를 떴다.
우리가 생선을 해체하고 조심스럽게 회를 접시에 담자, 외국인 친구들은 입을 벌리고 쳐다봤다.
마치 일본 수산시장에서 참치 해체쇼라도 보는 것처럼.
회 간장도 없었고, 초장도 와사비도 없었지만 내가 요리할 때 쓰던 간장을 종지에 따르고
그럴듯해 보이는 회 한 접시가 나왔다.
“진짜 생으로 먹는 거야?”
“응. 다들, 먹어봐.”
양이 많지는 않아 회 한 점씩 돌아가며 먹었다.
살이 탱글탱글하니 비리지도 않고 맛있었다.
외국인 친구들은 대부분 경험 삼아 먹어보고 싶다며 손가락으로 한 점씩 들었다.
한입 먹고 못 먹겠다는 친구도 있었고, 생각보다 맛있다며 잘 먹는 유럽 친구도 있었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생선 한 마리로 모두가 함께한 추억이 생긴 것 같아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다.
그 순간만큼은, 모두 같은 기억을 나눴다.
다음에는 꼭, 내가 직접 잡은 물고기로 내가 손질해서, 내가 나눠주고 싶었다.
이번엔 받기만 했지만, 사모아 형이 건넨 마음을 30명에게 나눠준 것 같았다.
낚싯대 하나로 시작된 하루가 모두의 기억이 되었다.
평생 잊지 못할, 그런 하루.
이제는, 하나씩 제대로 준비해서 진짜 내가 낚을 차례다.
물고기 말고, 모두를 위한 추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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