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터급 생선을 낚고 싶은 사람들

내 손에 남은 건 낚싯대와 책임감이었다

by 석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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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나는 태평양 섬나라 사모아 형들이 말해준 대로 낚시 준비를 시작했다.


한가로운 주말 아침, 한 게스트하우스 직원이 말을 걸어왔다.
“저녁에 물고기 손질해서 나눠줬다며? 낚시해?”

며칠 전, 마오리 할아버지에게 낚시를 배운 일과 사모아 형들에게 생선을 받은 이야기를 해줬다.

그 이야기를 듣던 직원은 따라오라더니 게스트하우스 뒤편으로 갔다.



뒤편 구석, 풀이 무성하게 자란 울타리 쪽에 잡동사니가 쌓여 있었다.

잡동사니 사이의 아이스박스와 장화 두 짝을 가리켰다.
“필요하면 낚시할 때 써. 씻어서 써도 돼.”

그리고 그는 홍합공장에 일했던 나 같은 워홀러가 두고 갔다고 했다.

"진짜?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 고마워!"


아이스박스엔 언젠가 내가 잡을 물고기를 담고 싶었고,
장화는 해변에서 한 발 더 들어가 캐스팅을 하기 위해 필요할 것 같았다.

나는 거기서 아이스박스와 장화 두 짝을 바로 꺼냈다.
겉은 많이 더러웠지만, 예상외로 큰 아이스박스는 부서지지 않았고 장화도 찢어진 데도 없었다.

제법 쓸 만해 보였다. 그리고 장화를 신어보니 내 발에 딱 맞고 편했다.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이게 내 여정의 일부가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나는 마당에 있는 수도꼭지에 연결된 호스로 그것들을 깨끗이 닦았다.
닦는 동안 ‘이번엔 진짜 잡을지도 몰라’라는 기대가 자꾸 떠올라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것들을 씻어놓고, 마당에서 마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게스트하우스 친구 몇 명이 다가와 관심을 보였다.

참치 해체쇼처럼 펼쳐졌던 부엌 풍경이 꽤 인상 깊었던 모양일까.

성인 남성 다리만 한 물고기를 잡고 싶어서일까.

마오리 할아버지가 건넨 낚싯대 하나에서 시작된 일이,
슬쩍슬쩍 친구들의 마음에도 무언가를 건드린 듯했다.

자연스레 흘러나온 말들이었지만,

“낚싯대가 여러 대 있으면 더 잘 잡히지 않을까?”

“못 잡아도 괜찮으니까 그냥 한번 해보자.”

자연스럽게 그런 말들이 오가기 시작했다.

나처럼 아무 이유 없이 끌린 게 아니라,
보고, 듣고, 직접 맛본 것들이 그들 안에서 반응을 일으킨 거였다.


그날 오후, 낚시를 해보고 싶다는 친구들과 바다 구경을 하고 싶다는 친구들까지 내 차에 태우고

이 시골 마을에 하나뿐인 낚시점으로 향했다.
매일 홍합공장 가는 길이었지만, 거기에 낚시점이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낚시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문을 열자마자 다들 “우와…” 하고 감탄했다.
시골 한복판인데도 가게는 꽤 컸다.
낚싯대, 바늘, 추뿐만 아니라 캠핑용품, 카약, 낚시 의자까지 진열돼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각자 눈길 가는 대로 우리는 흩어졌다.
낚싯대를 만지작거리는 친구들 모습을 보며 며칠 전 내 모습을 떠올렸다.
그 장면이 괜히 뿌듯했다.
나만의 작은 문화가 번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바늘과 추를 사려고 카운터로 갔다.

그리고 사모아 형이 줬던 물고기 사진을 한 젊은 직원에게 보여줬다.
그 직원은 보자마자 웃으며 말했다.
“카하와이(Kahawai). 이 근처 바다에서 자주 잡히는 고기야.”
그는 카하와이를 잡을 바늘, 무거운 추를 추천해 줬다.
사모아 형들이 말했던 것과 같은 사이즈였다.
내가 채비를 달 줄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하자,

직원은 직접 달아주고, 친절하게 매듭법까지 천천히 알려줬다.

그는 친구들에게도 카하와이를 잡을 튼튼한 낚싯대를 추천해 주었다.
친구들도 신중해하며 각자 마음에 드는 낚싯대를 골랐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데, 문득
‘이 친구들이 오늘 꼭 물고기를 잡고 좋은 기억을 가져갔으면…’
그런 생각이 스며들었다.
내가 시작한 일이니, 끝도 따뜻하면 좋겠다고.


원하는 낚싯대와 채비를 사고 나온 뒤,

우리는 사모아 형들이 말해준 정어리 미끼를 사러 주유소에 들렀다.

솔직히 반신반의했다.

‘진짜 주유소에서 정어리를 판다고?’

그걸 물어보는 것도 좀 민망했다.

하지만 용기 내서 직원에게 물으니,

아이스크림 냉장고처럼 생긴 냉동고에서, 정어리가 가득 담긴 비닐 팩을 하나 꺼내줬다.

진짜 있었다.

나는 1킬로짜리 두 개를 샀다.
“이건 내가 쏠게. 추억 선물.”
나만의 여정이 아니라, 모두의 기억을 위한 것이라면 이 정어리는 작지만 꽤 괜찮은 선물이었다.



8인승 차에는 친구 7명과 나.
그리고 낚싯대, 장화, 아이스박스, 캠핑 의자까지 실으니 무게감이 느껴졌다.
설렘과 기대도 한가득, 그리고 책임감의 무게감도 함께 실었다.

시골 마을의 외곽 조금 떨어진 해변으로 향하는 비포장도로에 접어들었다.
길은 울퉁불퉁했고, 하늘은 흐렸고, 바람도 제법 거셌다.
하지만 백미러에 비친 친구들의 얼굴은 환했다.
살면서 처음 낚싯대를 샀다는 친구들, 인생에서 낚시라는 걸 처음 해보는 친구들까지
모두 들뜬 얼굴이었다.

“우리가 여길 간다고?”
“이런 도로로 가는데 안 잡히면 이상하지.”
차 안엔 어느새 농담과 웃음이 퍼져 있었다.
누군가는 창밖 풍경을 조용히 사진에 담고 있었고, 누군가는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나는 그 얼굴들을 천천히 훑어보다가 문득 예전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낯선 바다 앞에 섰던 그날, 기대와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던 첫 낚시.
이제는 내가 그 처음을 이끌고 있었다.

차 안에는 음악이 흐르고, 말과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혼자였던 낚시가, 어느새 작은 축제가 되어가고 있었다.



며칠 전 한참을 달려 도착했던 그 비포장길의 끝.

혼자였을 땐 멀기만 했던 해변이, 함께라서 훨씬 금방 도착한 느낌이었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검은 모래 해변은 여전히 조용하고 아름다웠다.
멀리 사모아 형들이 낚싯대를 들고 있었다.

우리는 장비를 양손에 가득 들고 해변으로 나갔다.
낚싯대가 없는 친구들은 해변이나 강을 따라 걸으러 가거나 바다를 바라보며 쉬었고,
낚싯대를 산 친구들은 나와 함께 의자를 펴고 낚시 준비를 시작했다.


낚시점 직원에게 배운 매듭법을 가르쳐 주면서 친구들의 낚싯대에 바늘과 추를 달아줬다.
그리고 정어리를 반으로 썰어 바늘에서 빠지지 않게 꿰었다.

마오리 할아버지가 나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나도 친구들에게 해주었다.
손놀림은 제법 익숙해졌고,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얕은 지식이지만 하나하나 전수해 주는 것이 기분 좋았다.
그리고 마오리 할아버지에게 배운 캐스팅 동작을 천천히 하나씩 알려주었다.
그 동작 하나하나가, 이제는 내 것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내 낚싯대를 들고 가 사모아 형들에게 다가가 채비를 보여줬다.
그는 웃으며 엄지를 들어 보였다.
“오늘은 잡았어?”
“노. 투데이 노 굿.”
그날은 날이 좋지 않아서 그런가 그들 역시 허탕이었다.

우리도 아마 그럴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속마음은 달랐다.
이번엔 정말, 한 마리만이라도 잡고 싶었다.
기대였다. 욕심이었다. 그리고 책임감이 느껴졌다.


사모아 형들과 거리를 두고 캐스팅을 시작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받은 장화를 신고 바다에 한 발 더 들어갔다.
자세를 낮추고, 손목에 힘을 실어 더 멀리, 더 정확하게 던졌다.

저번보다 무거운 추와 바늘에 달린 정어리 때문에 묵직하게 멀리 날아갔다.
사모아 형들처럼 멀리 날리지는 못했지만 만족스러웠다.

섬나라 출신인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긴 아직 어색했다.

나도 언젠간 여기 바다를 읽을 수 있을까?


그날은 유난히 바람이 세차게 느껴졌고, 기다려도 입질은 없었다.
낚싯대 끝은 조용했고, 손끝에 닿는 건 파도의 떨림뿐이었다.

한 시간쯤 던지고 거두고를 반복했다.
입질은 없었지만, 작은 물고기가 먹고 간 건지, 살이 쓸린 건지
끌어올리면 정어리의 살은 거의 없거나 바늘밖에 없었다.

친구들도 계속 던지고 바꿔 끼우고 하면서 정어리의 양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희망도 조금씩 닳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위치를 바꿔 강 쪽에도 던지고, 바위 근처까지 걸어가 계속 캐스팅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걸려들지 않았고 걸렸다고 느껴지면 바다 밑 돌에 바늘과 추가 걸렸다.
사모아 형들도,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몇 시간쯤 지났을까 해가 저물고 있었다.
뉴질랜드 하늘은 서서히 붉게 물들었고, 내 안의 기대도 조금씩 저물고 있었다.

해변에는 풍경과 노을을 감상하며 수다 떠는 친구들, 사진을 찍는 친구들,
낚싯대는 내버려 두고 캠핑의자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는 친구도 있었다.


남은 건 정어리 몇 조각뿐이었고, 이제 돌아갈 시간도 다 되어왔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지만 무언의 책임감이 나를 누르고 있었다.

내 어깨는 나도 모르게 조용히 움츠러졌다.
‘나는, 아직 한 마리도 못 잡았다.’

남은 정어리를 들여다보다가, 문득 마음이 뚝하고 내려앉았다.

이대로 끝내기엔, 뭔가 하나라도 건져야 할 것 같았다.

물고기를 못 잡았지만 웃는 얼굴들 사이에서 나도 따라 웃었다.
그런데 내 표정 안쪽은 묘하게 굳어 있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툭—

내 낚싯대 끝이 흔들렸다.




다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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