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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호주 우체국 포크리프트 드라이버다.

이 일을 할 수 있게 되기까지의 여정

by 이채이



호주 우체국에서 포크리프트 드라이버로 일 한 지 약 한 달째.

돌아오는 주에 벌써 근무한 지 한 달이 된다.

적응하느라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가는 줄 몰랐네.



“이 잡을 구하기까지의 여정”


결론부터 말하자면, 별 게 없다.

정말 별 게 없다.


내가 포크리프트 드라이브 실력이 뛰어나서? 영어실력이 출중해서?

그 무엇에도 자신 있게 ‘예스’라고 할 수 없다.

나는 여전히 말할 때 버벅거리며, 완전한 문장을 구사하지 못한다.

사람들이 말 걸면 항상 당황하면서 답한다.

이전에 야채공장에서 포크리프트 선임을 보고, ‘와, 난 초보 실력인데… 나 이 일 할 수 있는 거 맞아?’

라는 생각만 가득했다.


각설하고, 진짜 여정을 말해보자.

(구구절절 시시콜콜 주의)

한창 직컨을 다닐 때의 일이다.

어김없이 레주메를 프린트해서 집 근처의 엄청 큰 컨테이너 물류 회사로 갔다.

오피스 매니저는 ‘여기는 직원을 직접 안 뽑아. 이쪽으로 찾아가 봐 ‘ 라며 나에게 헤드오피스를 알려줬다.

오늘도 퇴짜인가.. 싶은 마음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도중

그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포크리프트 드라이버에게 말 걸려고 슬그머니 다가갔다.


인디안으로 보이는 드라이버는 컨테이너에 물건을 적재하다 말고,

‘안녕, 무슨 일이야?‘ 하면서 시동을 끄고 나에게 왔다.

‘나 잡구하고 있는데 너 이 일 어떻게 구했어? 일 구하기가 쉽지 않다.‘

라고 말했다.

그 드라이버는 나에게 잡 에이전시 하나를 알려주었다. 거기에서 잡을 구했다며 말이다.

브리즈번에 있을 때 잡에이전시에 가본 적 있었는데 차 있는 게 무척이나 중요했어서

차 없는 나에게는 기회가 오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여기는 브리즈번이 아니니까..

오케이. 접수.


다음날, 그 잡 에이전시를 찾아갔다.

집에서 버스 타고 한 시간 반정도 걸렸고,

버스를 4번이나 갈아탔다. 감사하게도 버스가 바로바로 와서 막힘없이 타고 갈 수 있었다.

그 잡 에이전시에서는 내 정보를 한가득 가져갔고 서류도 이것저것 작성했다.

에이전시 매니저가 여기에 가까운 잡 에이전시가 하나 더 있다며 한 번 가보라고 했다.

나에겐 감사한 제안이었다.

한 시간 반 넘게 걸려 왔는데 온 김에 하나 더 들렀다 가면 완전 땡큐였다.


바로 다음 에이전시를 찾아갔다.

거기서 또 이런저런 경력에 대한 잡 인터뷰 아닌 인터뷰를 하고,

이메일로 보내주는 서류를 다 작성하고, 다음 주에 다시 오라고 했다.

약물검사, 알코올검사, 체력테스트를 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이 보내준 이메일에는 내 정보를 적어 넣는 것도 있었지만,

경찰에서 해야 하는 신변 조회도 해야 했다.

범죄이력이 있는지 없는지도 중요했기 때문이다.


서류 작성 완료 후,

그다음 주에 이런저런 검사를 하기 위해 다시 찾아갔다.

그때 처음 갔을 때 봤던 직원이 아니라 새로운 직원이 나를 안내해 줬고,

‘어 너 포크리프트 일할 거야? 아마 자리 하나 있을 것 같은데 잠깐만 나 그 담당자랑 연락해 볼게’

라고 연락하고 오더니, ‘너 호주 우체국에서 나이트 시프트’로 일할 수 있어?

난 일할 수 있다고 했다.


우선 모든 절차를 다 끝냈지만, 잡에이전시만 믿고 기다릴 순 없었다.

나는 나대로 또 다른 잡 구하기 활동을 했다.

왜냐하면, 워낙 변수가 많다는 것을 호주 와서 절실히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히 ‘잡 트레이닝: 안전교육’을 하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


약 20~30명이 되는 사람들이 호주 우체국에 모여서 안전교육을 들었다.

거기서 다른 에이전시에 있는 포크리프트 드라이버만 쏙 데려갔다.

내가 이유를 물으니 ‘이 에이전시에 있는 인원들로 충분해.’라는 답만 받았다.

‘엥?’

나는 안전교육이 끝나고 나서 에이전시한테 연락해서 사정을 얘기했다.

그랬더니 우선 알았다고 했고, 담당자랑 얘기해 보고 다시 연락 준다고 했다.


일요일 늦은 밤, 에이전시에서 연락이 왔다.

‘늦은 밤에 미안해. 너 아직 일할 마음 있어? 내일 드라이버 테스트 하러 갈 수 있어?’

호주에서 주말 및 공휴일에 이런 일 관련 연락이 온다는 게 참 이례적인 일…

나는 다음날 드라이버 테스트를 하러 갔다.

나는 ‘나 포크리프트 타는 거 이번이 마지막 일 수 있다. 그냥 즐기자.’라는 생각으로

하라는 대로 열심히 쌓고, 내리고, 후진하고, 엄청 높은 곳에 쌓았다가 다시 내렸다 했다.

드라이버 테스트를 하면서 알게 된 건데 내가 느낀 건

‘아 이거 진짜 재미있다.’였다.

현실판 테트리스 하는 기분도 들고, 빈이 딱 맞아떨어져서 쌓일 때 너무 쾌감이 좋았다.

‘나 이 일을 그냥 멋져 보여서만이 아니라 오감으로 좋아하는구나…’싶은 묵직한 앎이 찾아왔다.

그래서 이 테스트에서 떨어져도 계속 포크리프트 잡 구해봐야겠다는 생각도 동시에 했다.

나 테스트해준 여기 오래된 직원에게 합격여부를 물었고, 나보고 ‘너 합격이야. 잘했어.’ 이랬다.

몇 번 실 수가 있었는데 쌓고 내리고 하는 건 다 잘 해내서 그런 것 같았다.

나 테스트해준 오래된 직원 집이 내 집이랑 멀지 않은 곳이어서 테스트 끝나고 데려다주었다.




사실… 테스트 가면서 또 끝나고 나오면서 별별 생각을 다했다.

‘내가 컴플레인 걸어서 일부러 그냥 테스트만 보게 하고 떨어뜨리는 거 아냐? 쇼맨십 같은 건가? 뒷말 안 나오게 하려고?‘

‘이 직원은 왜 나 드라이버 테스트만 하고 바로 그냥 집에 가는 거지? 슈퍼바이저한테 보고 안 하나?’

근데 이 모든 것은,

내 마음의 불안으로부터 나온 ‘의심, 불신’이었다.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나온… 일종의 감정패턴이랄까.

요즘 이 감정 패턴을 허물고, 새로운 경험과 기억을 집어넣으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기도 하다.


바로 다음날부터 출근해서 나는 한 달 동안 아주 잘 다니고 있다.


이 여정을 겪으면서 내가 느낀 건,

정말 인생은 여행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내가 한 건

그냥 계속한 것 밖에 없다.

구직기간 동안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 때도 많았다.

‘일 안 구해지면,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야지.‘라는 생각도 했다.

한국 가서 사람들이 비아냥 거리는 말을 해도, 그냥 다 받아들여야지. 생각했다.


내가 제일 두려웠던 건,

자꾸만 실패의 경험을 자꾸만 뭐가 안되기만 하는 경험과 기억을 쌓기만 하는 것이다.

나에겐 그게 필요했다.

‘그냥 하면 된다. 애쓰지 않고 그냥 하면 결국 다 된다.’

‘내가 마음에 품은 것에 초점을 맞추고 그냥 하면 된다’

라는 성공의 경험을 스스로에게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 플로우를 한 번 겪고 나니 드는 생각은,

내가 행했던 행위는 레주메 고치고, 돌리고 한 것 밖에 없다.

나머지는 다 주변 사람들이 나를 인도해 줬다.

그리고 나는 그걸 믿고 따랐을 뿐이다.


첫 번째 에이전시 알려주었던, 그리고 이야기가 끝나고 나가는 길까지 안내해 줬던 그 친절했던 인디안 드라이버,

첫 번째 에이전시에서 또 다른 에이전시를 소개해준 매니저

그 에이전시에 두 번째 찾아갔을 때, 새로이 나를 맞이해 줬는데 우연히 그 직원이 호주 우체국 슈퍼바이저와 다이렉트로 연락하는 직원이었던 것.

마침 호주 우체국에 포크리프트 드라이버를 구하고 있었던 시기.


주변 상황과 우연과 친절한 사람들 덕에 이루어졌다.

덕분에 나는 자신감을 얻었다.

‘그냥 하면 되는구나. 하고 싶은 것에 초점을 맞추고 그냥 하다 보면 기회가 오는구나’라는

성공의 경험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감정은 감정일 뿐이라는 거.

두려움도, 불안도, 긴장감도 그건 사실이 아니라 지나면 사라지는 감정일 뿐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그 모든 감정들을 그냥 다 품어주면서 현실에서는 그냥 나아가면 되는 거였다.


이곳으로 인도해 준 모든 사람들과 상황에 감사하다.

나에게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이 오면, 내가 만났던 사람들처럼 친절한 안내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혹시 모르잖아.

이런 작은 친절들이 상대에겐 큰 자산이 될 수 있는 거니까.


정말 감사한 하루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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