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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깨주면 달걀이고, 내가 깨고 나오면 병아리가 된다

인생은 계속 내가 병아리가 되는 퀘스트인걸까.

by 이채이



남이 깨주면 달걀이고, 내가 깨고 나오면 병아리가 된다.



한 달 전에 그만 둔 직장에 있던 포크리프트 드라이버 선임의 이야기이다.

선임은 예전에 한동안 방에 누워서 몇 개월간 아무것도 못하던 시기가 있었다고 했다.

친척들이 선임에게 '너 왜 맨날 누워있냐?'라는 말을 했을때, 옆에 있던 선임의 아버지가 해주신 말씀이라고 한다.


나에게도 그런 시기가 있었다. 몇 개월 동안 아무 연고도 없는 오이도에서 3개월동안 지냈던 적이 있다.

'아무 자극 없는 곳에서 숨어있기'

그때는 임금체불로 인해 법적 절차를 밟으면서 세상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였다. 그때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했다. 스트레스로 살찐 내가 싫어서 매일 같이 헬스장에서 운동을 1~2시간을 했다.

또 노트북 잡고 나름대로의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실패했고, 엎어졌었다. 쓸모없는 사람이 되기 싫어서 했다.

자꾸만 나의 쓸모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는 무의식적 압박이 나의 동력이 되어버렸다. 쓸모 없는 사람이 되면 버려질까봐 무서웠다. 잘못된 동력이였다. 그때 나는 더 퍼져 있어도 됐고, 더 아무것도 안해도 됐었다.

내가 조금 더 숨 쉴 수 있게 토닥여주고, 힘들면 힘들다고 울기도 하고, 스스로 달래주고, 맛있는걸 먹여주고 그것만 해도 됐었다.


지금 호주에 있는 백수인 나는 나의 쓸모없음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있지만 그때와는 다르게 움직이고 있다.

쓸모있기 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진심으로 아껴주는 마음에서 밥도 건강한 걸로 맛있게 먹고 있고, 운동도 꾸준히 하고 있고, 앞이 보이지 않는 구직활동도 잘하고 있다. 이전에는 나에게 주어진 일이라면 분별 없이 받아들였다. '나에게 주어진 일이면 힘들어도 몸이 갈려나가도 열심히 해야지.' 너무 착했다.

나는 나를 진심으로 아끼기로 한 이 시점에도, 막막하고 앞이 보이지 않아도 아무 일이나 막 잡아서 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를 위한 건강한 분별심을 기르고 있는 중이다.

흐름이 바뀌는 중이라서 돈이 안벌리는 시기가 길어진다는 걸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더 이 막막한 현실을 견디면서 직접 깨고 나와 병아리가 되려고 하는 것이다. 레주메 수정의 반복. 직컨을 30군데 넘게 다녀도 연락오지 않는 현실. 에이전시에 내 정보 등록하고 약물검사, 메디컬 테스트를 다 진행했지만, 에이전시에서 이전 직장의 참고인의 신분증촬영까지 요구해서 참고인이 거부하는 상황. 이 모든게 다 아직 내가 껍질 까기 전이라고 생각한다. 조금만 더 숨을 참고 힘 주지 말고 그냥 해보자.


감정과 기분이 외줄타듯이 왔다갔다 하지만 그건 나 자신이 아니라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고마운 것들이라는 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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