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불안은 움직임으로 이긴다.

발로 뛰는 서른한살의 호주 워홀 구직활동

by 이채이

현재 나는 일을 안하고 있는 상태이다.

‘무기력’이랑은 많이 놀아줬고, 이미 떠나간 것 같다.

이제 다시 나를 먹여살리는 활동을 해야한다.

-만 되고 있는 통장상태를 눈으로 확인하는 게 꺼려지지만, 흐린 눈 그만하고 눈을 똑바로 뜨자.

이젠 그럴 힘이 생겼잖아.


본격 직컨 구직활동 첫 날 아침에는 불안감이 나를 거의 덮쳐오다시피 했다.

‘구직활동이 길어지면 어떡하지?’

’나 또 선택 받지 못하면 어떡하지?’

‘이대로 한국가기 싫은데 돈 다 떨어지면 어떡하지?’

‘아, 두렵다. 한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고…’


워홀 생활이라는 게 정말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는 것이라서

잘 풀리면 정말 좋지만, 안풀리면 정말 또 안 풀리기도 한다.


불안감이 내 턱 밑까지 차오를때 쯤

나는 가위눌린 나를 깨우듯이 화들짝 이불 밖을 박차고 나왔다.

얼른 노트북을 켜서 레주메를 수정하는데 집중하고,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프린트를 하기 위해 먼저 도서관으로 향한다.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괜히 셀카 찍어서 친구한테 보내며 ‘나 오늘부터 드디어 일 구하기 시작한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자신감을 불어넣는다.


도서관 가는 길,

길가에서 노는 아이들의 관심에 잠시 멈춰 인사를 하고,

햇볕을 쬔다.

길치인 나는 자주 구글 맵도 봐가면서 걷는다.


아침에 눈떠서 침대 위에서 두려움을 느꼈을 때랑은 기분이 아주 다르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냥 움직이면 되는데, 그냥 이렇게 나오면 되는데..’

아직 레주메를 뽑기도 전이고,

뭐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다.

근데 내 턱 끝에 있던 불안감이 밭 밑까지 내려가 있었다.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다.

하지만, 그냥 움직인다.

움직이면 반 이상은 불안함이 사라진다는 것을 또 한 번 선명하게 느낀다.


.

.

.


이번에는 포크리프트 잡 뿐만 아니라 하우스 키핑 쪽 일로도 넓혀 보려고 한다.

한국에서 관련 경력이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청소하는 게 힐링되고 좋다.



발자국(�)으로 마크해놓은 곳은 3일에 걸쳐 레주메를 돌린 곳이다.

팔(��)표시는 가야할 곳이다.


시티에서는 하우스키핑 포지션으로만 지원하는 중이다. 4-star, 5-star, 구글평점 4.0이상인 곳만 돌아다니고 있다. 고급호텔에서는 어떻게 고객에게 편의를 제공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배우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로 몇 군데는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향부터가 남다르기도 했다.


방문을 거듭할 수록

영어 발음이 더 좋아졌고, 더 여유있는 태도와 눈 마주침으로 사람들과 대화하는 나를 느꼈다.

이것만으로도 성공적인 하루를 보낸 셈이다.


프론트 직원들은 대부분 다 친절하게 맞이해줬고,

종종 하우스키핑 매니저나 수퍼바이저들을 직접 만나레주메를 전달하기도 했다.








IMG_7097.jpeg
IMG_7082.jpeg
IMG_7070.jpeg
View recent photos.jpeg
View recent photos 2.jpeg


구직활동이 얼마나 이어질지

얼마나 통장이 쪼들려야 이 상황이 풀릴지는 모른다.


근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서 살았으면

그 하루만큼은 ‘최대한’으로 산 거다.

그게 땡이다.

나의 에너지를 끌어다쓰면서 더 노력하고 더 애쓰고 더 힘내고 그러고 싶지는 않다.

깔끔하게 하루를 떠나보낼 줄 알아야 한다.


불안감은 내가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달려있지만,

말 그대로 '움직이기'만 해도 없어진다.


이불을 걷어내고,

운동화 신고 나와서 걷자.

당신은 생각보다 꽤 안전하고 완전한 세상을 걸을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