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시선
'너희 지독히도 다른 결을, 이 말을 하는 것과 동시에 너무나도 같은 결을 가졌구나. 아까는 달랐고 지금은 참 닮았구나. 조명 아래 밝게 눈에 띄는 바다의 끝자락, 파도의 끝자락. 그 끝자락에 도착하는 바다의 결은 아홉시 방향, 바람의 결은 여섯시 방향. 물론 극명히 다를 때도 있지만 이렇게 미세하게 달라도 너희는 끊임없이 함께 하는구나. 가는 길이 어디든 서로 존중하며 나아가는구나. 오늘 난 너희 앞에 우두커니 서있으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존중하는 게 뭐 그렇게 어려운 거라고, 내가 정답인 줄 착각하며 살았다고.'
바다에서는 모두가 위로를 받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을 텐데. 더 외로운 이도, 더 요동치는 이도 있는데. 내가 받은 위로에 취해 모두를 공 통시했다. 이것만은 분명할 것이다. 어른이고 아이이고, 멍하니 바라본다. 드넓은 바다를, 소리치는 파도를, 저 멀리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을 그대로 바라보며 침을 삼킬 것이다.
쏴-했다가 후으-하는, 찰랑이다가 촉촉한 흔적이 남겨 있는, 파도가 부서지며 하얀 거품꽃을 피우는, 파도가 밀려왔다가 돌아가는 그 부분을, 바로 그 길을 따라 한참 동안 걸었다. 하늘에 칠해져 있던 푸르고 붉은 색깔들이 순식간에 깜깜한 어둠으로 뒤바뀌었다. 시야가 어둠에 적응하고 나니, 유난히 밝은 달에 시선을 온전히 빼앗겼고 그렇게 달을 보며 걸었다. 기울어가는 달빛이 수면에 비쳐 반짝였다. 낮의 태양이 반짝이는 것과는 정말 다른 느낌이었다. 어두워진 바다 끝자락에서 생각 없이 걸으며 바라본 찬란한 빛은 외면한 순간에도, 뚫어지게 보는 순간에도 언제나 나를 쫓아왔다. 달빛은 삼십분이 지나서도 여전히 내 옆에서 묵묵히 찬란했다. 정말 묘하게도 묻어두었던 용기가 피어올랐다. 그 이후로 이렇게 종종 달빛의 소리 없는 토닥임이 그리워 해변을 거닌다.
저 멀고도 높은 곳에서 드넓은 수면 위를 내리쬐는 달빛이 수평선에서부터 내가 있는 곳까지 이어져 반짝였다. 우두커니 한 곳에 서서 바라보았다. 마치 극 중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약간은 습하지만 기분 좋은 바람이 오른쪽 뺨에 부딪혔다. 내가 가진 가르마의 결에 아주 알맞은 바람이 불어왔다. 무대였다면, 독백이 어울리는 순간이었다.
"아-좋다. 아름답다."
소리가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아니 일부러 뱉어냈다. 독백의 분위기에 취해서 했던 행동이다. 나는 이날, 바다의 결과 바람의 결에 위로받았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었다. 나는 언젠가 여러 차례, 밤바다를 찾을 것이다.